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없는 성장이 가능할까요?
고통 없는 성장이 가능하다면 누구나 그 길을 택할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고통을 겪고 싶지 않아 합니다. 고통을 최대한 회피하고 싶어 합니다. 그 누구에게 묻는다 해도 의문의 여지없이, 가능하면 고통 없이 즐겁기만 한 삶이 좋다고 생각하겠지요.
20대 후반의 남성인 재원 씨도 고통 없는 삶을 꿈꾸었습니다. 사내 상담실을 처음 방문했을 때 경직된 그의 표정은 시니컬함 자체였습니다. 그 표정은 ‘난 회사에서 하라고 해서 온 거예요. 귀찮으니까 빨리 끝내요.’라고 말하는 듯 했습니다. 회사 복지 차원의 반강제적 상담이니 이해가 되면서도 그런 그를 마주하는 게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심리상담을 받아야 하는 것 자체에 대한 불만을 언급한 뒤 본격적으로 회사와 자기가 맡은 직무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입사 5개월 차인 그는 맡은 일의 특성상 매일 정식 출근시각보다 훨씬 더 일찍 출근을 해야 하고, 일이 많아서 휴가도 마음대로 쓸 수 없다고 투덜거리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이 불만에서 저 불만을 오가며 종잡을 수 없이 겅중거렸습니다. 회사를 비꼬는 말을 할 때면 한쪽 입술이 올라가면서 더욱 냉소적인 표정을 지었고,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고 불분명한 말투로 혼자 중얼거리듯 말을 이어 갔습니다. 말이 길어질수록 오히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점점 더 알 수 없었습니다. 이야기가 길을 잃는 느낌이 들 즈음, 그의 말을 끊고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상담사가 자기 대신 회사에 건의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아’ 작은 탄식이 나오려는 것을 참고 그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재원 씨가 직접 해보고 싶은 부분은 없나요?”
“기본권 침해라고 부모님이 회사에 전화를 해도 안 바뀌더라고요.”
그가 다소 엉뚱한 대답을 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의 부모가 지역 유지여서 사회 유력인사들과 친분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회사에 입사한 것도 부모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상담에 오기 전에 벌써 몇 번이고 그의 부모가 회사에 재원 씨 대신 불만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회사 사람들도 그를 곱게 볼 리가 없었습니다. 주위의 협조를 제때 받지 못하니 일처리가 늦어지고 일이 점점 쌓여 갔습니다. 그것은 고스란히 그가 투덜거릴 만한 명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물론 그는 이 자세한 내막을 다 이야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잠깐의 침묵 뒤에 그가 말했습니다.
“하다가 못 참겠으면 나가겠지요.”
이 말을 듣고 회사를 그만 둘 용기는 있냐고 물었습니다.
“이렇게 살다가 죽겠죠 뭐.”
그 자신이 생각해도 말이 좀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갑자기 자기의 유년 시절을 풀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유복하게 자란 그는 크면서 고통을 맛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고통스러울 만한 기회를 부모가 모두 차단해 왔기 때문입니다. 고통의 싹이 돋아나려고 하면 언제나 부모가 등장해 냉큼 그 싹을 잘라주었는데 직장에서만큼은 그 방법이 통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생전 처음 고통을 제대로 마주해야 하는데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조차 그에게는 낯선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자기의 현재 모습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에서 희미한 희망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 희망은 몇 번이고 자기 대신 회사에 말해 달라는 그의 질긴 요구에 이내 꺾였습니다. 상담자가 그의 말대로 분명하게 해 주겠다는 대답을 하지 않자 그는 신통치 않다고 느꼈는지 갑자기 일이 바쁘다면서 벌떡 일어서서 상담실을 나가 버렸습니다. 그가 말하던 이야기의 흐름처럼 나갈 때도 그는 느닷없었습니다.
나가는 뒷모습에서 그의 어깨가 그가 입은 코트를 다 채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연한 밤색 체크무늬 코트는 그의 양 어깨 폭보다 한참 남아서 아래로 쳐져 있었습니다. 그가 나가고 나서 닫힌 문을 바라보며 ‘어깨를 키울 수 없다면 옷을 바꿔야지.’하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씁쓸한 상담의 뒷맛을 뒤로하고 그가 다시 찾아온다면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였지만- 그에게 묻고 싶어 졌습니다.
고통 없는 삶은 없다는 것을 당신도 알 테지요.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고통을 선택하고 있나요?
당신이 선택한 고통은 선택하지 않은 고통과 달리 어떤 가치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