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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기 위해 강해져야 한다!

대자연의 나라에서 살아남기

by 해보름

여행을 다녀온 후 나는 '자연에서 힐링받는다'는 말을 몸소 체감했고 몸과 마음이 어느 정도 치유됨을 느꼈다. 먹거리도 많고 볼거리도 많고 사람도 많은 한국의 여행지와는 다른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한 여행이었다. 여행을 다닐수록 뉴질랜드라는 곳이 어떤 곳이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제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대자연의 모습 그대로를 보존하며 자연과 함께 삶을 맞추고 살아가는 나라, 그곳이 뉴질랜드였다. '자연주의'가 그들 삶의 모토라고 할 수 있는 나라다. 실제로도 많은 유럽인들이 뉴질랜드로 이주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위해서라고 한다. 한국인들 뿐 아니라 영어권 국가로의 이주를 하는 많은 아시아인을 포함한 비영어권 국가의 사람들은 영어와 교육에 신경을 쓰다 보니 뉴질랜드라는 나라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인 자연주의 나라라는 것에 큰 신경을 쓰지 못하고 이주를 한다. 나 역시도 그랬듯이...(사실 나는 초이스는 없었다.) 이렇게 내가 사는 나라를 알고 보니 이제야 무언가 하나씩 끼워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의료 시스템이 다르고 의료인력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의료에서도 그들의 자연주의 영향이 있었다. 예로, 웬만큼 아파서는 병원에 가도 약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이곳 사람들도 웬만큼 아파서는 병원에 가지도 아니 갈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일반 감기로 병원에 오는 사람은 정말 거의 없다. (내가 처음 뉴질랜드에 와서 겨울에 종합감기세트에 걸려 겨울 내내 고생할 때도 신랑이 병원에 안 데려간 이유가 있었다..) 아이들이 콧물 나고 기침이 나도 이곳 부모들은 병원에 데려가지 않는다. 39도 이상 열이 나거나 할 경우에 병원에 가고 그렇다 하더라도 병원에서 주는 약은 일반 약국에서 사는 약(해열진통제)을 처방해 준다. 신랑 아는 키위는(뉴질랜드사람을 키위라고 한다) 아이가 1살인데 열이 40도가 됐는데도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물수건으로만 몸을 닦아주며 집에서 케어했다고 한다. 심지어 그녀는 간호사 출신이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병원에 가도 딱히 어떤 치료나 다른 것을 해주지 않는 걸 알기에 그랬던 것 같다. 이렇듯 뉴질랜드 사람들은 정말 웬만큼 아프지 않고서는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자연적으로 치유한다. 그것이 그들의 문화이다. 물론 장단점이 있다. 단점은 큰 병을 초기에 치료하지 못해 병을 키울 수도 있고 아픔을 자연치유로 견뎌내야 하는 고통이 따른다는 것고 장점은 그만큼 면역력이 길러진다는 점이다. 이곳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겨울에도 반바지를 입고 맨발로 밖을 다닌다. 그리고 감기에도 잘 걸리지 않는다. 실제로 얼마 전 코로나팬데믹이 전 세계를 덮쳤을 때 뉴질랜드가 전 세계에서 유일한 코로나 청정국가였는데(변이바이러스가 나오기 전까지) 그 이유가 코로나 확진자가 10명이었을 때부터 초반에 국경을 닫고 외국인 입국을 전면 막은 정부의 빠른 대처가 꼽히고 그다음으로는 뉴질랜드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의 높은 면역력을 꼽는다. 실제 지내보니 그들의 대자연에서 길러진 면역력이라면 코로나바이러스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겠다 싶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던가.' 어느 정도 갈피가 나온듯했다. 내가 사는 나라를 알았으니 이제 나를 재정비하여 앞으로의 일들에 대비하면 된다. 그러고 보니 나는 한국에서도 추위를 참 많이 탔다. 그리고 체력도 그리 좋은 편도 아니었다. 체력적으로 힘든 승무원 생활을 할 때는 부상방지 차원에서 운동을 하며 체력을 키우기도 했지만 그 후에는 딱히 운동을 꾸준히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병원을 참 자주 다녔다는 것이다. '아프면 고생하지 말고 미리 약 먹고 주사 맞고 낫자.' 라는 생각으로 조금만 아프면 약을 사 먹거나 미리 병원에 가곤 했다. '그런 내가 자연주의의 나라인 이곳에서 살아야 하다니... '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신은 순순히 내가 원하는 걸 아무 대가 없이 들어주신 게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랑과 대학교 때 만나고 헤어진 후 10년 넘게 잠들 때마다 신에게(그때 나는 불교였지만 한분한테만 기도하는 것보다 많은 신에게 기도해야 들어주실 것 같아 부처님, 하느님께 다 기도를 했더랬다.) 신랑을 한 번만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했던 기도가 그리고 외국에 나가 살고 싶다고 시도 때도 없이 외쳤던 그 바람이 이렇게 아무 대가 없이(?) 쉽게 이뤄질 리가 없었다. 신에게 왠지 모를 배신감도 들었지만 뭐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은 내가 한 기도였고, 신은 그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니 그 후에 일은 내가 헤쳐나가야 할 내 몫이었다. 니 어쩌면 나는 나의 목적을 위해 기도를 한 것이라면 신은 그가 생각하고 있는 그만의 목적으로 나의 기도를 들어주신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나는 나의 바람대로 이곳 뉴질랜드에 내가 그리워했던 사람과 함께 있다. 그러니 이제 내가 할 일은 이곳에서 잘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정신적, 육체적으로 강해져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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