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아가는 즐거움에 대하여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좋은 점이 생겼다.
그냥 지나쳤던 일상의 소소한 장면들이 모두 글쓰기의 소재로 보이는 마법.
별거 아닌 일들도 좀 더 의미 있게 다가오고
늘 보며 지나치던 장면들도 새로운 앵글로 내 마음속에 각인된다.
요가를 하면서 지난주에 안되던 동작이 오늘 갑자기 되어질때
저녁준비를 하면서 설거지를 하면서 반년 전보다 그 속도가 업되었음을 느낄 때
소음으로만 들리면 라이오 쇼 엠씨들의 이야기를 어렴풋이 알아듣고 있는 나를 볼 때
느낀다.
조금씩 쌓아 올린다.라는 행위의 의미에 대해
티끌을 모아 태산을 쌓는다는 속담에 대하여
글쓰기도 이렇게 반년, 1년 쌓아가다 보면 어떤 식으로든 내 삶을 바꿀 것이라는
작은 믿음이 생겨나는 요즘이다.
미국의 아이들은 체조를 한다.
짐내스틱.이라고 부르는데
처음에 동네 아이들의 죄다 옆돌기, 여기서는 카트휠이라 부르는 그 동작을 하고 있었다.
장관이었다.
대여섯 명의 여자 아이들이 팔과 다리를 곧게 편채 유려한 원을 그리며 잔디밭 위에서 돌고 있다.
서커스나 치어리딩, 매스게임의 한 장면을 보는듯했다.
당연히 우리 아이들도 돌고 싶어 했다.
그리하여 세상 뻣뻣한 우리 아이들도 친구들과 함께 체조학원? 체조도장?에 등록했다.
88 서울 올림픽 때 보던 장면들이 내 눈앞에서 펼쳐졌다.
하얗고 깡마른 아이들이 수영복같은 옷을 입고
봉 위에서 빙글빙글, 마루 위에서 빙글빙글, 평균대위에서도 빙글빙글 돌았다.
빙글빙글.
온몸이 거대한 수레바퀴와 같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을 연상시켰다.
그중 백미는 가느다란 팔로 공중에 매달린 링을 잡은 채로 하체를 서서히 들어 올려 몸을 뒤집고
공중에서 물구나무를 서는 장면.
어메이징. 퐌타스틱. 언빌리버블.
반면 내 아이들은 엉덩이뒤에 보이지 않는 5킬로짜리 추가 달려있는 것만 같았다.
내 보기엔 날씬한 거 같은데
내 두 딸들은 무거웠다. 아니 무거워 보였다.
그들에게만 중력의 힘이 작용하는 것처럼.
난감했다.
쌓아 올리면 태산이 된다고 한말 취소할까.
이건 뭐 피지컬의 문제가 아닐까.
유전학적 문화생태학적 한계나 자연사적 차이로 인한 것이 아닐까.
시몬 바일스가 우리나라에서는 영원히 나올 수 없을지도 모르잖아.
이건 유전계통의 문제일 거야.
하지만 저기 빙글빙글 돌고 있는 아이들은 동양인이네?
심지어 우리말을 쓴다.
그래 몇 달만 다녀보자.
몸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몸은 기억한다.
몸은 뇌보다 더 정확한 인지력을 가진듯하다.
머리로 외운 것은 종종 잊히지만
몸은 기억력이 좋다.
그래서일까 우리 아이들은 공부보다 짐내스틱에 더 열심이었다.
타고나게 유연하고 민첩한 아이들을 따라가진 못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쌓아 올렸다.
아직 다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성근 근육을 부지런히 늘이고 조이며
한 시간 내내 매달리고 구르며 땀을 흘렸다.
지켜보고 있자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프로메테우스를 보는 듯 같은 동작을 무한 반복.
모든 아이들이 열심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엉덩이에 투명 추를 매달고 있지 않은가.
리스펙!
보스턴여행에서
아이들은 처음 물구나무서기에 성공했다.
호텔침대가 높아서였을까.
아이들은 파리올림픽 체조 결승을 보고 있었다.
시몬 바일스가 금메달을 받는 장면.
그리고 직후에 물구나무서기에 성공했다.
나는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시몬 바일스가 슬럼프를 딛고 미국체조 역사를 다시 쓴 그날,
몸이 무거운 우리 아이들도 그들의 체조 역사를 새로 썼다.
미국의 독립을 이끈 보스턴의 좋은 기운을 받아서였을까.
시몬 바일스의 축복인가.
아이들은 더 열심으로 주 1회 도장에 가서 구르고 넘어지고 매달렸다.
느렸지만 성장하고 있었다.
신기한 일이다.
아이들이 매주 1밀리그람씩 근육의 길이와 양을 ㄹ여가는 것을 보는 일은
올림픽 체조결승을 보는 것만큼 흥미진진하다.
아, 저기서 다리를 조금만 더 펼치면 될 거 같은데.
아, 팔을 조금만 더 당기면 될 거 같은데.
눈을 뗄 수 없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기 몸을 믿게 되었다.
하면 된다.
몇 주 만에 한 가지 동작을 해내면 아이들은 또 다른 동작을 시도한다.
어제 둘째가 승급했다.
선생님들이 기뻐하며 박수를 쳐주었다.
그 아이는 아마 한 단계 높은 반에 들어가 멋지게 카트윌을 해낼 자기 자신을 상상할 테지.
내 눈에만 보이는 그 추를 훌훌 떼어내고
멋지게 날아오를 너희들의 모습을 나 역시 상상한다.
몸의 영특함을, 그리고 그 진실함을 믿는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나는 K-엄마니까.
아이들에게 머리도 몸의 일부이기에 머리에도 근육이 있음을 설파한다.
매일매일 조금씩 쌓아 올려
네 수학도 아름답게 동그라미를 그릴 수 있다고.
듣는 둥 마는 둥
그래 뭐 어때.
분명해
뇌도 똑같다니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거야.
듣고 있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