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도 게임도 아빠한테 배워라

by 마마뮤

우리 아버지는 술을 잘하지 못하신다. 그저 맥주 반 잔에도 얼굴이 새 빨개져 절대 술을 많이 드실 수가 없는 체질인 탓이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간혹 술김에 아버지가 지갑에서 배춧잎(만 원짜리)을 뽑아 인심 좋게 내어 주셨다는 에피소드 따위는 다른 아이들의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어쨌든 집안에 술고래 DNA는 없었지만 자라는 내내 이 말만큼은 분명하게 주입을 당했더랬다. 술은 어른한테 배우는 거라고 말이다. 가끔씩 기분 좋은 맥주 한잔을 즐기고 싶으셨던 우리 엄마는 내가 성인이 된 후 나를 앉혀두고 결코 남편과는 할 수 없었던 아쉬운 한 풀이를 하셨다. 나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엄마와 술친구가 되었고, 그저 맥주 딱 한잔을 놓고 이런저런 수다를 풀어내는 게 일인지라 술은 이렇게 마시는 거라며 내게 일장연설을 늘어놓으신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아마도 그렇게 가볍게 주고받는 가운데 자연스레 술이란 걸 배운 모양이다.


남편은 술을 참 좋아한다. 나이가 들며 몸이 받쳐주질 못하고 건강을 생각해야 하니 원하는 만큼 들이붓지를 못하게 됐을 뿐, 아마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술독에서 헤엄 치는걸 낙으로 삼았을는지도 모르겠다. 결혼 후 거의 매주 주말엔 둘이 마주 보고 맥주를 마시며 회사에서 쌓였던 스트레스를 날렸었는데, 그 덕분에 짊어진 뱃살로 더 스트레스를 얻은 건 덤이다.


여하 간에 이젠 건강을 생각해야 하기에 자주는 못 마시지만, 한두 달에 한번 정도는 우리 가족의 '행복한 시간'이라며 술자리가 벌어진다. 엄마 아빠 옆에 앉아 치킨 뜯는 재미가 그리도 좋은 우리 꼬마는 가끔씩 먼저 행복한 시간을 갖자는 제안을 하곤 한다.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인 딸아이를 앉혀두고 남편은 제법 진지하게 훈계를 늘어놓는다.


"너~ 술은 아빠한테 배우는 거야! 나중에 성인 됐다고 어디 나가서 아무 하고나 술 마시고 막 누가 주는 대로 받아 마셔서 취하고 그럼 큰~~~ 일 나는 거다! 어? 술은 막 취할 정도로 들이붓고 급하게 마시고 그러는 거 아냐.. 천천히 딱 한잔만! 알겠어?"


뭘 알아듣는다고 알겠다며 열심히 치킨을 뜯는다. 모르긴 몰라도 '어른한테 배우는 술' 초급반 내용인 모양이다. 적어도 이 초급반 강사님은 술에 있어서 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충분하고 다양한 경험을 보유하신 분이기에 일단은 신뢰(??)가 간다.




게임 프로그래머와 살면서 아이에게 게임은 유해하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건 어쨌든 기본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게다가 디지털 네이티브인 지금 세대의 아이들에겐 게임이 그들만의 놀이 문화이기 때문에, 우리 아이만 못하게 할 수도 없다.


우리 꼬마는 제 아빠 덕분에 사실 일찍부터 게임을 접한 편인데, 대신 아이가 중독의 경지에 가지 않도록 철저한 경! 계! 를 펼쳤다. 기본적으로 게임은 무조건 한 시간만 허용한다. 시작과 함께 타이머를 맞춰 두는데, 그게 오랜 시간 훈련이 되어서 아이는 군소리 없이 알람이 울리면 게임을 정리한다.


요즘 어린이들이라면 실상 거의 모두가 한다는 '로블록스' 게임에 한 동안 빠져 들었었는데, 이렇게 인터넷으로 다른 유저들과 접속하는 게임은 아무래도 우려되는 부분들이 꽤 보였다. 아이가 글자를 못 읽던 시절에는 그냥 플레이만 하니 큰 이슈는 없었는데, 문제는 아이가 글자를 읽게 되고 점차 메신저 사용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생각보다 아이들이 쓰는 건가 눈을 의심할 정도의 거친 말들도 꽤 보였고, 그 안에서 만들어진 모임 방 타이틀 중 어이없을 정도의 19금 내용까지 떠 있는 것이다.


그걸 발견한 날 남편이 바로 로블록스 게임을 금지 조치했다. 갑자기 그 재미있는 곳에 접속을 못한다니 아이가 난리가 났다. 그런 아이를 앉혀두고 남편이 차근히 그 재미있는 걸 왜 하면 안 되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네가 그냥 게임 플레이만 할 때는 그렇게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오늘 다시 살펴보니까, 네 나이에 봐서는 안될 내용들이 눈에 띄었거든.. 그런 걸 보면 왜 문제가 되냐면, 아직 너는 어리기 때문에 그런 나쁜 말들을 보면 네 마음이 다쳐.. 아빠는 네가 나쁜 걸 보고 마음이 상하지 않게 막아야 해.. 그러니까 속상해도 이건 안 되는 거야.. 네가 조금 더 자라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별할 줄 알게 되면, 그때 다시 해도 될지 한번 생각해볼게.."


사실 나는 게임 세계를 잘 모른다. 그래서 나 같은 엄마가 아무것도 모르고 내버려 두면 저렇게 유해한 환경에 아이를 무방비 상태로 방치하는 격이 될 게다. 그러나 게임의 달인 아빠가 있다 보니 알아서 모니터링을 하고 적절히 조치를 취하고 있어 사실 나는 그 부분에 있어서는 손을 놓고 있긴 하다.


사실 대다수의 엄마들이 그런 거 같긴 한데, 나는 감정적으로 먼저 말이 나가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런데 남편은 아이에게 객관적으로 차분히 얘기를 잘하는 편이다. 그런 차분함을 유지할 수 있는 남편을 보면 신기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그러니 아빠 육아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걸 많이 느끼곤 한다.




조금 더 자라서 분별력이 생기면 허용해주겠다는 여지를 남겨둔 탓에, 아이는 가끔 본인이 좀 더 큰 형님이 되면 그 게임을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그게 그럴 만큼 재미가 있긴 한가 보다. 하긴 한창 하이텔, 나우누리 등의 인터넷 채팅이 보편화됐을 무렵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 나누는 게 너무 재미있어 밤을 꼴딱 지새우던 나를 돌이켜본다면 아이의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아직은 다소 위험 요소가 많은 인터넷 게임은 못하게 했지만, 대신 콘솔 게임만큼은 허용해줬다. 가끔은 세 식구가 다 같이 닌텐도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우리 아이가 유튜브에 중독될까 봐, 게임에 중독될까 봐, 핸드폰에 중독될까 봐, 그 어떤 것도 두려워 언제 허용해줘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민하는 부모님들 정말 많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고 있지 않은가. 부모들이 생각을 유연하게 하며 변화에 발맞춰 나가는 수밖에..


우리 아이는 유튜브도 보고 게임도 하고 핸드폰도 있다. 단지 철저히 시간을 지키며 정해진 규칙 안에서 허용되는 자유를 누리게 해 주니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다. 이게 정답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아직까지는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육아도 결국은 모든 것이 trial & error 아니겠나. 시도해보고 아니다 싶을 때 빨리 개선책을 찾는 것이 정신없이 변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부모들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어느 시대에나 자식 키우기는 어려웠겠지만, 이제는 정말 대에 발맞춰 사람 하나 잘 키워내기 참 어려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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