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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다 Dec 22. 2024

내일이 두려운 때에

불행을 견뎌내는 태도에 대하여

사고... , 그래, 나는 늘 사고를 두려워했지.
너무나 평범했던 날에 부모님을 잃었을 때부터.

그 일은 내게 슬픔 이상의 공포를 주었어.

의심 없이 걷다가 아무런 예고 없이 발 밑이 꺼질 수 있다는 사실에.
그 한 발짝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한 걸음 한 걸음이 두려워 견딜 수가 없었어.

-웹툰 <박제하는 시간> 26화 '아직 끝나지 않은 길을' 중 현모의 편지


누구나 '의심 없이 걷다가 아무런 예고 없이 발 밑이 꺼지는 경험'을 한다.

한번 그런 경험을 하고 나면 내가 내딛는 한 걸음이 조심스러워진다. 내 앞에 또 그런 구멍이 있을까 봐 두렵다. 왜 나한테 그런 일이 일어난 건지, 내가 태어난 뒤로부터 저질러온 과오들을 하나하나 반추한다. 내가 잘못한 건 많지, 길에 떨어진 쓰레기를 보고도 못 본 척했고, 보행신호가 빨간불인데 길을 건넜고, 가끔 못 참고 욕지기를 내뱉었고, 아이스크림 막대를 화단에 심은 적도 있다. 그리고 또 뭐였지. 뭐가 이런 일을 당할 정도로 잘못이었을까. 현생이 아니면 전생에서라도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이른다.


어제 일어난 일이 '의심 없이 걷다가 아무런 예고 없이 발 밑이 꺼지는 경험'이었다면, 내 죄를 파고들며 내 잘못을 되짚는 들은 스스로 삽을 들고 땅을 파는 짓이다.


내가 어떻게 그 지옥 같은 시간들을 버텼더라.

사별을 검색하고. 또 검색하고. 또 검색했다.

관련 책을 찾아 읽었다.

사별과 이별에 관한 책이었다. 나와 같은 불행을 겪은 사람들이 세상에 또 있다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나 위로일까.


때때로 불행한 일이
좋은 사람들에게 생길 수 있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중)


세상에 불행 하나 겪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다못해 세상 다 가진 듯 사랑받는 어린아이도 중력에 의해 떨어진 사탕 쪼가리에 세상을 다 잃은 듯한 좌절감과 슬픔을 느낀다.


현대 사회에 이르러선 각종 미디어와 SNS 속에서 타인의 행복이 넘쳐흐른다. 행복의 총량이 있다면 이미 넘쳐흐른 행복에 밀려나 나 자신이 불행해진 거란 생각이 들 정도로 행복이 넘친다. 그런 상대적인 행복에 밀려 더욱 불행해지는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만큼 불행한 누군가를 찾아내어 그 사람의 불행의 머금고 내 불행이 특별한 게 아니라는 사실에 위로받는다.

그렇게 행복과 불행을 견주며 나의 오늘을 밟고 지나간다.


그리고는 이번엔 그 손톱만 한 작은 위안에 죄책감을 갖는다. 나는 그 위안에 대해 있는 힘껏 변명하고 싶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타인의 불행 그 자체에 위안을 얻는 것이 아니라, 불행을 견뎌내는 사람들의 태도에 위로받는 것이다.


나는 긍정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그런 태도를 가지려고 노력한다. 어쨌거나 불행을 견뎌내는 것에 긍정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일단 긍정한다.


아마 내가 나쁜 사람이라거나 불행의 아이콘이어서 그런 일을 겪게 된 것은 아닐 것이다. 생각해 보면, 압도적인 불행에 비해 초라하게 느껴질 뿐 내 삶엔 행운이 더 많았다. 


딱히 말할 곳이 없으므로 네 살배기 아들을 끌어안고 고단했던 하루를 어놓다.


-민아. 엄마는 더 일을 잘하고 싶은데 잘 안돼. 너무 어려워.

-엄마는 잘하고 이써.

-고마워. 그런데.. 엄마가 잘하는 게 뭘까?

-똑똑하자나    (하핫).

밥도 잘 만들고!(밥솥이 ) 

운전도 잘하고! (비 없인 아무 데도 못 가지만)

안경도 잘 쓰고....    (응..?)

종이접기도 잘하고..(어른이 할 만큼은 하지)

그리고 사랑스러워!


네가 훨씬 사랑스럽지.

짤막한 팔이 나를 끌어안고 내 등을 토닥인다.

또 요만큼 찾았다, 내 행운.


한 발짝 이전이 아무리 그립대도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순 없지만, 앞으로 내딛는 한 걸음이 나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갈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내일에 대한 두려움을 짓이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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