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껍데기와 몸뚱이
"백혈구 수치가 현저히 낮아 당장 입원하셔서......"어쩌고, 저쩌고.
2020년 11월의 어느 날 응급실에서 담당의가 꺼낸 '백혈구'라는 단어가 갑자기 그녀를 나에게 불러들였다.
그간 내 삶에 허덕이느라 자주 찾아가지 못했던 그녀의 납골당이 그리웠다. 그녀의 기일이나 생일엔 커피 두 잔을 내려 나 한 잔, 그녀의 이름이 새겨진 묘비 앞에 한 잔을 건네며 혼자 주절주절 떠들곤 했었는데, 최근에는 언제 갔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생각난 김에 이번 주 꽃놀이 대신 그녀에게 가보야 지.) 사람은 참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더니 딱 내 모양새다.
그 짧은 찰나 그녀에 대한 그리움과 나에 대한 불안이 무엇이 먼저랄 것도 없이 한꺼번에 들이닥쳤지만, 나는 곧 이성을 찾아야 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설명이 필요했으며 멀쩡한 엄마 행색의 연기가 시급했다.
"지금 당장 입원은 어려워서요. 집에 가서 입원 준비를 하게 올게요."
하얀색 가운의 멀끔하지 못한 그 의사는 굉장히 단호했다.
"안됩니다. 지금 멸균실에 있어야 할 판이에요. 아이들에게서 감기라도 옮으면 큰일 나요. 지금 환자는 바이러스에 정말 취약한 상태입니다."
몇 분의 실랑이 끝에 나는 의사선 생님을 설득하고, 급히 택시를 불러 입원 준비를 하러 돌아왔다. 집으로 다시 돌아와 아이들에게 간단히 설명을 하고,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은 후라 주변 지인에게 아이들을 부탁할 수 있었다. 흔쾌히 우리 집에 와서 먹고 자며 아이들을 케어해 준 고마운 동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은 멀리 이사를 갔지만 일 년에 4~5번은 종종 소주 한 잔 기울이며 꿈과 비전을 이야기하는 평생 감사한 인연이다.)
홀로 입원 수속을 밟고, 하루 이틀 여러 검사를 진행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혼자 여러 입원 절차를 감당하기에 우리나라 입원 수속 절차는 꽤 복잡한 것 같다. 링거를 꼽은 채 환복 하는 것도 쉽지 않았으며, 식사도 쉽지 않았다. 아마 코로나19로 인해 대기 시간도 길어지는 통에, 응급실이 더 지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이틀 째가 되니 지속되던 고열도 서서히 잡히기 시작했으며, 규칙적인 식사와 충분한 수면은 나를 사람 모양으로 다듬기 시작했다. 아마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먹고, 자고를 무한 반복하며 오롯이 '휴식'에만 전념한 듯하다. 스스로 나는 평소 잠이 별로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렇게 내가 오랜 시간 자고 누워 있을 수 있는지 몰랐다. 나란 사람도 늦잠을 잘 수 있고, 침대에서 종일 뒹굴 거릴 수 있었다니.
나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한 이상한 워커 홀릭 또는 자기 계발러 중독이라 자부했는데, 오판이었다. 나도 멍 때리기, tv 보기, 스마트폰으로 유명 연예인의 스캔들 기사에 흥미를 느끼며, 평소 사고 싶던 물건을 검색하고 장바구니에 담았다, 취소했다를 반복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고 여자였다.
'나에 대해 이리도 몰랐다고?'
나도 '쉼'을 즐길 줄 알고, '쉼'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나에게 나는 사회적 역할로 인해 써야 할 여러 가면에 집중하느라 당근과 채찍 중 얼마나 '채찍'에만 몰두하였던가. 타인도 아닌 내가 나에게 내린 채찍은 자기학대로 그리고 연민으로 끌어왔었다는 병실에 누워 각성했다. 나는 시나브로 채찍 중독자가 되어 있었다.
각종 검사를 통해 모든 바이탈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온 것을 확인 후 퇴원 승인을 받았다. 결국 담당의도 고개를 갸우뚱하며 정확한 원인을 설명하지 못했고, 10일의 긴 휴가의 종지부를 찍었다. 혹자는 지방 대학병원보다 서울에 있는 유명한 병원을 가봐야 한다고 걱정해 주었지만 일단 '시간'을 더 소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한 달 후 재검진을 예약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꽤 여러 학부모님들께서 진심으로 걱정해 주시며 각종 비타민과 홍삼 등 을 보내 주셨고, 교육비 환불도 고사하신 분들이 있었기에 난 하루라도 기쁘고 벅찬 마음으로 빨리 돌아오고 싶었다.
퇴원 당일 아침,
'응급실 의사 선생님이 돌팔이였나? 너무 오버한 거 아니야? ' 투덜거림을 감출 수 없었다. 시간과 돈을 버리고, 교육비 환불에 아이들까지 불안에 떨게 한 그 의사 선생님이 잠시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곱씹어 보니 나에게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주신 분이었다. '달려라 하니'처럼 앞만 보며 달리던 하니에게 넌지시 발을 걸어 넘어뜨린 '은인'이었다고 할까. 그동안 큰 잔병치레 없이 건강 체질이라 여기며 나의 껍데기에 관심조차 주지 않았던 채찍 중독자에게 유일하게 '당근'을 선물해 주신 분이었다. 그날의 각성으로, 오전에는 보험설계사 개인 총무, 오후에는 공부방 수업, 저녁에는 블로그 포스팅 알바로 살아가고 있던 철인 3종 경기의 삶을 종료함과 동시에 드디어 채찍질을 멈추었다.
나의 몸뚱이과 껍데기에 대한 짧은 고찰 결과, 껍데기가 온전해야 두 개의 심장으로, 악순환의 대물림을 끊어낼 수 있다는 심플한 진리를 다시금 새겼다. 그렇게 나는 넘어진 자리에서 전속력 '달리기'가 아닌 느리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걷기' 위해 땅을 짚었다. 채찍은 저만치 두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