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살아졌어
참 어떻게 살까 싶더니만
진짜로 살민 살아졌네.
살민, 살아졌어
-'폭싹 속았수다' 중 애순의 말
남편의 다섯 번째 기일이었다.
비가 왔다.
그날처럼.
비가 매일 쏟아져 내렸고, 갓난애의 울음이 방안 가득 번졌다. 후텁지근한 더위 속에서도 나는 출산한 지 삼십일이 갓 넘은 몸뚱이를 꽁꽁 동여매야 했고, 작은 벽걸이 에어컨 한대만이 천장을 향해 서늘한 기운을 뿜어대고 있었다.
죽을 틈도 없이 사람들이 왔다. 자꾸자꾸 왔다. 거실 한구석엔 누군가 정성 들여 고아준 사골국이 솥째로 놓였고, 시판 미역국이나 햇반, 전복죽, 갈비탕 같은 것들이 쌓여갔다. 갖가지 밑반찬과 음료수 같은 것들이 냉장고를 채웠다.
친구들은 번갈아 연차를 쓰며 우리 집에서 자고 갔다. 술도 별로 안 좋아하면서 내가 원하는 만큼 같이 술을 마셔 주고, 내 대신 아이에게 분유를 타 먹이거나 우는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기도 했다. 내가 전화를 걸면 언제고 받아주었고 내 주절거림을 지루한 기색 없이 다 들어주었다. 이미 예약되어 있던 아이의 50일 기념사진을 포기하려 했을 땐, 친구 여럿이 부러 시간을 맞추어 같이 가 주기도 했다.
사고가 있은 직후에 아기를 데리고 예방접종을 갔다가 어찌어찌 골목주차를 하고 집에 들어왔는데 문득 정신을 차리니 골목이 웅성웅성 소란스러웠다.
내가 남의 집 대문을 막아 주차하고선 전화를 안 받는 바람에, 그 집주인아저씨가 화가 잔뜩 나 경찰까지 불렀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마침 우리 집에 오던 길이던 친구가 그 현장을 보고는 놀라서, 그 주차 거지같이 한 차의 주인이 좀 전에 남편을 사고로 잃은 아기엄마라고 변명해 주었다. 험한 말을 쏟아내던 아저씨도, 신고를 받고 온 경찰도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뒤로 그 골목길은 내게 조금쯤 친절해졌다. 차에 눈이 쌓이면 누군가 걷어주었고, 주차난으로 북적이는 와중에도 내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남아있곤 했다. 젊은 부부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던 건넛집 노부부와 옆집 아주머니도 어쩐지 관대해졌다.
세상에 저밖에 모르던 막냇동생은, 남편의 발인일에 영정을 들고 집안을 돌다가 아기 앞에 멈추자,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서른 살이 다 될 때까지도 치고받고 싸우던 둘째 동생은 하나뿐인 조카를 보러 매일 들렀다. 그리고 언제나 나를 자랑스러워하시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켜주시던 아빠. 아이가 백일이 될 때까지 아기 씻는 일을 도맡아주시곤, 아직까지도 육아를 도와주시는 엄마.
나는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이었나. 그때는 당연하게 받아들인 그 애정과 관심들이 이제 와 놀라운 이타심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살고 싶지 않대도 나를 살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어떻게든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강해서가 아니라, 그들 덕분이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그렇게 살아서 좋은 삶이었냐면, 그건 아직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내 시간이 멈추지 않고 흘러갔다는 것이며 그 사이에도 명확하게 반짝이는 순간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정말이다. 살면, 살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