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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스위머 Dec 02. 2024

수영을 하면 포기해야 하는 것들

몸치 운동치가 도전하는 수영일기 5탄 - 인생의 일장일단

수영 중급반, 중급반의 하이라이트는 가장 재미나지만 가장 안 되는 영법 중 하나인 평영의 시작이다. 개구리 뒷다리짝 같은 발차기를 하고 있노라면 이거 의외로 재미있는데 싶다가도 그럼에도 물을 갈라 앞으로 가는 느낌이 없다는 사실에 강한 현타가 오면서 맴맴 돌고 있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평영의 가장 어려운 점은 발차기를 해도 앞으로 나가지 않은데다 거기에 손을 젓는 스트로크 타이밍도 맞춰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팔과 다리의 합이 안 맞으면 그야말로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허우적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는 점.



수영을 다니면서 가장 좋은건 몸에 물이 닿는 느낌이다. 물론 물이 무서운 사람도 있지만 나의 경우에는 이게 참 좋았다. 스트레스 받았던 일도, 힘들었던 마음도, 육아의 지치고 고된 몸도 물속에 얼굴을 들이밀고 수영을 하고 있다 보면 귀에는 바깥소리들이 멀어지면서 아무 소리도 들리고 않고 그저 물과 햇빛이 만나는 반짝임만 보이는 그 순간의 고요함이 좋았다.

수영을 하면 체력이 좋아지고 면역력도 좋아지고 하는 등의 다양한 장점이 있다고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수영의 장점은 그랬다. 물속에 있는 시간 만큼은 스트레스로 가득 차 뻣뻣하게 굳었던 뒷목이 부드러워지는 시간 같았다.

그 시간 만큼은 어떤 마사지나 안마의자 보다도 효과가 좋았다.



하지만 수영을 하면 할수록 재미나고 기분도 좋고 체력도 좋아지는 만큼 안 포기 해야 하는 것도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나의 머릿결이다.

수영 들어가기 전 머리 기름기로 수모가 벗겨지는 참사를 막기 위해, 그리고 수질을 위해서 샴푸로 머리를 한번 감고서 수모를 단단히 쓰고서 락스물에 머리를 한시간 푹 담궈 한 시간 열심히 수영하고 나와 락스물을 씻기 위해 다시 샴푸를 하고 에센스를 치덕치덕 골고루 머리카락에 발라, 파우더룸의 치열한 드라이기 전쟁에서 선점한 드라이로 머리를 말리는 과정을 4-5달 하다 보니 머리 끝은 사막에서 싹 트다만 잡초와 같이 푸석푸석해져 가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올리브영에서 헤어 에센스 코너에 가본 적이 없었는데, 수영을 시작한 이후로는 그렇게 오래 서서 무슨 트리트먼트를 사야하나 고민해 본 적이 처음이었다. 테스트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헤어 단백질이라고 쓰여있는 것은 다 만져보고 여기저기 강력한 헤어 트리트먼트를 수소문해 봤다. 트리트먼트의 점도와 향기는 점점 강해지고 머릿결은 점점 뻣뻣해지고 나빠졌다. 마지막 해결법은 결국 머리를 자르는 것일까? 수영을 선택하느냐, 머리를 선택하느냐. 수영을 시작하기전엔 생각지 못한 문제를 수영을 시작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수영을 시작한 사람이 한 가지 더 포기해야 할 것은, 바로 식욕.

식욕을 포기해야 한다. 식욕이 너무 넘쳐나서 문제이다. 그 어떤 현명한 수영 선배님들이 그런 말을 하셨던가.


수영하면 살은 안 빠지는데, 수영 안 하면 살이 쪄.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랐던 이 말, 이 말을 처음 하신 분이야말로 이 세상 이치를 아는 현자이셨던 같다. 수영을 한 시간 하고 나면 배에서 요동을 치는 건 물론이고, 온몸에 허기가 진다. 생각해 보면 어릴 적 여름에 수영장에서 신나게 놀다가 먹은 삼겹살이, 컵라면이 왜 그렇게 맛있었나 이제사 깨달음이 왔다. 하물며 수영이 얼마나 식욕이 도는 운동이냐면 '스윔푸드'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수영하고 먹는 음식 스윔푸드. 나의 어릴 적 풍덩풍덩 물놀이하던 시절의 스윔푸드는 육개장 사발면이었다면, 지금은 짬뽕이 되었다.


  하필 위치도 알맞고 타이밍도 알맞게 수영장 1층에 위치한 중화요리집이 있었다. 이 집은 수영장 할머니들과 언니들에게 늘 언제나 인기 있는 메뉴이다.

"아휴. 오늘은 수영 끝나고 뭐 먹을까나"

수영장에서 머리를 말리면서 늘 고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전 10시 수영반은 씻고 나와 11시 30분. 이 사람 저 사람 모이고 자리 잡고 앉으면 12시 점심시간이 되는 황금시간대. 그게 바로 오전 10시의 수영수업이었던 것이다. 어리석은 나는 황금시간의 의미를 몰랐다. 아이들을 보내고 나서 수영 가기 좋은 시간이 황금시간인 줄 알았지, 수영 끝나고 밥 먹기 좋은 시간이 황금시간인 줄은 수영을 시작하기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한 시간 동안 물속에서 운동을 하고 에너지를 쓰고 왔으니 맛있는 점심을 먹기 위해 얼마나 타당한 일인가! 그렇게 수영을 하는데 심지어 태어나 이렇게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는데 살이 점점 늘어나는 현실을 마주한다. 그렇게 점점 건강한 돼지가 되어가고, 식욕따라 뱃살도 포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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