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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래된 타자기 Apr 09. 2024

노르만의 역사가 숨 쉬는 곳

몽생미셸 가는 길 172화


날씨가 화창하다. 봄꽃이 피기 시작하니 온몸이 노곤 해진다. 더군다나 아침 일찍 집을 떠나온 탓에 졸립기까지 하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한 것이 한껏 식곤증을 불러온다. 운전 중에 연거푸 하품을 하다가 ‘쉬다 갈까’ 마침내 맘을 고쳐먹는다.


내비게이션은 아직도 목적지가 50킬로미터나 남아있음을 일러준다. 그래도 많이 달려왔다. 다시 한번 더 기다란 휴식을 취할 것을 고민하는 중에 도로 표지판을 보고 마음이 먼저 고속도로를 빠져나간다.


어느 겨울날이었을 것이다. 릴(Risle) 강가의 작은 마을 퐁토드메흐(Pont-Audemer)를 찾은 때가. 표지판을 보니 반갑기만 하다.



도빌 바닷가를 찾았다가 파리로 되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들른 퐁토드메흐 마을은 릴 강 협곡에 들어앉은 작은 마을이었다. 근교를 포함하면 시골에서 꽤 넓은 면적을 자랑하지만, 다시 찾아간 마을은 여전히 아담한 크기로 방문객을 맞아준다.


릴 강은 오흔느(Orne) 지방 해발 275여 미터 높이의 산 아래에서 발원하여 세느 강으로 흘러드는 지류다. 길이도 145여 킬로미터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실개천은 명상과 묵상의 마을 르 백엘루엥(Le Bec-Helouin)을 지나면서 폭이 넓어지고 퐁토드메흐에 이르면 실한 강줄기를 이루면서 세느 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퐁토드메흐를 먹여 살린 강이 릴 강이요, 이 강을 에둘러 흐르며 시대마다 작은 역사들이 켜켜이 쌓여갔다.


마을을 에둘러 흐르는 강이 릴(Risle) 강이다. 퐁토드메흐를 소개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발견한 홍보용 일러스트.


자동차를 몰아 마을 진입로에 들어서자마자 마을 한복판 공화국 광장 대로(Rue de la République)로 향한다. 마을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생투앙(Saint-Ouen) 성당이 거기에 있다.


성당 앞에 차를 주차시키고는 성당 맞은편 카페로 들어선다. 오후 한창 일할 시간이어서인지 카페 안이 한산하다. 목마른 사람처럼 바텐에 서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시킨다. 그때까지 아무 말이 없던 아내는 출입문 입구에 세워진 엽서 꽂이대에 꽂혀있는 그림엽서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다.


커피 한 잔이 주는 오후의 행복한 달콤함, 그것 만으로도 기분이 확 전환된다. 이제 로마네스크 시기에 지은 생투앙 성당으로 향할 시간이다.


도시의 상징인 생투앙(Saint-Ouen) 성당


로마네스크 시대의 종교 건축물들은 고대 로마 바실리카 양식을 충실히 따라 지은 육중한 요새를 방불케 했다. 이후 로마네스크 시기에 지어진 건축물들을 바탕으로 날렵하고도 찬란한 고딕 양식이 파리를 중심으로하여 프랑스에서 찬란하게 꽃을 피웠다. 그러다가 르네상스 시기에 이르면 종교 건축물들은 화려해지고 바로크 시대에 이르면 웅장하고 장엄해지기까지 한다.


거대한 석회암 덩어리를 잘라 다듬어 한 장 한 장씩 쌓아 올린 육중한 로마네스크 건축물들은 고딕 시기에 이르러 화려한 날개를 달았으나 전지전능한 예수 그리스도 상만큼은 초라해지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고개마저 푹 떨구기까지 한다.


이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측은지심이 고딕의 상징으로 자리 잡기까지에는 인간 저 내면 깊숙이에서 우러나오는 고통과 부활에의 의지를 감안해야 한다. 매서운 폭풍우를 동반한 겨울이 가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오듯,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야말로 로마네스크에서 고딕으로 이행하는 시기에 가장 적절히 강조된 자연법칙에 기댄 기독교적 상징으로 자리했을 법하다.


성당 정면 모습


퐁토드메흐 성당은 처음 로마네스크 시기에 초석이 놓여 생투앙(Saint Ouen)에게 봉헌된 천주교회다. 생투앙은 서기 684년에 영면한 루앙의 대주교였던 인물이다.


성인의 이름은 성당만이 아니라 프랑스 여러 곳의 지명으로도 쓰였다. 파리 인근의 생투앙 마을도 그 한 예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은 성가대석을 제외하곤 로마네스크 시기의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순 없지만, 천장구조가 참으로 독특하다. 노르망디 종교 건축물답게 천장이 돌이 아니라 나무쪽을 이어 붙인 엎어진 배 형상이다. 이 역시 바이킹의 후손들이 지은 기독교 건축물임을 여실히 입증해주고 있다.


나무조각을 이어 붙여 만든 배를 거꾸로 엎어놓은 듯한 천장 구조


성당 파사드(정면 입구)는 굳이 어느 양식이라 딱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럽다. 종탑도 한쪽뿐이다. 이 엉성하기 짝이 없는 한 쪽만 세워진 종탑이 품어내는 소박함은 저 기원전 좌우대칭만이 완벽한 우주의 조화를 건축물 안에 구현할 수 있다는 확고한 건축적 신념을 지녔던 그리스 인들을 비웃는 듯하다.


이런 파격이 더 맘에 드는 이유의 근원을 스스로에게 따져 물을 수는 없지만, 이는 아마도 노르망디 지방에서만 느끼는 친근한 생경함일 수 있다.


성당을 나오자 성당 앞 광장이 이내 어두워졌다. 오가는 사람보다는 광장을 향해 달려오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이 눈부시다.


목적지는 바뀌어 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낼 생각에 은근히 설렌다. 인근에 아주 훌륭한 숙소가 있다. 호텔 이름도 근사하다. La Belle ile sur Risle, ‘릴 강가의 아름다운 섬’이란 뜻이다. 멋진 밤이 될 것 같다.


저녁엔 어떤 요리가 나올까 군침이 도는 것은 릴 강가의 마을 전체가 푸근하다는 인상 때문이다. 오가는 주민들의 눈치도 정감어린 표정이다. 노르망디에서 늘 보았던 인상, 그 감미로운 노을에 빠져드는 저녁이다.


낯선 방문객을 푸근하게 맞는 호들갑스럽지 않은 불빛.




퐁토드메흐(Pont-Audemer)는 파리로부터 자동차로 1시간 40분 거리에 위치한 칼바도스(Calvados)의 전형적인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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