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사의 편지 3

내가 나를 미워하는 이유. 분노를 삼킨 대가.

by 나무둘

안녕하세요 보연 씨.

잘 지내셨나요? 연지 곤지 찍은 듯 볼그레해지던 두 볼은 여전한지요? 울고 웃으면 더욱 붉어지던 보연 씨의 얼굴이 생각납니다. 신호등처럼 켜지던 두 볼을 떠올리니 오늘 보연 씨의 감정 신호등이 무슨 색일지 궁금하네요.


감정은 자기의 본모습을 한 번에 드러내는 경우가 별로 없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심리상담에 와서 처음에 쏟아내는 감정에는 다른 감정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냥 막연히 불쾌하고 답답해서 상담을 찾아왔다고 하고는 자기 감정이 정말로 무엇인지는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참 많지요. 무언가 참을 수 없는 느낌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말할 수 없는 것. 알 수 없는 것. 밝혀지지 않은 것. 감정을 하나둘 켜켜이 쌓아 올리다보면 가장 밑층에 무엇이 있었는지 까마득해지곤 합니다. 그래서 심리상담에서는 한 올 한 올 감정과 생각을 따라 들어가지요. 보연 씨가 상담에서 경험했듯이 말이에요.


그것이 무엇인지 대번에 말할 수 없는 것은 오히려 수많은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명확하게 알아차릴 수 없어서 도리어 끊임없이 이야기가 흘러 나와야 했던 시간.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뭐가 뭔지 알 수 없이 불쾌하고 답답하기만 했던 가슴이 나름의 길을 찾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터져서 직장 동료의 눈길을 피해 숨어야했고 길을 가다가 갑자기 눈물이 터져서 길모퉁이에 주저앉아 한참 자기 자신을 추슬러야했던 시간. 그건 어떤 감정이기 전에 일단 당혹스러움이었지요. 내가 왜 이러는지, 이해하려고 할 여유도 없이 일단 현장에서의 민망함을 무마해야 하는데 급급했으니까요. 알려지지 않은 그 마음은 더욱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지요. 얽히고설켜 미로에 갇혀 버린 듯한 그 마음. 내 마음이 어디에서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종잡을 수 없는 심정이 많이 답답했을 것 같습니다.


카멜레온 같은 감정은 진짜 모습을 선뜻 보여주지 않습니다. 우울인가 싶던 그 감정은 이내 다른 색으로 색깔을 바꿉니다. 자기를 또렷이 드러내지 않던 우울의 시간. 그 시간을 우리는 함께 건넜습니다. 보연 씨도 상담을 하면서 우울에도 다양한 색이 있다는 것을 점차 발견하셨지요. 진흙탕 같은 우울이 있는가 하면 이상한 표현이지만 맑고 푸른 우울도 있었지요. 또 다른 우울은 뜨거운 김을 내며 지표를 뚫고 솟아올랐고 어떤 우울은 우물 깊은 곳에 있어 두레박으로 길어 올려야 했지요. 우울도 사계절을 지나며 마음의 지형을 바꾸고 자기 자신을 체험할, 그 나름의 시간이 필요했나 봅니다.


우리가 함께 그 시간을 다 보내고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던 날, 얼음물에 세수한 듯 화들짝 깨어났던 보연 씨의 표정을 기억합니다. 그날은 우울 아래 자기 자신에 대한 미움이 한가득 있다는 것을 발견했던 날이었지요. 종잡을 수 없이 미묘하게 각양각생의 표정을 보여주었던 우울이 마지막으로 안내했던 곳. 그곳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미움을 만나기 시작하자 우울은 마치 자기 소임을 다했다는 듯 떠나갔습니다.


가라앉아 있던 분노가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자기 안에 이렇게 맹렬한 분노가 있는 줄은 몰랐다고 말씀하셨지요. 직장 상사와 시부모의 선을 넘는 태도와 간섭에도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하고 맞추어주며 당하기만 했던 세월, 묵혀 놓았던 감정이 쏟아지기 시작했지요. 진행 중인 일에 사사건건 개입해서 교정하는 등 원치 않는 도움을 주며 은근히 잘난 체하는 직장 상사, 아무 때나 예고 없이 찾아와 살림살이를 자기 스타일대로 정리하며 본인에게만 정다운 구박을 하고 생색내는 시어머니, 시댁만의 법도를 따르라며 말 한 마디 대응할 수 없게 무거운 침묵으로 강요하던 시아버지.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꼈지만 딱히 뭐가 잘못됐다고 말하지 못하고 견딘 오랜 세월 동안 쌓인 분노의 에너지가 맹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동안 표면적으로 그토록 우울했던 것은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나름대로 수습하고 감추려던 것이었겠지요.


상대를 향한 분노가 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자기를 향해서 돌아오기를 수차례. 익숙하지 않은 분노는 양 갈래 길에서 엉거주춤 서 있다가 차라리 자기를 미워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자신을 향했던 분노의 칼끝이 상대를 향할 때면 스스로도 매우 놀라며 그 감정을 건드리면 안 될 것 같다고 하셨지요. 자기 안에 불길을 가두려다가 자기를 다 태우고 결국 상대도 태울 것 같은 느낌. 나를 미워하는 것으로는 분노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점차 분명해졌습니다. 자기를 마음껏 미워할 수도 없게 된 분노의 압력은 높아만 가고 상담 중에 상대를 향해 분통이 터지는 시간이 점점 더 잦아졌습니다. 그런 자기 모습이 맹독을 품은 코브라가 춤추는 것 같다고 하셨지요. 그때 와야 할 것이 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기의 스테이지를 기다리던 코브라가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구나. 카멜레온에서 코브라로. 이제 변신은 단순한 색의 변화가 아니라 형태의 진화에 이르렀구나.


그렇게 분노를 느끼고 표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의 독에 자기가 물려 죽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셨지요. 위험해 보이는 자기를 왜 달래지 않느냐고 물었던 것을 기억하시는지요? 우울해 하던 자기 자신이 더 안전한 것 같다며. 말씀하신 대로 섣부른 위로 한 마디 건네지 않으며 곁을 지켰습니다. 독기 자체보다 더 나아가 내면에 독이 있다는 사실보다도 위험한 것은 독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상태입니다. 독을 안전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그 독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그런 이유로 보연 씨가 안전하게 자기의 분노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습니다. 나중에 자기만의 과정을 끝내고 이해하셨지요. 우울도 분노도 끝이 아니라는 것을. 진화는 거기가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컷 미워하고 분노하며 살풀이를 했던 시간. 나대로 살지 못하게 한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나대로 살지 못했던 삶에 대한 분노를 가늠하면서 자기에 대한 미움은 점차 사그라졌습니다. 스스로 해독했던 시간 뒤에 잔잔하게 남은 불길을 다스리며 이제는 상대도 나도 미워할 힘이 없다고 하셨지요. 나를 미워하는 것은 참 잔인한 일이었다고. 그때 과거형으로 말하는 걸 아시느냐고, 이제 자기 미움을 졸업하셨느냐는 제 얘기를 듣고 환하게 웃으셨지요. 티 없이 맑은 웃음. 남의 감정까지 짊어지고 살아왔던 무게를 다 내려놓은 듯 홀가분해진 표정. 마음껏 웃고 싶었지만 다 웃어내지 못한 보연 씨의 지난 삶이 한꺼번에 웃음을 터뜨리는 것 같았습니다. 언젠가 그런 말씀을 하셨지요. 내 안의 미움과 화를 만나면서 오히려 내가 사랑스럽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그 말과 잘 어울리는 그런 웃음이었습니다. 자기가 느끼는 대로 속마음을 온전히 꺼내는 그 웃음에는 천진함이 넘쳤습니다.


이미 여러 변화를 거듭한 사람은 앞으로의 삶에 어떤 굴곡이 찾아와도 잘 넘어가기 마련입니다. 그동안 우울과 미움과 분노가 변주한 시간을 잘 견디셨습니다. 무엇인지 알 수 없었던 마음이 뚜렷이 존재를 드러낸 시간, 그 마음이 어디로 튈지 몰라 조마조마했던 시간을 끝까지 잘 통과하셨습니다. 끝내 자기 안에 사랑을 발견한 보연 씨. 보연 씨가 그 모든 시간을 진솔한 얼굴로 마주했듯이 삶도 보연 씨에게 더욱 투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길 바랍니다.



▼ 보연 씨와의 상담 사례는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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