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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안 XianAn 스님 Feb 26. 2024

하산(下山)

예전에 영화스님은 제자들에게 "여산사(영화 스님의 첫 미국 도량, 예전에 노산사로 표기했었음)는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곳"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국에서는 그걸 인재불사라고 부르더군요. 아무튼 제자들이 힘을 키워서 준비가 되면 그때 내보낼 것이라 하셨습니다. 사실 여산사에서는 위산사보다 훨씬 더 괴로움이 많았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이 부딪히며 헤쳐 나가야 했습니다. 그렇게 좁은 공간이 사람으로 채워지다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위산사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더는 여산사에서 숨어서 훈련만 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고, 더 넓은 위산사에서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대승 수행의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예전에 중국에서 그걸 "하산"이라 불렀습니다. 우리 한국에서도 "그래 넌 이제 하산하거라"라는 대목이 익숙할 겁니다. 준비된 제자를 산 아래 내려보내는 것입니다. 그건 무술하는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닌겁니다. 그건 달리 말해서 우선 여러분이 혼자서도 충분하게 강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때 여러분이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소승과 대승을 구별 짓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수행해서 자족(自足, 스스로 충족할 수 있는)할 수 있는 어떤 단계에 이릅니다. 그리고 소승에서는 그것이 마지막 목표점이기도 합니다. 완전히 혼자서 괜찮고, 아무도 필요 없는 그런 상태입니다. 그것은 지혜의 어떤 특정 단계이기도 합니다. 어떤 것도 관여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와 달리 대승은 한 걸음 더 나갑니다. 어떻게 진군할까요? 우리는 지역사회 또는 속한 그룹에 기여하기 위해서 사회 속에 참여하면서 진군합니다. 그것이 바로 비불교식 방식과 불교식 방식의 차이점입니다. 불교 방식에서는 우선 힘을 키워 자족할 수 있게 합니다. 자족할 수 있어야만 그때 다른 사람도 돕습니다. 사람을 도우려면 마음이 명료해야 합니다. 그때 더 많은 사람을 짊어질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어떨 때에는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 그들을 짊어져야 합니다. 그들을 짊어지고 얻어맞기를 감수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걸 "자족(Self sufficiency)”이라 부릅니다. 


외도수행자는 타인을 돕길 너무 열망합니다. 하지만 남을 돕기에는 아직 너무 이릅니다. 자족할 수 없다면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여러분이 우선 단단하고 견고한 기반을 세우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기반을 세우고, 자족할 수 있는 기반을 쌓습니다. 그래야만 다른 이를 정말로 도울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이는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그들도 마찬가지로 자족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에게 자족함에 대해서 가르치고 싶다면, 그런 방법을 배우고 싶다면, 우선 스스로 자족하도록 배워야만 합니다. 자족할 수 있어야만, 다른 이를 도울 때 그것이 그들을 위한 일이 됩니다. 


여러분이 진정한 도움을 주려면 상대방이 필요하지 않아야 합니다. 여러분 스스로 충족할 수 없다면, 즉 자족할 수 없으면서 남을 도우려 하면, 그건 자기만 이롭게 할 뿐입니다. 그게 바로 부처님의 지혜입니다. 타인을 돕기 위한 기술을 습득하기 전 우선 자족하는 법부터 배워야 합니다. 그게 대승이 다른 점입니다. 자족할 수 없다면 여전히 자기 자신을 챙기는데 바쁠겁니다. 자신을 위한 욕심이 일어날 것입니다. 자신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명목을 우선으로 일을 할 것입니다. 그러면 진실로 순수하게 남을 도울 수 없는 겁니다. 자족하지 못하면서 타인을 도우려고 하면, 자신부터 챙기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유한 사람이 자선 사업을 좋아합니다. 그건 아주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대승의 관점에서는 그것도 사실 자신을 이롭게 하기 위한 행위입니다. 


그래서 단계적인 진전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더이상 자신을 위한 욕심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될때까지 갈고 닦는 겁니다. 그러면 이미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춰서 욕심낼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것부터 갖춰야 합니다. 그러면 자신을 챙기는 데 급급하지 않습니다. 그때 타인을 돕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다른 이에게 자족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길입니다. 


우선 자족해야 합니다. 그러면 저절로 이해하게 됩니다. 그게 어떤 것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진정으로 자족하기 전까지 이런 이야기들은 지적인개념일 뿐입니다. 자족하게 된다는 것은 마음의 상태입니다. 그건 말로 설명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스스로 아주 충만하고 완전하다고 느껴지는 일입니다.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전혀 욕심이 없는 것입니다. 이미 모든 걸 가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늘 행복을 찾습니다. 자족하는 사람은 이미 너무 행복합니다. 그래서 다른 이들도 그렇게 되도록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자족할 수 있는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의 문제를 푸는 방법을 배웁니다. 자신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문제가 있는 한 자족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 명상은 결가부좌로 앉아만 있어서 되지 않습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신체적, 정신적인 질병을 포함한 다양한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기술을 배워야만 합니다. 그런 모든 게 선 수행을 위한 도구입니다. 대승에서는 준비가 되기 전에는 이런 도구를 타인을 돕기 위해서 쓰지 말라고 합니다. 타인을 도울 수 있는 준비가 된 사람만 쓰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하산이라고도 부릅니다. 

 

*참고법문: 영화 선사의 'Self Sufficiency(자족)'(2017년 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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