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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안 XianAn 스님 Feb 05. 2024

좋은 통증과 나쁜 통증

통증의 종류가 무엇이든 통증은 우리의 몸을 통해서 옵니다. 통증의 경험은 사실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과정입니다. 우리에게 몸이 있는 한 통증을 경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누구든 몸을 갖고 살고 있다면 당연히 통증을 겪어야만 합니다. 달리 말하면 통증 없이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통증이 지속된다면 그건 좋지 않습니다. 계속 이어지는 통증을 겪고 있다면 그건 여러분이 곤경에 처했다는 뜻입니다.


예로 우리는 통증을 보통 육체적인 일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육체적 통증에는 늘 정신적 통증이 따릅니다. 몸의 통증은 사실 정신적 통증보다 큰 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 손주를 말입니다. 그런 정신적인 괴로움을 다루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육체적인 아픔은 의사나 전문가를 찾아서 처방 받거나 치료를 받아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큰 상실이나 육체적 통증으로부터 우울증 등과 같은 정신적 괴로움으로 이어집니다.


다른 류의 고통이 이습니다. 그건 명상하는 중 겪는 통증입니다. 그건 아주 좋은 통증입니다. 예를 들어 가부좌로 앉아서 명상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발목도 아프고, 골반이 쑤십니다. 허리도 아픕니다. 그건 좋은 통증입니다. 그건 여러분이 자신과 싸워야 하는 시험과 같은 것입니다. 중간에 그만두면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프다고 다리를 풀어버리면, 엉덩이를 들거나 명상을 멈추면 절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절대 정복하지 못합니다. 대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서 견뎌내면 정복해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실 번째 언급한 통증입니다. 명상하는 겪는 통증을 제외한 지속적인 통증이 있다면, 그리고 이유를 없는 통증이라면 그걸 무시하면 안됩니다. 여러분은 그럼 곤경에 처한 것입니다. 그런 경우라면 그에 대응할만한 무언갈 해야합니다. 지속적인 통증이 있다면 도움을 받으십시오. 문제를 고치기 위한 방법을 계속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아픈 다리를 기꺼이 견디고자 한다면 다음과 같은 일이 생깁니다.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결가부좌나 반가부좌로 앉아서 아픈걸 참으라고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보통 먼저 이런 질문들을 합니다.


오른쪽 무릎이 뜨는데 자세가 잘못된건가요?

자세가 바르지 않아서 더 아픈걸까요?

스트레칭을 제대로 더 하고 앉아야 하나요?


번뇌가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앉아서 자세가 바르지 못하다고 생각하면서 창피해하거나 걱정합니다. 그런 게 다 정신적 고통입니다. 좌선을 하려고 앉아서 '지금 내가 뭐하는 짓일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게 정신적 괴로움입니다. 그리고 그런 게 모두 여러분이 직면해야 할 시험입니다. 여러분은 가부좌로 앉아서 명상한 후 일어납니다. 그러곤 우스꽝스럽게 걸어다닙니다. 발이 저려서 절뚝거리면서 걷습니다. 그런 창피함도 기꺼이 감수하고, 불편한 마음을 참아낼 용기가 있다면, 아픈 다리를 참느라 신음 소리도 참지 못하고 법당에서 소리를 내야 한다면, 애지중지 차리고자 했던 체면도 버려야 한다면, 그럼에도 기꺼이 이걸 계속 해나갈 의지만 있다면, 여러분은 시험에 통과할 기회가 있는 겁니다. 게다가 자가 치유도 일어날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명상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있습니다. 앉아서 평화롭고 환희로운 기분을 만끽하려고 합니다. 앉은 자세가 불편하면 명상 자세가 잘못된 건 아닌지 의구심을 갖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명상하려고 앉아서 통증을 경험했다면 그건 매우 좋은 일입니다. 자가 치유 중이기 때문입니다. 명상을 해보지 않았거나, 이제 막 배운 초심자들은 우리에게 나쁜 통증만 압니다. 그래서 명상을 시작하면서 겪는 불편하고 아픈 경험을 받아드리기 어렵고 이해할 수 없습니다. 견딜 수 없는 통증을 겪으면 우리의 마음은 자연스레 두렵고 의구심을 일으킵니다.


내가 지금하고 있는 맞는걸까?

이렇게 하다가 다치면 어쩌지?


그럴 때 여러분에게 경험이 풍부한 도반이나 스승이 있으면 어떨까요? 그래서 수행자는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눈치를 보거나 예의를 차릴 여유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명상이 늘 평화롭기만 하고, 좋은 기분만 있다면, 그런 명상에서 큰 도약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고통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안 좋은 고통이고, 다른 하나는 매우 좋은 것이빈다. 결가부좌로 앉아서 시간을 조금씩 늘려보십시오. 그리고 그 아픔을 어제보다 오늘 조금만 더 견뎌보십시오. 명상과 수행에서 겪는 괴로움과 아픔은 여러분에게 좋은 것입니다.


*참고 법문: 영화 스님의 ‘천상에 대한 불교의 견해’(2015년 10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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