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에 찾아오는 분들은 대개 둘 중 하나입니다. 표면적으로는 화가 나 있거나 우울한 상태로 찾아오지요. 분노와 우울감 뒤에는 다양한 감정이 얽혀 있지만 당장은 드러나지 않고 숨어 있습니다. 이면에 숨은 감정들은 상담을 받으면서 서서히 자기 존재를 드러냅니다. 요새는 보지 못하지만 예전에는 어머니가 쌀을 바닥에 고르게 펼쳐놓고 쌀벌레를 골라내는 모습을 종종 본 적이 있습니다. 그처럼 심리상담 중에는 쌀인 듯 숨어 있던 쌀벌레 같은 감정들을 골라내는 작업을 합니다. 그런 감정을 찾아보고 마주하면서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더욱 잘 이해하게 되지요.
30대 중반 여성 보연 씨가 처음 상담을 받기로 결심한 이유는 우울감 때문이었습니다. 최근 들어 이유도 알 수 없이 눈물을 흘리는 자기 모습을 자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보연 씨는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도 갑자기 울컥하게 되는 경우가 자꾸 생겼고 그때마다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써 참고 마음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길을 가다가도 갑자기 눈물이 터질 때가 있어서 길가에 보이지 앉는 구석으로 가서 한참 눈물을 흘린 후에야 가던 길을 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상담에 와서도 참기 힘들었던 기억을 떠올려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보연 씨는 다시 눈물을 주르륵 흘렸습니다. 그가 일상을 방해받을 정도로 자주 울컥하고 눈물이 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렇게 자주 눈물이 나는데 원인도 알 수 없으니 본인은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심리상담은 대개 감정의 흐름을 따라서 진행이 됩니다. 보연 씨처럼 눈물이 범람할 때는 눈물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서, 눈물이 알려주는 방향을 좇아가게 됩니다. 여름철 한바탕 비가 오고 산에서 내려오던 물이 넘쳐흐르면 새로운 물길이 트이고 주변의 지형도 바뀌는 경우가 있지요. 거센 물의 흐름은 자기 갈 길을 찾아 가면서 이전에는 잠겨 있던 지형물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마치 그런 자연 현상처럼 눈물이 흐르는 길은 마음의 지형을 새롭게 바꾸어 놓습니다.
보연 씨가 눈물을 쏟아낼 때마다 우울감도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 갔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우울에서 주체할 수 있는 우울로,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우울에서 묘하게도 생동감이 느껴지는 우울로. 그는 점차 변해가는 자기 마음을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이해하게 됐습니다.
'울컥해지는 마음의 밑에 나 자신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었구나.'
사실 그가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우울감을 느낀 것은 자기를 향한 분노 때문이었습니다. 직장에서는 흔히 ‘또라이’라고 할 만한 직장상사에게 오랫동안 시달리고, 집안에서는 시부모의 도를 넘는 간섭과 막말에 오랫동안 시달리면서 말 한 마디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그 분노가 안에서 문드러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활개를 쳐도 부족했을 그 분노는 방향을 틀어서 타인이 아닌 자기를 향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부당한 타인의 무례함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자기에게 화가 나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리고 자기가 밉고 자기에게 화가 나는 정도가 지나치게 되자 그 감정이 어떤 식으로든 표현이 되어야 했습니다. 살면서 한 번도 화를 제대로 표현해 본 적이 없는 보연 씨의 경우는 그 화를 분노보다는 우울로 경험하게 된 것이지요.
오랜 상담 과정에서 이런 면들을 속속 들여다보면서 보연 씨는 참 마음 아파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저 또한 마음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감동적이기도 했습니다. 글로 풀어 쓰면 명료한 이 과정이 보연 씨에게는 쌀벌레를 골라내듯이 때로는 지루하고 지겹고 힘든 일이었을 테니까요. 그 시간과 과정을 잘 견디고 나서, 이제는 너무도 밉던 자기 자신을 사랑해주고 싶다는 보연 씨의 변화가 참 감동적이었던 것이지요.
상담을 시작한지도 몇 달이 지났습니다. 일상에서 울컥하며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느낌이 거의 잦아들었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갈 길이 남았습니다. 그렇지만 보연 씨의 말은 앞으로의 날들에 희망을 예감하게 합니다.
“난 내가 밉다는 걸 느낄 수 있어서 좋아요. 내 안의 미움과 화를 진하게 만날 때마다 내가 사랑스럽다는 것 또한 알게 됐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