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닦는 일은 곧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는 일입니다. 바른 견해 없이 수행하면, 아무리 열심히 좌선을 해도 마음은 늘 시끄럽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팔정도의 첫 번째로 정견(正見), 곧 바른 견해를 말씀하셨습니다.
정견은 단지 지식이 아닙니다. 삶을 마주하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괴로우면 "왜?"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미친 듯이 이유를 찾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남을 탓하고, 상황을 탓하고, 심지어 팔자까지 탓합니다.
이처럼 번뇌가 일어나면, 우리는 자동으로 밖을 향해 시선을 돌립니다. 하지만 수행자라면, 번뇌가 일어나는 그 순간에 즉시 내면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물론, 이는 한 번에 되는 일이 아닙니다. 번뇌가 일어날 때마다 남을 탓하고 싶은 욕구를 이겨내고,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는 연습을 거듭해야 합니다. 실패와 도전이 반복되는 과정입니다.
정견은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번뇌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마다 밖을 향하는 마음을 거두고, 내 마음속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성찰해야 합니다.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깊이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스승이 아무리 좋은 가르침을 주어도, 내가 내 생각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정견이 없으면 수행은 쉽게 흔들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좌선을 하다 보면 생각이 끊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은, 내가 왜 그 생각에 집착하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바라볼 수 있다면, 분노도 슬픔도 모두 훌륭한 스승이 됩니다.
그래서 이 길은 단순하고 쉬운 듯하지만, 매우 험난합니다. 이미 번뇌로 괴로운데, 그 번뇌를 더 철저히 들여다보고 직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통과하고 나면, 그 괴로움을 통해 우리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 광륜사에 계신 명원 스님을 만났습니다. 저에게는 특별한 인연이 있는 분입니다. 제가 선 명상을 처음 접하고 한국에 왔을 때, 성륜사에서 처음 명원 스님을 뵈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스님은 제가 가진 오류나 허물에 대해 한 번도 지적하거나 부정적인 내색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늘 한결같이 “수행한다니 환영합니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라면 다 도와줄게요!”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가 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스님의 은사스님의 법문을 따르겠다고 한 적도 없는데도, 늘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응원해 주셨습니다.
우리 명상반 학생들과 함께 찾아뵈었을 때도, 수행할 수 있도록 공간을 내어주시고 간식까지 챙겨주시며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셨습니다.
오늘도 명원 스님께서는 “정견을 가진 사람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나 짧은 시간 동안은 강렬하게 정진할 수 있지만, 단단하고 바른 견해가 없으면 쉽게 무너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오랜 세월 포기하지 않고 수행을 이어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누가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고,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집착할 것도, 미워할 것도 없다는 걸 몸으로 익혀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견을 키울 수 있을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른 법을 듣는 것입니다. 우리보다 훨씬 더 지혜롭고 눈 밝은 스승님을 찾아,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도 서서히 열리고, 더 반듯하고 단단한 견해가 자리 잡게 됩니다.
그리고 반드시 앉아야 합니다. 좌선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훈련입니다. 그 고요한 자리에 앉아 있으면,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착각 속에 살았는지를 점점 더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러면 마음이 조금씩 밝아지고 단단해집니다.
정견은 책에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삶이 괴로울수록, 더 바르게 보려 애써야 합니다. 바르게 보기 위해 우리는 다시 앉고, 바른 법을 듣습니다. 그것이 선 수행자의 길입니다.
2022년 광륜사에서 했던 철야정진(좌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