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른 소원을 빌 거야
아이는 어느덧 만 5세가 되었다. 부쩍 자기 감정표현이 풍부해졌고 제법 정확하게 의사소통이 된다. 여기저기서 습득한 다양한 어휘를 실생활 곳곳에 활용하는데, 그게 물론 모두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그런 아이에게 나는 매일같이 예쁜 말을 강조한다. 자기의 감정을 잘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는데 그런 교육을 받지 않은 세대인 나로서는 그게 좀 많이 어렵다. 일단 아이의 짜증 섞인 말투를 들을 때마다 걱정이 과해진다. 혹시라도 아비가 없어 예의 없는 아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점점 무겁게 자라나는 사내아이를 엄마인 내가 감당할 수 없게 될까 봐.
그래서 오늘도 '예쁜 말!'을 반복해서 외친다. 그럴 때마다, 늘 말을 예쁘게 하던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온다. 남편이 있었으면 아이가 좀 더 예쁜 말을 잘 배웠을 텐데. 당신의 빈자리와 나의 모자람이 뒤섞인다. 나는 아이에게 아빠를 가르치고 싶었다. 너에게는 그런 아빠가 있었다고.
"아빠는 예쁜 말만 했어."
"그래?... 그럼 하늘나라 임금님한테도 예쁜 말만 하겠네."
".... 그러엄. 그래서 하늘나라 임금님이 아빠 엄청 예뻐하겠지"
아이가 잠시 생각을 고르는 듯하더니 말한다.
"하늘나라 임금님이 아빠 예뻐해서 땅에 가서 더 살아라 하면 좋겠다."
"....."
"엄마. 아빠가 있으면 좋겠어."
"있으면 뭐가 좋아?!"
나도 모르게 심통 맞은 말투가 튀어나왔다. 네가 아빠가 있으면 뭐가 좋은지를 알아?.... 그걸, 몰랐으면 좋겠는데. 나는 일분도 채 지나지 않아 내 마음을 솔직히 고백했다.
"사실은, 엄마도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어."
"근데 왜 '있으면 뭐가 좋아?'라고 했어?"
"아빠는 지금 없으니까 그런 얘기를 하면 더 속상해질까 봐 그랬어. 민이 속상하지 않았어?"
"속상했어."
"그럼 민아, 그럴 땐 가진 것들을 생각하면 기분이 좀 나아져. 너는 엄마가 있잖아."
"맞아."
잠시 침묵이 흐르고 아이가 말했다.
"엄마, 만약에 별똥별이 떨어지면... 별똥별이 떨어지기 전에,"
나는 벌써 먹먹해지는 마음을 누르며, 아이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레드화일러! 레드화일러! 레드화일러! 하고 세 번 말할 거야. 아니면 샌드버스터!샌드버스터!샌드버스터!"
"......?! 그게 뭔데?"
"헬로*봇!"
"갖고 싶어서..?!"
"응!"
... 네가 밝게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야.
있잖아.
엄마도 별똥별이 떨어지면 재빨리 소원을 빌 거야.
엄마는,
네가 행복한 사람으로 자라게 해달라고 할 거야.
그럼 나도 행복해질 것 같거든.
엄마는 아마 아빠를 다시 가질 수 없겠지만,
앞으로 너를 행복하게 하는 건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런 소원을 가지고 살아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