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보느리가 들려주는 로마네스크 예술 이야기 62화
[대문 사진] 테루엘 살바도레 무데하르 타워
이슬람 건축과 기독교 건축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 무데하르 건축 예술이 자리합니다. 서로 다른 두 건축 양식을 한데 종합한 무데하르 건축이 이베리아 반도에 출현한 것은 카스티야 국왕이었던 알폰소 6세가 톨레도를 점령한 시기인 1085년부터 아라곤의 국왕 알폰소 1세가 사라고사를 지배한 1118년 사이입니다. 무데하르 건축 예술은 레꽁끼스타(고토 회복 운동) 기간 내내 에스파냐 기독교 왕국에서 꽃을 피우면서 15세기 말까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 이어지다 근세에 와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무데하르(Mudéjar)란 안달루시아 지역에 남아있던 이슬람 인들을 가리키는 말로 기독교 국왕의 지배하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던 이들을 일컫습니다. 무데하르는 기독교 왕국에게 조공을 바치는 대가로 그들의 종교와 언어를 유지하면서 삶을 계속 영위해나갈 수 있었죠. 무어 인들의 이슬람 예술과 이슬람 성전들에 매혹당한 기독교 국왕들이 이를 시험하고자 무데하르들을 끌어들인 것입니다.
로마네스크 건축과 고딕 건축의 장에 무데하르들을 끌어들인 기독교도 국왕들은 로마네스크-고딕의 장인들과 건축가들로 하여금 그들과 경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유는 기독교 왕국에 새로 지을 건축물들을 좀 더 멋지게 지으려는 의도에서였죠. 이로 인해 탄생한 건축물들이 규모가 작은 교회를 비롯하여 대성당인 카테드랄, 수도원, 궁전 등이었습니다. 이러한 만남과 부딪힘 속에 탄생한 것이 새로운 미적 기준으로 떠오른 무데하르 예술이었습니다.
무데하르 건축 예술은 세 유형의 문화가 공존하던 에스파냐에서 이슬람 성전이나 유대인 성전을 짓는데도 활용되었습니다. 이때 지어진 이슬람 성전이 톨레도 밥 알 마르둠인데, 오늘날 크리스토 델라 루즈 성당으로 바뀌었고, 유대인 성전은 오늘날 산타 마리아 라 블랑카로 바뀌었습니다.
무데하르 건축은 벽돌을 건축자재로 사용했다는 점과 독특한 장식적 요소에 특징이 있습니다. 벽이나 바닥 장식을 위해 형형색색의 도자기 타일을 활용했음은 물론 무어 인들이 성벽에 사용한 도기 벽돌까지 이용했습니다.
파사드와 내부 벽들은 모두 날카로운 끌이나 칼로 조각한 기하학적 문양의 프리즈 장식과 식물, 별들을 모티프로 한 장식 무늬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는 아라베스크 문양과 식물을 모티프로 한 무늬의 또 다른 변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하여 공들여 제작한 나무로 만든 천장들은 탄성을 자아내게 만듭니다. 원보다는 작고 반원보다는 큰 형태의 아치들과 여러 장의 꽃잎 모양의 문양들을 활용한 파사드 장식은 안쪽 벽이 막힌 단순한 형태를 이루면서 서로 교차하는 형태를 띤 아케이드들과 함께 무데하르 장식 술을 특징짓고 있죠.
무데하르 건축 예술이 꽃피워진 지역은 세 군데로 압축됩니다. 첫째가 아라곤 지역으로 사라고사, 테루엘, 칼라타유드 등이며, 둘째로는 카스티야 지역으로 라 모라나, 티에라 데 캄포스, 톨레도이고, 셋째로는 에스트레마두라와 안달루시아 지역으로 세비야와 코르도바, 그라나다를 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