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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개발도상국이야?

뉴질랜드 의료시스템

by 해보름

긴 하루가 지나고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유산 소식을 알렸다. 한국은 이른 아침시간이라 가장 먼저 일어나계실 아빠에게 먼저 전화를 했다. 아빠 목소리를 듣는 순간 울음이 터져 나와 도저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신랑이 대신 전화를 받았다. 신랑은 하루 사이 일어난 일을 아빠에게 말씀드렸고 그 사이 조금 진정된 나는 엄마랑도 통화를 했다. 그리고 어머님 아버님께도 연락을 드렸다. 양가 부모님들은 그간 고생 많았다며 몸, 마음 잘 추스르라며 위로해 주셨다. 그리고 그 사이 소식을 들은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잘 버티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떻게 된 거냐며 따져 물었다. 언니의 이런 반응이 너무 이해가 갔다. 나도 그런 심정이었으니... 그리고 언니는 가족 중 유일하게 아이가 찾아왔을 때 뉴질랜드에 와있었기에 옆에서 함께 축하를 해주었고 입덧이 시작되는 것도 옆에서 봐주었었다. 입덧이 심해 진후 나의 피폐한 몰골까지도 영상으로 보며 당장 병원으로 가라고 하며 멀리 있지만 한국에 있는 가족중 가장 가까이에서 나의 임신과정을 함께했던 그녀였기에 갑작스러운 유산소식을 받아들이는 건 나만큼이나 이해가 되지 않았을 터였다.


그러고는 이야기를 하며 나의 울먹거리는 소리에 먼저 울음을 터트렸다. 전화 너머로 들리는 언니의 울음소리에 나도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우리는 전화기를 사이에 두고 한참이나 눈물을 쏟아냈다. 그러고는 조금 진정된 그녀가 물었다.


"아니, 거기 선진국인줄 알았는데 무슨 개발도상국가야? 의료시스템이 왜 그래? 요즘 시대에 병원에 의사가 없는 나라가 도대체 어디에 있어?"

그녀는 한껏 상기된 목소리로 전화기 너머로 따져 물었다. '분명 사회복지로보나 교육이나 환경으로 봐서는 우리나라보다 선진국인데 의료는 왜 이런 거지?' 나도 그 점이 궁금했다.




그 당시엔 몰랐지만 이후에 살아보니 의료나 병원시스템 자체가 한국이랑은 너무나 달랐다. 질랜드는 국가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고(사립병원도 있지만 큰 종합병원은 다 국가에서 운영하고 있다) 병원비도 국가에서 백 프로 지원을 해주는 시스템이다 보니 개인이나 기업이 병원을 운영하는 한국처럼 시스템이나 설비나 의료진이 잘되어있지 않았다. 아프면 공짜로 진료를 받는 대신 응급환자위주로 수술이나 진료예약을 해주기 때문에 생명이 위급한 중증병이 아니면 치료받기 위해 수개월에서 길면 1,2년까지 기다려야 했다. 신랑 아는 지인은 다리가 부러졌는데 수술받는데 6개월을 기다려서 받았다고 하고, 또 다른 지인도 팔이 부러졌는데 1년이 다 돼서야 수술받았다고 한다. 지내보고 주위에 이야기를 나눠보니 오랜 이민생활을 하신 분들 중에 이런 일은 한 번쯤 안 겪어본 집들이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의료인력 부족이다. 뉴질랜드는 원래 인구가 그리 많지 않았기에 의사도 많지 않았고 의사를 배출하는 의대의 수도 몇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의대를 나온다 하더라도 복지가 더 좋거나 더 큰 나라인 호주나 다른 나라로 가서 의사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아 의사수가 국민수에 비해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내가 갔던 국립병원 응급실에서처럼(의사가 없는데도 다른 병원으로 늦게 보내준 건 의문이지만) 의사가 없을 수 있고 있다 하더라도 오래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은 여기 오래 살면서 병원을 가본사람들은 누구나 겪는 것들이었다. 나만 운이 없어 부당한 대접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이것이 뉴질랜드 의료의 현실이었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과연 이런 병원시스템을 가진 나라에서 우리가 살 수 있을까?'



이것이 우리에게 던져진 화두였다.







(* 이미지 출처: CIARA PRATT/FAIRFAX 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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