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나가서 사는 자질(?)을 테스트하는 시험이 있다면 나는 그야말로 고득점을 받을 자신이 있었다. 승무원 생활을 하면서 해외를 다니며 여러 나라에서 지내봤고 호기심이 많아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했다. 영어 또한 일상생활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리고 가장 큰 건 외국에서 살고 싶은 나의 간절한 바람과 열정이었다.이만하면 나 스스로도 충분히 이민 와서 사는데 적합하다고 생각했고, 거기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니 못할 거는 더더욱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민생활 1년도 채 되지 않아 뉴질랜드의 민낯의 의료서비스를 겪은 나는 그 초심이 뿌리째 흔들려버렸다.
' 과연 이 나라에서 살 수 있을까?'
아이를 보내고 온 그다음 날부터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이거 하나였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의료문제이니 더 어려웠다. 정말 갑자기 위급한 상황이 생길 수도 갑자기 아프게 될 수도 있지 않나?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직, 간접적으로 생명과 연관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리고 만약 아이까지 생기게 된다면 아이도 이런 의료환경에서 진료받아야 한다는 것도 걱정이었다.
이 생각을 갖게 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신랑 역시 내가 아이를 유산하고 앰뷸런스로 다른 병원으로 옮겨질 때 차로 뒤 따라오며 똑같은 생각을 했다고 했다. 대학교 때 유학 와 17년을 이곳에서 지내면서 한 번도 한국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는 신랑이었다. 그런 신랑에게도 이번 일은 적잖은 충격이었나 보다.
그리고 이 문제는 비단 우리 커플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한국 이민자분들 중 실제로 이 의료문제 때문에 이민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신 분들도 계시다고 한다. 또 많은 분들이 뉴질랜드에서 지내면서 의료적인 검진이나 치료를 위해 주기적으로 한국을 방문한다고 한다. 물론 외국에서 지내면서도 가족들이 있는 한국을 방문할 수 있지만 이렇게 현재 지내는 곳이 무언가가 결핍, 부족하여 그걸 채우기 위해 필요시마다 고국을 방문해야 한다는 건 다른 문제다. 진료비 외에 한국으로 가는 왕복 비행기표, 그리고 진료받는 동안 한국에서 지낼 생활비 등이 추가적으로 들거니와 생활적으로도 한국을 가기 위해 적어도 1주일 이상은 직장인이라면 휴가도 내야 하고 학생이라면 학교도 쉬어야 한다. 이렇듯 단순히 한국에 가족들을 보러 가는 여행이 아닌 의료목적으로 필요시마다 나와야 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오랜 기간 동안 적응한 이민생활을 이것 때문에 포기한다는 것 또한 쉬운 건 아니다. 어느 쪽으로든 결정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 사이 한국에서 부모님이 오셨다. 원래는 내가 입덧이 심해 아무것도 먹지 못하자 걱정이 돼서 챙겨주러 오시기로 한 건데 아기가 유산되고 나니 내 몸을 케어해 주러 오시게 된 것이다.
몸도 추스르고 바람도 쐴 겸 우리는 오클랜드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큰 호숫가가 보이는 곳에 숙소를 잡았다. 숙소 앞에 앉아 호수를 보고 해지는 석양을 바라보고 있으니 저절로 몸과 마음이 힐링이 되는 듯했다.
로토루아에 있는 호수 근처 숙소에서
흩뿌려진듯한 그림같은 구름과 호수 풍경
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닌 날 것 그대로의 자연 속에서 나는 치유의 힘을 받는 듯했다. '이곳에 와서 내가 이런 힘듦을 겪나'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이젠 이곳의 대자연에게서 힐링의 에너지를 받아 점차 평온을 느끼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신기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