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엉, 시금치만 있으면 김밥
아이가 이유식을 시작할 때쯤 요리를 못하는 나는 참고할 만한 자료가 필요했다. 그때 당시 육아 이야기 블로그를 열심히 쓰고 있었는데 그렇게 블로그를 보다가 알게 된 '한비네'(지금도 요리와 주방도구로 유명하시더라고요. 역시 사람이 한 우물을 파야합니다.)에서 아주아주 때마침 이유식 책, 유아식 책 순서대로 나와주어 다행히도 내가 도전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나씩 이유식도 해주고 유아식도 하고 순서대로 해보니 아이 밑반찬과 간식으로 들고 다닐 약밥까지 하는 도전하는 단계까지 가게 되었다. 사실 이건 도전이라기보다 책에 나와있으니 언젠가 한번 해볼까 싶은 음식이었던 것들을 한 번씩 해보니 아이가 좋아하고 남편이 잘 먹어줘서 맛을 좀 더 발전을 시켜볼까 하는 마음으로 몇 번의 시도를 했었다. 한비네 레시피 중에서 가장 탐나는 레시피는 바로 직접 만든 우엉조림을 잔뜩 넣은 김밥이었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던 것 같다. 내가 김친자(김밥에 미친 자)가 된 것이.
처음엔 우엉조림을 때깔 나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되어 나의 집착은 김밥을 잘 만들기로 향했다.
좀 더 터지지 않고 말고, 좀 더 동그랗고, 좀 더 간이 딱 맞는 완벽한 맛을 내기 위해 미친 듯이 김밥을 말아 댔다.
어느 날은 우엉이 너무 때깔 나게 볶아져서 김밥을 싸고
어느 날은 어머님이 키우신 시금치를 주셔서 김밥을 싸고
어느 날은 시장에서 사 온 섬초가 너무 달아서 김밥을 싸고
어느 날은 지난번에 싸본 김이 마음에 안 들어서 다른 김으로 바꿔서 김밥을 싸보고
어느 날은 어린이들이 라면과 떡볶이와 김밥을 함께 먹는 분식 데이를 하고 싶다고 해서 김밥을 싸다가
어느 날은 단무지까지 만들기 시작했다.
매년 가을 아버지가 주신 한 무더기의 무를 매일 무생채 뭇국으로 돌려먹기엔 한계가 있어 보관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유튜브에서 단무지 만들기 동영상을 보고 만 것이다.
그렇게 뭐만 있으면 김밥을 말아 재끼는 김친자.
다행인 것은 남편은 김밥을 매우 좋아한다. 일단 밥으로 두줄을 먹고 말아두기만 하면 오며 가며 하루종일 세줄 네 줄도 집어먹고, 큰 어린이도 혼자서 두줄 이상은 거뜬히 먹으니, 작은 어린이 한 줄, 내가 한두 줄 먹어도 우리 네 식구만 있어도 8줄은 충분히 소비가 되었다.
거기에 큰 어린이의 또 다른 페이보릿 다음날 남은 김밥에 달걀물 입혀 구워 먹는 별미! 김밥전을 해줄 요량으로 계산하다 보면 우리 가족만 먹어도 10줄이었다.
그러니 점점 김밥을 싸는 손이 커질 수밖에.
사정이 이렇다 보니 김밥이 손이 많이 간다고 기피하는 음식인 것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주변 아이들 친구 엄마들로부터. 나는 그저 김밥 장인이 되고 싶어서 수없이 말아재 낀 것 밖에 없는데.
그렇게 아이들 방학인 요즘은 시장에서 사 온 섬초가 너무 맛나서 김밥을 말았다.
오늘은 우엉이 없어서 아쉽지만.
김밥 만들기
재료
흰밥
시금치
당근
햄(오늘은 스팸, 평소엔 목우촌 김밥햄)
단무지
달걀 5개
어묵(선택, 넣지 않음)
맛살(선택, 넣지 않음)
치즈(선택, 넣지 않음)
소금
참기름
깨
사실 김밥 재료는 무엇이라도 넣을 수 있고, 무엇을 넣어도 다 맛있고, 어느 것이 있어도 모두 김밥이 될 수 있다. 재료를 한정해서 이야기한다는 게 김밥을 너무 슬프게 하는 건 아닐까 싶어 조심스럽다.
1. 일단 김밥의 시작은 밥이다. 압력밥솥에 하얀 쌀밥을 평소보다 물을 조금 적게 넣어 눌러두면 30분가량의 재료 준비시간이 생긴다. 마치 압력밥솥을 타이머처럼 쓰는 나만의 방법!
2. 그다음으로 당근을 채 썰어 소금 1T를 넣어 절여둔다. 빠르게 하기 위해서 채칼로 당근을 썰어둔다.
3. 다음 할 일은 달걀물 풀어 소금으로 간을 하고 달걀부터 굽기 시작한다.
달걀지단 모양은 개인적인 취향으로 얇게 지단으로 만들어 채를 썰어 넣는 사람도 있고 평평하게 일자로 다른 재료와 사이즈를 맞춰 넣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두툼하게 달걀말이처럼 둘둘 말아 잘라 넣는 두꺼운 달걀 속을 선호한다.
4. 달걀을 구운 팬에 햄을 굽는다.
5. 그다음 당근. 이미 소금 간을 해둔 상태이기 때문에 물기가 생긴 당근을 꼭 짜서 기름만 넉넉히 두른 팬에 달달달 노릇하게 볶는다.
6. 김밥을 만들면서 한 팬으로 계속 사용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당근까지 마치고 난 후에 어묵이 있으면 어묵을 볶는다. 어묵은 간장 1T, 물엿 1T를 함께 넣어 볶아줘야 하므로 마지막에(하지만 이날은 생략!)
7. 마지막으로 시금치를 끓는 물에 넣어서 빠르게 데쳐서 물기를 꼭 짜준 다음에 소금 1T, 참기름 1T만으로 살짝 간을 맞춰준다.
8. 마지막으로 단무지는 꺼내 물기를 키친타월로 살짝 닦아주고.
밥이 완성되면 밥에 소금, 참깨, 참기름으로 양념한 뒤 한 김 식혀주면 재료 준비 끝!
이날은 냉장고 속에 조금 남은 멸치볶음도 한 줄 넣어줬다.
9. 김은 거칠한 면이 위로 올라오게 해서 밥을 아주 얇게 최대한 얇게 김의 2/3 지점까지 깔아준다.
10. 밥 위에 일렬로 재료들의 색을 생각해서 알록달록하게 올려준 뒤 마지막에 재료들 위에 가운데에 왔으면 하는 재료를 올려주면 된다.
11. 김 끝과 밥 끝이 있는 지점이 만나는 기분으로 손으로 꽉 쥐어 돌돌 단단하게 말아주면 밥이 이중으로 덮이지도 않고, 재료가 쏠리지도 않고, 잘 터지지 않는 김밥으로 말수 있다.
뿅! 이렇게
하, 이 맛에 김밥을 오늘도 말지
매일매일 김밥을 말수 있지 싶을 정도로 예쁜 김밥을 보고 있으면 그래, 잘 말았다!
그동안 말아왔던 수많은 나의 김밥들
김밥에 미친 자는 단무지와 우엉도 만듭니다. 혹시 궁금하시면 댓글 주세요!
하. 그럼 이제 가장 만만한 김밥까지 나왔는데 메뉴 고갈인데, 내일은 뭐 해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