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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실종됐다

걱정은 마중하는 것이 아니다

by 나리다 Jan 1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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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이십 대는 매일이 불안다. 서있는 구간마다 살얼음판이었다. 한걸음 내딛기가 겁이 났는데 걷지 않는 수도 없었다. 미래가 기약되지 않은 채 매일 반복되는 취업준비생의 일상은 바닥 없는 우물 같다. 그러던 중 일어난 엄마의 실종 사건은 단숨에 우물까지도 허물어뜨렸다.


안 그래도 갖가지 걱정에 곤두서 있던 나는 좌불안석이 되었다. 이 지역은 나의 고향이지만 부모님에겐 친척도 친구도 없는 외딴섬 같은 곳이었다. 더군다나 엄마는 전업주부였고 사교적인 성격도 아니어서 내가 모를만한 친구는 없었다. 가족들 모두 휴대전화가 있었는데 엄마에겐 없었다. 아빠한테서 두어 번쯤 전화가 왔다.

-엄마 아직 집에 안 왔니?

엄마가 아직도, 집에 안 왔다는 것이 몹시 더 두려워졌다. 시간은 열시도 채 되지 않았는데 나는 입술을 잘근 씹으며 근처 병원의 응급실마다 전화를 돌렸다.

다행히 신원미상인 중년 여인이 실려왔다는 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몸을 일으켜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정처 없는 발걸음이 가장 가까운 경찰서를 향했다. 밤 열시도 안 되는 시각에 추리닝 차림의 젊은 여자가 엄마의 행방을 찾아 방문하자 평화롭던 지구대 내의 무언가가 쨍하는 소리를 내며 깨져 나갔다. 야간근무를 하며 커피 한잔씩을 나눠마시던 경찰아저씨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무슨 일로 왔냐는 물음에 나는 울먹였다. 엄마가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아무래도 엄마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고.


뭐가 더 슬픈 일이었을까. 이십 대 후반의 젊은 여자가 밤 열시도 되지 않은 시간에 엄마가 집에 오지 않는다고 울먹이면서 경찰서를 찾은 것, 혹은 나이 오십 대 후반인 우리 엄마가 그 시간까지 정신없이 수다를 떨 친구 하나 없었다는 것.

 

경찰 아저씨는 친절하게 나를 달다.

-머니는 성인이고 금은 그렇게 늦은 시간이 아니야. 집에 가서 엄마를 기다려요. 열한 시가 넘어도 돌아오지 않으시거든 이 번호로 전화해요. 걱정은 마중 나가는 게 아니야.


열한 시가 되기 조금 전, 엄마가 돌아왔다.

나는 엄마를 끌어안고 통곡했다. 엄마는 나의 격정적인 반응에 당황하며 시간이 이렇게까지 된 줄 몰랐다고 했다. 우연히 길에서 중학교 때 친구를 만나셨단다. 엄마는 수도권에서 중학교를 다녔는데 이런 지방에서 우연히 중학교 때 친구를 만났다니 너무 놀랍고 반가워서 근처 카페에서 대화를 나눈다는 게 그만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했다. 집에 나를 기다리는 딸이 나뿐이 아니었대도 잊을 만큼 놀랍고 반가운 일이었을 것 같아 별 의심 없이 그 말을 믿었다.


그로부터 몇 달이 더 지나,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그 '엄마 실종사건'이 떠올랐다. 엄마는 뭔가를 얼버무리려 했지만, 내가 집요하게 물었더니 그제야 진실을 털어놓으셨다. 사실 그날 엄마가 길에서 만난 사람은 중학교 동창이 아니라, 세상의 이치를 공부하고 도를 닦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 사람은 엄마에게 말했다. "당신은 기운이 바르고 맑은데 그럼에도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건 정성이 부족해서입니다." 엄마는 그 말을 듣고 머뭇거렸지만, 결국 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려운 살림 속에서 가까스로 자식 셋을 성인으로 키워냈는데 형편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더구나 이십 대 후반의 큰딸은 직장을 그만두고 취업준비를 하고 있었고, 둘째 딸은 기가 약해 가위에 잘 눌렸으며, 막내는 여전히 철이 없었다. 매일같이 갖은 걱정들로 마음을 졸이는 엄마에게, 그 사람의 말은 어쩌면 한 줄기 희망처럼 들렸을 것이다.


엄마는 주머니를 털어 포도 한 송이를 샀다. 그리고 그 사람을 따라가니, 허름한 신당 같은 곳에 작은 제사상이 놓여 있었다고 했다. 엄마는 사온 포도를 제사상 위에 올려놓고, 신당의 주인이 '수확의 신'이라 부르는 존재를 향해 싸라기 터는 시늉을 하며 절을 올렸다.


신이,

있다면,

뭐라도,

라고.


수확의 신을 섬기는 그 도 닦는 사람 앞으로 매일 같이 와서 기도해야 한다고 했지만 엄마는 그제야 이성이 돌아와 그렇게는 못한다고 발을 뺐다. 그러자 그는 한숨을 쉬며 몇 달이 지나기 전엔 이 일을 함구하라 당부했단다. 똑똑하고 순진한 우리 엄마는 밑져야 본전이니 우리에게 딴 소리를 둘러대신 거였다. 어떤 절박함은 이성을 가로지른다.


지금도 가끔 잠이 오지 않을 때면 그때 경찰 아저씨가 해준 말을 떠올린다.


걱정은 마중하는 게 아니야


어쩌면 걱정은 외부에서 닥쳐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의 우물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날 밤, 눈물을 훔치며 엄마를 찾아 경찰서를 찾아들어가던 나의 불안함과 자식들대한 염려를 견디지 못해 어디로든 흘러 엄마의 걸음에 대해 생각다. 각자가 자신의 걱정을 풀어내기 위해 내디뎠던 덜떨어진 걸음들. 그것은 어설펐지만, 어떻게든 생을 살아내고자 했던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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