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듯 일어나 이불을 정리하고 간단한 식사를 준비하고 출근준비를 한다. 마음은 누구에게도 말 못 하고 있는 천근만근 무거운 돌덩어리를 가슴에 안고 있다. 그래서인가. 자꾸 걸음이 느려지고, 사지를 휘두르는 일이 작업처럼 느껴진다. 인지하지 않으면 안 써지는 낡은 관절인형 같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이다. 그런데 내가 실수를 했다면 조바심을 이기지 못한 성급함이었다. 혹독하게 그에 대한 마음의 대가를 치러내고 있는 내가 위태위태하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점점 줄어든다. "웃어도 될까?" 하는 죄책감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꺼지곤 한다.
어디서부터 잘 못 되었는지는 중요하진 않다.
이젠 어떻게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것인가이다.
정말 감사하게 운이 따라주어, 오전에 알바를 시작했다. 그렇게 오전 알바가 끝나면 오후엔 학원으로 출근을 한다. 저녁엔 둘째 아이의 학원 라이딩을 하거나, 필라테스를 가기도 한다. 그런데 이 모든 행위가 껍데기만 움직이며 돌아다니는 제삼자의 나인 듯 보인다.
알맹이는 어디로 갔을까?
난제 속에 묻혀
땅으로 꺼졌을까?
가짜인 내가 돌아다니며 많은 일들을 해내지만 나는 점점 희미해진다.
버티면 과연 될지, 누가 답을 좀 알려주면 참 좋겠다.
몇 년 몇 월 며칠까지만 잘 살아져 있으면, 이라고 데드라인을 정해주면 감사할 것 같다.
또 다른 문제들이 던져지더라도
학교에 방학이 있는 것처럼 짧은 가을 방학이라도 만끽할 수 있게 말이다.
그럼 고통의 데드라인까지 내 안의 남은 숨을 잘근잘근 작게 씹어 천천히 호흡하며 나를 내가 살려낼 수 있을 텐데.
결국 오늘도 껍데기는 알맹이를 찾지 못하고
둥둥 떠 다닌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통에 희망이라는 각인을 새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