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 적 국민학교 시절에는 '개근상'은 정말 훈장과도 같았다. 국민학교 6년의 시절을 통틀어 단 한 번도 학교에 빠지지 않았다는 건 요즘 대세로 부각된 '끈기'라는 키워드 측면에서 그야말로 아니 대단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내 기억에 나는 6년의 세월 중 안타깝게도 단 하루를 결석하여 개근상의 영광을 놓쳤는데, 모르긴 몰라도 그 빠졌던 날엔 아프긴 상당히 많이 아팠던 모양이다. 학교에 안 갈 정도였다니...
사진 출처: 구글
우리 세대는 정말 그러고 살았다. 어쨌든 몸이 아파도 죽을 정도가 아니면 학교에는 당연히 가는 거였고, 하늘이 무너져도 학교가 건재하면 학생은 무조건 학교에 가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 읽고 있는 트렌드 코리아 책에서 흥미롭고 다소 충격적인 내용을 발견했다.
개근 거지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에 뭔 거지 시리즈가 그리도 많다는 얘긴 종종 접해 왔지만, 세상에 개근 거지라니. 성실의 표상이었던 '개근'이 이제는 심해진 부의 격차로 여행을 가지 못해 학교에 매일 출석하는 아이들을 일컫는 '개근 거지'라는 웃지 못할 용어로 둔갑해버렸단 것이다. 학교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가는 게 부끄러울 일이 돼버렸다고?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는 도대체 무슨 세상인 건가 싶다.
이 말이 왜 등장했는지의 배경을 살펴보면 이러하다. 요즘 아이들은 '체험 학습'이라는 명목으로 학기 중 각 시도별로 평균 40일 정도 결석이 허용되는데, 이것의 목적이란 학교 교육 활동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아이들이 현장에 나가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체험학습이란 것이 정말 이토록 훌륭한 취지대로 운영되고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은 체험 학습 신청하고 놀러 갔다 오는 것이 통상적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놀러 간다'라는 말 안에는 실제 노는 것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경험하고 배운다는 전제가 당연히 깔려 있을 것이다.
그저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만 잔뜩 탔을지언정 질서를 지켜 줄을 잘 서는 가운데 남을 배려하는 행동과 공공장소에서의 예절을 체험을 통해 배웠다고 주장한다면 그것 또한 어쨌든 학습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주변을 살펴봐도 대부분 사람들의 개념 속 체험 학습이란 그저 학기 중에 학교를 당연하게 빠져도 될 권리처럼 여기는 듯 보이는 건 왜일까.
그야말로 라떼는(나 때는) 방학을 해야 그나마 어린이 대공원에라도 한번 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아이를 '성실하게' 학교에 보내면 아닐 말로 자녀에게 경험의 기회를 만들어주지 않는 무심한 부모가 돼버린다니 도대체 이게 머선 일인가 말이다!
아이의 동급반 친구 중에도 유독 자주 결석하는 아이가 있다. 듣자 하니 가족이 해외로 여행을 몇 차례나 다녀왔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기 전 나는 너무도 순진하게 아이가 자주 학교에 빠진 다기에 어디가 아픈가 했더랬다. 여태 그런 순진한 생각을 한 나 자신이 한심할 지경이다.
남들 이목 때문에 무리하게 여행을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족 여행을 부득이 방학으로 미뤄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 사실 일부러라도 학기 중에 '체험 학습' 명목으로 여행을 다녀오는 게 차라리 나은 모양새가 되게 생겼으니 말이다.
사실 사회에 어떤 제도인들 좋은 취지로 만들어졌다 해도 반드시 악용하는 사례는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개근 거지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며 아이들 간에 격차를 분명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이 체험학습이라는 시스템은 존재하는 게 약인 걸까 아님 독인 걸까.
도대체 이 어이없는 'OO거지' 시리즈는 어디서부터 왜 시작된 것이며, 아이들의 입에서 그런 말들이 서슴없이 나오도록 방치하는 부모들은 또 뭐하는 사람들인 걸까?
결국은 모두 어른들의 잘못이다. 순수하게 세상에 나아가 체험을 통해 배우게 해 주라는데 그것이 마치 무슨 특권인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인식을 시켰다는 의미일 뿐이니 말이다.
남들 탓하기 전에 나는 우리 아이에게 어떤 가치관을 심어줘야 할지 좀 더 분명해진다.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아이가 진심으로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좋은 인성을 갖추길 바란다. 덜 가진 것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더 가진 것에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면 좋겠다.
사회는 갈수록 편 가르기에 급급하고 있으니 우리 아이들에게 인성 교육이 그 무엇보다 시급한 이유다. 부모들도, 교육하시는 분들도 모두 정신 똑띠 차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