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선 아기가 유산이 되면 부모에게 아이를 직접 데리고 갈 건지 아니면 병원에서 처리(?) 해 주길 원하는지에 대한 선택권을 준다. 이런 선택권은 겪어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한 것이어서 우리는 당황했고 우리가 데려가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보통 사람들은 인적이 드문 공원이나 바닷가에 아이를 묻어준다고 했다. 우리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를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우리의 아이로 와서 엄마인 나의 뱃속에서 함께한 시간이 13주밖에 되지 않았지만 마지막은 우리 손으로 보내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아이는 조그마한 상자에 담겨우리와 함께 나왔다.
반나절만에 처음 맡은 바깥공기는 이전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세상도 달라 보였다. 신랑을 만나러 처음 왔던, 결혼하고 둘이 되어 같이 와서 지냈던, 모든 것이 좋아 보이고 설레기만 했던 뉴질랜드는 내게 없었다. 바람마저 휑하니 불었다. 문득 아래쪽이 싸했다. 나는 바지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가 나오기 전 피가 범벅이 돼서 바지를 병원에 버려두었던 것이다. 가까운 쇼핑몰에 들러 신랑이 트레이닝 바지 하나와 조그마한 삽 하나를 사 왔다. 우리는 병원 근처 조용한 바닷가에 아이를 묻어주기로 했다. 바닷가에 도착하니 이미 해는 뉘엿뉘엿 져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다행히 사람도 거의 없었다. 한참을 해안선을 따라 걷다 바다와 맞닿은 해안 쪽 끝에 커다란 나무들이 서있었고 그 아래쪽에 바위와 돌들이 움푹 들어간 곳을 찾았다.
그곳이면 괜찮을 것 같았다. 나무와 바위들로 막혀 있는 곳이라 너무 빨리 물에 휩쓸려갈 것 같지도, 그렇다고 사람들 눈에 쉽게 띌 것 같지도 않았다. 우리는 그곳에 사랑이를 묻어주었다. 그리고 우리만 알 수 있게 돌들과 나무막대기들로 표식을 해두었다. 앞으로 한동안은 찾아올 것 같았기에.... 크리스천인 신랑이 소리 내어 하느님께 기도드렸다. 그리고 우리는 둘이 손을 맞잡고 기도했다.
사랑아, 엄마아빠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하늘나라에서 푹 쉬렴. 다음세상에서 꼭 다시 만나자.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리는 집으로 향할 때쯤은 이미 날이 어둑해지고 있었다.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하니 정신력으로 버티던 몸은 그나마 남아있던 기운마저 빠져나가며 온몸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이 모든 일이 고작 새벽부터 저녁까지 하루 동안에 일어났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