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치 운동치가 도전하는 수영일기 6탄- 수영장 어머님들의 관찰생활
수영진도가 평영을 지나가고 접영과 오리발을 시작하려는 어느 즈음에 다다를 때가 되면 수영장에 결국 남는 사람들은 오전 시간이 많은 사람들이다. 아이를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에 보내놓고 오전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오전 수영을 하는 사람도 있고,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서 다니는 사람들도 있고, 의외로 오후 저녁에 일을 하느라 바빠서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결국 오전이 한가한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남는 법.
결국 그 사람의 특징들을 추려보면 프리랜서, 아줌마, 할머니 등등으로 추려질 수 있다. 물론 내가 겪은 나만의 너무 편협한 편견일 수도 있다. 오전반에도 젊은 남자 회원이 다니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젊은 남자회원들은 40명이 넘는 정원에 많아봐야 2~3명이 고작이고, 다니다가 꼭 나이가 조금 지긋하신 분들에게 신상털이를 당하기 십상이다. 그렇게 알고 보면 오전에 남성 다니는 남성 회원들은 자영업이나, 프리랜서가 대부분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오전 강습엔 다니는 수영장은 나이 지긋하신 꽃중년의 어머님들이 굉장히 많다. 게다가 내가 다니는 공공 시립 수영장이 아니라 강제퇴소 조치가 없기 때문에 장기로 강습을 다니시는 회원이 꽤 많았다. 한두 달, 아니 반년 다닌 수영 경력으로는 어디 명함도 못 내밀 만한 수영 경력을 가진 쟁쟁한 분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나이 지긋하신 꽃중년 어머님들은 새로운 사람들을 보면 자동으로 텃세 아닌 텃세. 아니 사실 텃세라기보다는 수영장 안에서 보이지 않는,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규칙들을 전파하시는 역할들을 하고 계셔서 텃세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일단, 어머님들에게 가장 먼저 느끼는 텃세는 자리싸움에서 시작된다. 사실 이 영역은 감히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라 불가침의 영역이다. 오래된 어머님들은 사실 그 누구보다도 한결같은 루틴으로 생활하시기 때문에 늘 같은 시각, 같은 순서, 같은 자리, 같은 패턴으로 움직이신다. 그렇기 때문에 늘 같은 샤워자리, 같은 준비 운동자리, 같은 수영 순서 등으로 움직이신다. 그 오래된 시간 동안 지켜온 자리를 고작 6개월 수영을 다닌 애송이가 흐트러뜨리기란 쉽지 않을뿐더러, 굉장히 눈치가 보이는 일이다. 사실 아무 말 안 하실 수도 있고 너그럽게 넘어가시는 어른들이 훨씬 많지만 가끔 한마디 하시는 말씀에 상처받고 텃세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선을 넘지 않는 게 좋겠다.
그다음은 바로 아까 말한 회원 호구조사이다. 꽃중년 어머님들의 새로운 회원에 대한 관심은 여지없이 수많은 질문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그 질문을 이렇게 시작된다.
아이고, 자기는 나이가 어떻게 돼?
아이를 낳고 나서 아이가 태어난 개월수 나이만 계산하며 살았지 이제 내 나이는 계산도 되지 않아서 출생 연도로 이야기하고 살며 나이가 나보다 많구나 적구나 생각만 하고 있을 뿐, 굳이 숫자를 언급할 일도 없는 삶을 살던 내게 나이를 물어보시는 것이다. 한참을 계산하고 난 후에야 내 나이를 말할 수 있었는데 이 조차도 불편한 내색을 비친 사람들이 있는지 요즘은 아주 센스 넘치시게 "자기는 몇 30대야 40대야?" 라며 10년을 아우르는 질문을 하신다. 그러고는 이어지는 말은 100이면 99는 "아이고 좋겠다. 그때는 내가 수영으로 날아다녔는데 말이야!"이다. "그럼 수영하신 지 오래되셨어요?"라고 반문하고서 받은 대답은 상상을 초월한 수영 경력이었다. "내가 이 수영장 생길 때부터 다녔어", "나는 처녀 때부터 수영했지."라고 시작하시면서 최소한 30년, 40년의 수영 경력들을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
그 대답을 듣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어쩐지, 어머님들이 물 안에서 빨리 가시는 건 아닌데, 숨도 안 차시고 쉬지도 않으시고 발이 땅에 닿지도 않으시더라.
사실 꽃중년 어머님들은 내 나이만 궁금하신 건 아니다. 요즘 젊은 엄마들은 무슨 수영복을 입나 무슨 색이 이쁜가부터 시작해서, 스리슬쩍 몸매 구경도 대놓고 하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연륜이 묻어나는 칭찬으로 "아이고, 뭘 해도 이뻐. 이뻐 이뻐."라며 어디에도 들어보지 못한 몸매 칭찬 해주시는 센스도 잊지 않으신다.
하지만 꽃중년 어머님들에게 이렇게 호구조사를 당하고 몸매 칭찬을 받기까지의 공략법은 바로 온탕에 있다. 대부분의 터줏대감 어머님들은 일찍이 센터 입장시간 오픈전에 기다리셨다가 시간이 되어 땡 하면 입장을 바로 시작하시기 때문에 강습이 시작하기 전에 이미 탕에서 한판 수다타임이 벌어진다. 조금만 부지런히 움직여 수영강습 전에 탕에 어머님들 주변에 슬쩍 앉아서 얼굴을 트고 요즘의 제철 채소와 반찬, 농작물 파종 타이밍, 명절 준비에 필요한 대처, 김장시즌에 필요한 젓갈 쇼핑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꽃중년 어머님들과 조금씩 친해질 수 있다. 그렇게 얼굴을 한번 트기 시작하면 또 하나 중요한 포인트가 있는데 수모와 수영복을 벗고 평상복을 입고 있어도 얼굴을 잘 알아보고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했던가! 센터 입구나 엘리베이터 등에서 마주쳐도 얼굴을 알아보고 눈웃음으로 인사하는 것이 더욱더 빠르게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이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인사를 나누다 보면 마주치면 늘 먼저 웃어주시고, 수영하다 말고 중간에 멈춰 서서 숨차하면 "잘하고 있다. 빠르다" 칭찬해 주시고, 샤워장 자리 없어 방황하고 있으면 이리 와서 씻으라 자리 내어주시고, 머리 말리고 있으면 고만 거울 봐도 이쁘다 이야기해 주시는 꽃중년 어머님을 만날 수 있게 된다.
수영장을 다녀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이들에게만 칭찬이 필요한 게 아니었나 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듯이 꽃중년 어머님들의 칭찬이 날 수영하게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