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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스위머 Dec 17. 2024

수영말고 느는게 따로 있어요

몸치 운동치가 도전하는 수영일기 7탄- 광클의 티켓팅

  이제 4개의 영법을 다 배우고 나니 수영을 아주 잘하진 못하지만 수영장 가는 발걸음이 왠지 여유가 있어졌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초보가 아니다는 생각이 하늘을 찌르는 자신감과 자만심 그 사이 어디쯤을 날고 있었다. 4개 영법 중에서 가장 힘든 건 뭐니 뭐니 해도 접영, 가장 잘 되는 건 의외로 평영, 가장 느린 건 배영, 싫으나 죽으나 매일 하는 건 자유형.

  접영을 할 때마다 허우적거리고, 평영을 할 때마다 도대체 쏜살같은 발차기는 어떻게 하는지 아직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제는 선생님의 설명 하나하나를 주워듣고 내 문제점과 연결할 수 있게 됐다.


  이제 수영이 좀 여유로워지니 수영장 안의 수영복들이 눈에 들어온다. 메인풀에서 수업하는 연수반의 화려한 수영복들을 보고 있노라면 "저건 어느 수영복인가" 싶은 디자인이 눈에 띈다. 그러는 사이 가만 보니 나도 모르게 우리 반에 있는 세 개 레인의 사람들도 하나하나 수영복이 점점 바뀌어 간다.

신기초에 입문하기 전에 2박 3일을 고민했던 내 수영복은 이제 너무 지겨워졌다. 아니 나도 사실 수영실력은 안되지만 수영복이라도 예쁜 거 입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사실 수영을 잘해야 수영복도 멋지게 입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심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건 그저 남의 시선을 고려한 나만의 고민일 뿐이었다. 그런 나와달리 나의 유일한 수친 그녀는 기초반 때부터 화려한 컬러의 수영복을 PICK 한 당당한 수영인이었다.

"와, 언니는 수영복이랑 수모가 엄청 예쁜 게 많은 거 같아요!" 내가 이렇게 말할 때면,


"운동복인데 열심히 운동하고 싶은 마음 들게 내가 입고 싶은 거 마음껏 입어야지. 우리가 어디 가서 이런 수영복 입겠어. 애들 데리고 워터파크 갈 때는 못 입잖아. 여기서나 실컷 입어야지"



쿨한 그녀, 역시나 당당한 한마디로 나의 정신을 순식간에 확 일깨워준다.

그래, 맞아. 매일매일 수영장에 운동하러 오는 발걸음을 즐겁게 하는 필요가 좀 있지. 나 스스로 예쁜 수영복 입고 즐겁게 수영을 즐겨야지. 사실 그동안 운동을 무지하게 싫어하기도 하고, 운동을 굳이 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니 몸매에 뛰어난 자신감도 없어서 그다지 운동복에 관심이란 게 없었다. 요가나 필라테스를 잠깐 시도했을 때도 레깅스 하나 입고 나가는 발걸음이 부끄러워 옷으로 목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매고 가서 허둥지둥 운동하고 오는 게 다였다. 사실 운동복이란 게 기능도 있고, 심미도 있고, 내 만족도 있는 부분인데 난 그걸 그동안 너무 무시하며 지내온 거 아닌가 싶은 마음에 수영복 검색을 다시 시작했다.




  다시 시작된 수영복 탐색에 목표는 오직 하나! 무채색 탈출이다. 검은색, 회색, 흰색, 베이지색, 남색만이 가득 찬 옷장도 모자라 수영복 마저 그렇게 채울 순 없다. 뭔가 무채색이 아닌 색들의 수영복을 고르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수영복의 세계는 여전히 너무나 넓고 방대하며 컬러, 패턴, 백스타일 모든 것이 너무나 선택지가 많은 것.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 나를 보며 쿨한 수진은 옆에서 쓰윽 수영복 사진 하나를 내밀어 보여줬다.

  오색빛깔 무지개떡 같은 갖가지 모든 컬러가 있는데 패턴은 솔리드이지만 백스타일도 내 맘대로 묶을 수도 있고 고정형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엉덩이 언저리에 있는 네 줄의 포인트가 눈에 띄었다.

그것은 바로 졸린 이었다!


졸린 코리아 홈페이지



  수영복이라고는 아레나, 배럴밖에 모르는 무지한 나의 눈에 들어온 수영복 사진. "어! 이거 나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연수반 사람들이 입은 거 봤어요!" 저 수영복 참 신기하게 생겼네. 하고 지나가는 길에 봤던 그 수영복 그게 바로 졸린이었다. 네 줄의 매력. 그 매력적인 수영복 가운데 네 줄이 얼마나 예뻐 보이던지 사이트를 일주일은 넘게 구경하며 내가 입은 모습을 상상해 보곤 했다.

하지만 졸린 은 내가 사고 싶다고 언제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 또한 너무 신세계이었다.) 신제품이 출시되는 날이 공지가 되면 마치 아이돌 콘서트 티켓 예매하듯이, 땡 하는 시간에 광클을 해야만 살 수 있는 졸켓팅을 거쳐야만 했다. 이런 세계가 있었다니. 나중에 관심을 두고 보니 알게 된 사실이지만 졸린 뿐 아니라 나이키도 내가 모르는 수많은 수영복 브랜드들이 거의 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내 손에 마음에 드는 신상 수영복을 얻을 수 있었다. 수영 전에 누가 분명 수영이 제일 돈 안 드는 운동이라고 했는데, 가장 장비빨이 없는 운동이라고 했는데 그건 다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산 넘어 산이라고 수영복을 가만히 이리저리 구경하다 보니 수영장비의 세계란 것이 수모도, 수경도, 오리발도, 심지어 수영가방도 치열한 장비빨의 운동이 수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무채색 수영복이 지겨워진 이상 더는 남색과 검은색 사이를 오갈 순 없다.

 몇월 몇일 몇시 몇분 시간에 맞춰 아이 하원차를 기다리며 졸린 티켓팅을 시작한다. 재빠르고 망설임 없는 클릭만이 살길이다. 그렇게 첫 도전에서 성공한 나의 졸켓팅의 결과. 그렇게 나의 첫 졸린은 바로.

썬키스트. 형광주황이었다! 자, 이제 수모차례인가? 휴. 다시 졸켓팅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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