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늦게 퇴근을 하고 돌아오면 잊었던 반려견의 산책이 시작된다. 평소엔 오전에 산책을 하고 출근을 해야 하는데 도무지 시원해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 요즈음엔,
그 녀석의 발바닥 보호를 핑계로 밤산책을 즐기게 된다.
나의 탄생은 한여름.
어릴 때부터 그래서 열이 많나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난 한 여름이 태어났다.
갑자기 계절이 성격에 미치는 영향이 진짜 있는 걸까? 하는 어이없는 궁금증이 생긴다. 그럼 가을에 태어날걸.
가을을 좋아하게 된 건 딱히 다른 이유는 없다.
습하지도 뜨겁지도 않은 딱 적당함의 표본이랄까?
적당함. 적절함. 균형. 평균.
나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내가 가장 갖고 싶은 평정심이기도 하다. 도 아니면 모, 다소 격하게 살아온 날들이 나를 그런 기질로 만들었을까?
어쨌든 밤산책은 아침산책과 다른 냄새가 난다.
아침엔 온 세상이 나를 응원하고 푸시하는 분위기라면,
해가 지고 달이 보이기 시작한 저녁즈음엔
나를 안아주고 품어주는 무드다.
물론 우리 집 반려견은 무드와 상관없이, 그저 산책이 즐거워 연신 꼬리를 팔랑거리기 바쁘다. 그 모양새가 또 하나의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된다.
일희일비하지 말라지만,
난 그냥 느끼는 대로 일희일비해야겠다.
사소한 것에 과하게 기쁨을 생산하고 나눠야겠다.
밤산책, 그 녀석의 꼬리 춤을 관람하며
나를 안아주는 달빛 아래
몰래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