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근함과 낯설음의 경계

이제는 안녕해야 할 시간이에요..

by 나홀로 후키맘

https://youtu.be/BHvzn_hhDac

( 이 글을 읽기 전에 동영상을 꼭 봐주세요.)


뉴질랜드는 정말로 노인들에겐 천국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복지가 잘 되어 있다. 그런데 복지 국가가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닌 듯하다.

복지라는 개념이 일찍 도입되어서 모든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국가가 돌보아 주어야 한다는 인식이 너무 강하고 자녀들도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쉽게 털어 버리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시설이 좋고 복지가 좋아도 노인들은 치매 병동이나 격리된 양로원 등의 폐단에 대해서 오랫동안 들어와서 그런지 그런 시설에 가는 것을 너무나 두려워한다.

사람들과 격리되는 요양 시설은 외부인의 접근이 금지되어서 서포터 워커들도 들어갈 수가 없고 가족들도 거의 방문을 하지 않는 삶의 거의 마지막 단계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노인들은 완전히 격리되기 전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양로원이나 serviced apt 등의 시설에 머물러 있으려 한다.

이곳은 토스트 정도는 스스로 해 먹을 수 있게 토스트 기와 전기 포트 등이 갖추어져 있지만 대부분 양로원 측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한다. 또 세탁이나 청소 등 모든 서비스 역시 제공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거주자들은 치매이거나 건강 상태가 양호하진 않다.


예전에 위치가 좋아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한 노인 빌리지의 serviced apt를 방문하게 한 적이 있었다. 첫날 94 세의 C와 그 딸을 만나 면담을 했는데 C의 딸은 파트의 모든 구조를 다 설명해주고 엄마의 성향도 자세히 알려 주었었다. 그런데 며칠 후, 할머니의 속옷들이 낡아서 입을 수 없음을 알게 돼서 딸과 통화를 해보려는데 통화가 되지 않았고 메시지를 남겨도 답이 없어 결국에는 내가 속옷을 사다 주었던 경험이 있다. 첫날 이후 그녀는 다시는 엄마를 찾아오지 않았었다.


또 다른 양로원서 만난 배우같이 아름답던 R은 아들이 그려준 세계 지도를 문에 걸어 놓고 있었는데 그 지도엔 펜으로 아들이 영국에서 뉴질랜드로 항해 중이라는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다. 그녀를 담당하는 직원 말에 의하면 화살표는 그녀가 처음 시설에 들어왔던 3 년 전부터 표기되어 있었고 그녀는 매일매일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뉴질랜드에 연고자가 하나도 없고 경제적인 여유도 없어 국가 주택에 살던 E는 우울증과 노여움이 심해져 국가가 운영하는 요양원으로 옮겨야 했었는데 떠나는 날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화를 내는 등 너무나 강력하게 저항을 해서 결국은 앰뷸런스 요원들이 주사기로 진정제를 투약한 후에 실려나갔다.


매번 몸이 아프다거나 거실 바닥에 누워서 넘어졌다고 하면서 나를 놀라게 했던 T는 간호사가 내려와 격리 시설로 보낸다는 말 한마디만 하면 언제 그랬었느냐 싶을 정도로 바로 스스로 일어서곤 했다.


그리고 양로원에서 일하는 직원들에 의하면 이곳의 가장 큰 명절인 크리스마스와 노인들 생일날에는 식구들이 올 것 같아서 특별히 신경을 쓰는데 그때도 방문객들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 이란다


처음엔 이해가 안 가서 자녀들 욕을 했었는데 종합 병원 간호원으로 일하고 있는 친구 말이 병원서 지내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알려줘도 몸이 피곤하거나 회사일이 바쁘니 다음 날 가 보겠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아마도 이곳 사람들은 요양원이나 양로원으로 자신들을 인식하지 못하고 제대로 대화를 나눌 수 없는 부모님을 모시면서 미리 안녕이라고 고한 듯하다.

물론 그들도 속상하고 슬프고 마음 아파하겠지만 생각보다 담담하게 이제부턴 국가나 기관이 책임져야 한다는, 동양적인 관점에서 보면 매몰차기까지 한 방법으로 부모님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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