언제나 아이를 끌어안고, 나 자신에게 다짐하듯이 뇌까린다. -네가 너무 소중해. 엄마가 꼭 지켜줄게. 사랑해.
사실 나를 지키고 있던 것은 너의 이 작은 발바닥이었음을.
오늘도 밤을 꼴딱 새웠다. 눈꺼풀과 미간, 이마 언저리에 졸음이 가득 밀려오는데 불안이 어디선가 꾸물럭거린다. 지나간 시간들, 내가 내뱉은 말과 그때의 내 표정 등을 하나하나 생생하게 떠올리며 때로는 후회하고 때때로 나를 안심시키는 과정들을 반복하다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 결국 휴대전화를 든다.
그때부턴 내 뉴런을 자극하는 콘텐츠와 블루라이트 때문에 더더욱이나 의식이 또렷해진다.
이렇게 어느 새벽을 버리고 나면 다음 날 밤엔 기가 막히게 잠이 쏟아진다. 낮잠은 거의 안 자는데 그제는 저녁 여섯 시에 참을 수 없는 잠이 쏟아져 옆에서 종알거리며 말 거는 아이에게 십 분만 자겠다 사정하며 방문밖으로 쫓아내고 까무룩 기절했더랬다. 이십 분 정도 생명유지를 위한 수면을 취하곤 아이 밥을 챙겨줘야 해서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남편과 나는 운동을 겸해 집 뒤에 있는 나지막한 산에 자주 갔다. 나지막했으나 제법 가팔랐다. 남편은 산에서 자라 그런지 산을 좋아했다. 나는 사실 산 오르는 게 별로였는데 그 사람과 함께 올라가는 건 좋았다. 퇴근한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그의 성화에 마지못해서 따라나섰다가도 정상을 밟고 내려오는 길은 매번 좋기만 했다. 우리는 산을 오르내리는 길에 정말 많은 대화를 했다. 어느 날은 회사 얘기, 어느 날은 어제 본 웹툰의 줄거리 같은 것이 대화 소재가 되었다. 대부분 쓰잘데기 없는 말들이었으나 각자의 사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값지고 감사했다. 힘이 부치면 산 중턱의 벤치에 나란히 앉아 어둠이 내려앉은 도시의 작은 불빛들을 바라보며 숨을 골랐다. 밤공기의 차가움 속에서 맞잡은 그의 손은 따뜻했다. 서로가 있어 사는 게 유의미했다.
그는 삶이 허투루 흘러가는 것을 별로 안 좋아했다. 항상 뭔가를 이루고 싶어 했고 자신의 삶을 뚜렷하게 새기고자 했다. 대기업에 다니던 시절에 그의 책꽂이엔 자기 계발서가 가득했고 책장을 펴면 마음을건드리는 문구마다 밑줄이 쳐있었다.
그런 그에게 매일 산에 올라가는 것은 적절한 자극제였다. 설정한 목표를 이룰 때마다 체크할 수 있는 어플까지 깔아놓고 매일같이 산에 갔다. 내가 임신했을 땐 혼자 새벽같이 일어나 뒷산 정상에 올라가 인증샷을 남기며 목표치를 채웠다. 산 정상에 오르는 것으로 이룩한 작은 성취가 그의 하루하루를 활기차게 만들었다.
그는 스스로 빛나기 위해 삶에 충실했다. 아침마다 손수 닭가슴살이나 계란, 아보카도를 갈아 마셨고 꾸준히 운동을 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공부해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그러는 중에도 다정함을 잃지 않았다. 그가 없어진 것은 이 세상에도 큰 손실이었을 것이다. 정말 뭐든지 해낼 사람이었으니까.
하루를 버티는 식으로 살아가는 나에게, 하루를 만들어 살아가는 그는 마냥 멋있어 보였다.
내 삶엔 그가 자극제였다. 그가 있어 나는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었고 뭐든 될 수 있었다.
그가있었을 때는.
잠이 오지 않는 새벽, 적막 속에서 막연한 두려움이 몰려온다. 세상이 너무 넓고, 삶이 너무 길다. 그때마다 나는 더듬어 아이의 발을 찾는다. 그 작은 발을 두 손으로 쥐고 있으면 조금쯤 덜 무서운 생각이 든다. 나는 가볍고 약하지만 이 자그마한 발 덕분에 아주 조금 용감한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