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엄마 김밥

by 마마뮤

어린 시절 소풍 가기 전날의 설렘이란 가히 그 어떤 부푼 감정에도 빗대어 설명할 길이 없었지 않나 싶다. 온통 들뜬 마음에 각종 음료며 간식을 잔뜩 배낭에 챙겨 놓고, 늦은 밤까지 아마도 김밥 재료를 미리 준비하고 계셨던 것으로 추정되는 분주한 엄마의 모습에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던 그 어느 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렇게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해 겨우 잠이 들면 어느샌가 이른 아침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정신이 돌아오고 한치의 뭉기적거림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곤 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문을 열고 비가 내리는지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화창하게 게인 하늘을 마주하면 그야말로 마음은 이미 소풍 장소로 날아가버리곤 했다.




코로나 시국에 아이가 학교에 입학을 한 터라 봄소풍이 원래 있었는데 안 간 건지, 아님 요즘은 조금 다르게 운영이 되고 있는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런데, 바로 오늘 아이가 입학한 후 처음으로 '체험 학습'을 떠났다. 아이 학교의 급식 퀄리티가 상당히 좋아서 꼬마는 학교 가는 즐거움 중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가 바로 급식 때문인데, 그 급식 덕분에 도시락 한번 쌀 일이 없던 초딩 엄마에게 도. 시. 락. 을 준비해야 하는 찬스가 찾아온 것이다.


한때 엄마들 사이에 유행했다는 도시락 '예술 행위'때문에, 사실 이렇게 도시락을 싸줘야 하는 경우 상당히 고심에 빠지거나 실제 무모한 예술에 도전하는 엄마들도 상당수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솔직히 생각을 해보자면, 메추리알에 검은깨 두 알을 눈으로 박고 콩알만 한 당근으로 부리를 박아놓으면 그게 도대체 무슨 맛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맛없는 걸 먹으라고 괜한 예술 행위를 하는 게 무슨 의미일까 싶다. 음식은 비주얼보다 맛이라는 나의 인생 지론은 변치 않는다.


뭐니 뭐니 해도 도시락엔 김밥 아니던가. 돌이켜보면 나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집에서 김밥을 직접 싸 보기 시작했는데, 김밥 체인점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나 김밥을 사 먹을 수 있는 요즘과는 달리 예전에는 김밥이 당기면 하루 날을 잡아 집에서 판을 벌려야 했다. 더구나 해외에서 오래 생활했던 내게는 김밥이 그리운 날엔 반드시 내 손으로 수고로움을 마지않아야만 했다. 그렇게 쌓인 실력이다 보니 내가 만든 김밥은 누구에게나 반응이 괜찮다. 사실 그 안에 무엇을 넣고 만든다한들 중간은 가는 음식이 아니던가.


아침에 일어나 말기만 하자며 늦은 시간까지 재료를 준비했다. 도대체 어느 정도로 국민 음식이 된 건지, 언젠가 '김밥 재료 보관 용기'라는 걸 발견하고 어찌나 반가운지 냉큼 구매를 했더랬다. 여태 사용해볼 기회가 없어 어딘가 구석에서 썩지나 않을까 했는데 드디어 사용해볼 날이 온 것이다. 한꺼번에 보관이 가능하니 이거 정말 유용하고 좋다.


부엌에서 재료 준비에 뚝딱거리니 아이가 안 자고 자꾸만 얼쩡거렸다. 그래 얼마나 마음이 들떴을까.. 이해는 가지만 자야 할 시간을 안 지키는 게 영 마음에 걸리는 어쩔 수 없는 엄마이다. 눈치를 살살 보며 아이가 묻는다.

"엄마, 내가 간을 한번 봐볼까? 계란 하나만 먹으면 안 돼요?"

잘 시간에 음식을 먹는 건 바람직하지 않음을 잘 알지만, 알록달록 김밥 재료에 얼마나 설레고 또 먹고 싶을지 아이 마음을 너무 알겠기에 하나만 먹으라고 허락했다. 계란 한 줄 베어 물고 세상을 다 얻은 듯 웃는 아이 얼굴에 내 어릴 적 설렘의 기억이 스치고 지나간다.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김밥 좀 먹어봤다 하면 다 아는 사실이 있으니, 김밥의 진미는 바로 꼬다리가 아닌가? 아이는 직 입이 작아 푸짐한 재료의 집약체인 김밥 꼬다리는 먹지 않는다. 아직까진 '진짜 맛'을 모르는구나 싶지만, 마치 닭다리가 2개라 세 식구가 아쉬운 것처럼 머잖아 김밥 꼬다리 쟁탈전이 벌어지는 날도 오겠지..

더 나아가 김밥 한 줄을 자르지 않고 달라는 날도 오지 않을까.. 그때가 되면 우리 애가 이제 정말 다~ 컸구나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까..




가방을 한 짐 챙겨 든 아이를 학교 앞에 데려다주는데 평상시보다 10분 일찍 등교하라는 지침 사항에 늦으면 안 된다며 배낭을 짊어지고 냉큼 뛰어가는 뒷모습이 한없이 귀엽고 웃음이 났다. 친구들과 재잘대며 재미난 하루 보내고 있겠지.. 엄마가 싸준 도시락 펼쳐놓고 친구들과 맛있게 나눠 먹으며 즐거운 시간 보내고 있겠지..


항상 내 품 안에만 안겨 있을 것 같던 아이가 한 발짝씩 세상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그저 기특하고 마음이 짠하다. 뭔가 자식을 향해 짠한 마음이 드는 건 부모이기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감정인가 보다. 좀 이따 마중 나가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를 한껏 안아줘야겠다. 그리고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조잘대는 이야기를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하게 될 테지.. 엄마가 마음을 꼭꼭 눌러 담아 싼 김밥의 맛이 어땠는지도 물어봐야겠다.




keyword
이전 07화인생은 셀프! 그러니 책가방도 셀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