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워 진다는 것

20

by ZAMBY



“뭐? 뭐? 걔를 다시 만난다고?”


은정이 목소리를 높인다.


“너가 희수 씨 싫어하는 거 알아. 근데 나도 걔 싫다.”

흥분할 때 은정은 말이 빨라지고 또 많아지기도 한다.


“정민이가 너 생일날 한 이야기가 이거였네. 정민이한테 얘기했어?”


“한 번만 더 해보려고.”


“너 참. 이 헛똑똑이야. 한 번 아닌 건 아닌 거야.

사람들이 아니라고 할 때는 다 이유가 있는 거라고.

이혼한 게 뭐 어때. 나도 한걸.

근데 그거 말고. 너는 걔랑 안 맞아.”


그녀는 비닐 안에 있는 종이로 된 음료수의 입구를 뜯으며

빠른 속도로 말한다.

“너는 좀 더 관대한 사람이 맞아. 설명해 주는 남자. 하긴. 그런 남자는 나도 잘 맞겠다.”

말을 끝내며 은정은 소리 내 웃는다.


“몰라. 그냥 해볼래.”

입가가 벌게진 채로 우리는 마주 본다.

주스를 한잔 들이켠다.


“그냥 해보고 싶어. 한 번만 더 뜨거워 보고 싶어.”


“야. 연애할 때 안 뜨거운 사람이 어디 있어. 다 뜨거워.

너 전에 그 오빠 만날 때도 뜨거웠어. 너만 모르는 거야.

그거 자꾸 못 맺은 소설 결말 완성하려는 심리 같은 거라고.”


은정은 때로 생각 없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나는 은정이 바에 다닐 때 그냥

‘남자가 필요한 건가’ 했다.

고양이 같은 그 남자가 은정의 아파트에 들락거리는 지금도

‘그래, 남자가 필요한가 보다.’ 한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단호히 말할 때 어쩐지 마음이 불편하다.


그녀는 말로 미련을 남기지만 행위로 마침표를 찍는다.

말로만 마무리를 하는 나는, 상대가 그것을 행위로 받을 때야 비로소 끝을 맺는다.


“뭐... 뜨거운 사랑... 나도 하고 싶긴 해. 뭐. 그것도 쿵작이 맞아야 하는 거니까”

단호한 음성이 자취를 감춘다.

은정은 검지로 스티로폼 도시락 속을 뒤적거리며 김 빠진 듯 중얼거린다.


“모자가 있더라고.”

“모자? 무슨 모자?”

“우리가 헤어지고 내가 줬던 모자.”

은정은 미간을 찌푸린다.


“그거? 야구모자? 양키즈?”

은정과 나는 함께 모자를 사러 갔었다.

그날도 은정은 나에게 이별한 연인의 생일선물을 챙기는 게

얼마나 볼품 없는 일인지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결국 은정은 흰색 뉴욕 이니셜이 새겨진

검은색 모자를 나 대신 골랐었다.


“그게 걔네 집에 있어? 아직도?”

“응.”

“뭐야. 그 사이 집에도 간 거야?”

은정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다.

“걔 정말 이해가 안 돼. 그걸 여태 가지고 있다는 게 정말.

나로선 걔가 이상한 정신의 소유자 같아.”

은정은 고개를 흔들며 다시 족발 하나를 집는다.

“그걸 보고 너희가 다시 뜨거워 질거라 생각한 거야? 겨우 모자 하나에?”

“모르겠어.”


은정은 씹던 족발을 삼키고, 잠시 동작을 멈춘다.

“그런데, 네가 걔랑 다시 시작한다는 게 새롭지만은 않아.

내가 결혼하고 다시 돌아와 보니까 말이야

연애도 해보니까 말이지...

인생에 그런 확실한 감정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닌 건 맞아.

걔가 너 쳐다보던 거 기억나. 그런 눈으로 여자를 보는 남자라니...

나라도 못 헤어날 거야.”

은정은 꿈을 꾸는듯한 표정을 짓는다.


“걔가 마쳐야 끝날 이야기야.

게다가 이제 결혼 같은 끔찍한 걸 한번 해보고 왔잖아?

웬만해선 너 안 놓을 거야. 넌 정말 큰일 난 거야.”

은정은 쓴웃음을 지으며 소스가 묻은 엄지와 검지를 쪽 소리 나게 빤다.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하고 앞에 높인 족발을 집어 입안으로 가져간다.

혀와 목구멍에 통증이 느껴진다.

밀고 들어오는 뜨겁고 강렬한 무엇에 무방비로 상처받는다.


그래도 한 번만 더 뜨거워지고 싶어서 나는 또 한입 족발을 베어 문다.


입가에 붉고 끈적한 소스가 묻는다.

아프다.



이전 20화고양이 같은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