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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군데가 넘는 집을 봐야 한다?

뉴질랜드 집사기 프로젝트

by 해보름

어느덧 이민 3년 차, 한 번의 아픔과 고통이 지나가고 우리는 다시 뉴질랜드의 자연과 더불어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다시 신혼을 찾은 듯 뉴질랜드 이곳저곳으로 여행도 다녔고 한국에도 다녀왔다. 몸과 마음이 한차례 쓰나미를 통해 강해졌고, 정신은 이민초기의 이런저런 걱정, 설렘, 기대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비워지며 맑아졌다. 나와 내 옆의 신랑, 그리고 내가 있는 이곳 뉴질랜드. 그게 다였다. 그 외에 어떤 군더더기도 남아있지 않았다.

마운트 망가누이(Mt. Manganui) 산에 올라 보이는 타우랑가 비치
타우랑가 해변에서
타우포(Taupo) 호숫가에서


그렇게 여행을 다니고 뉴질랜드에서 가까운 섬나라인 피지에도 다녀왔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온 우리는 앞으로 좀 더 안정된 생활을 위해 우리 집을 갖고 싶어졌다.





뉴질랜드는 한국처럼 전세가 존재하지 않는다. 주당 렌트비를 내며 렌트를 살던지 아니면 집을 구매하든지 해야 한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집값이 한국에 비해 많이 비싸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민자들이 늘어나면서 집값이 계속해서 오르더니 최근 몇 년 사이 오클랜드가 세계에서 살기 좋은 도시 2위로 뽑히면서 집값이 급등했다. 그러다 보니 유학생이나 워킹비자를 소유한 단기 거주자 이외에도 우리처럼 결혼한 젊은 부부들도, 부부가 모두 전문직에 종사하는 맞벌이 부부들도 집을 사지 못해 렌트를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오클랜드에서 집사는 일은 그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뉴질랜드는 (개인의 소득과 연봉에 따라 달라지지만) 자기 자본금이 최소 20프로 이상이 되면 나머지 금액을 오랜 기간(30년 납까지 가능)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도 신랑 연봉으로 받을 수 있는 모기지를 알아보니 잘하면 평균집값의 집 정도는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참고로 그 당시 2017~18년 오클랜드의 평균집값은 65만 불이었다.) 우리는 그때부터 매주 집을 알아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뉴질랜드는 집을 보려면 한국처럼 부동산에 가서 내가 원하고 주인 혹은 세입자가 원하는 시간을 맞춰서 따로 보는 것이 아니라 주말에 오픈홈이라고 해서 렌트든 매매든 집을 내놓는 사람들이 집 매매 사이트에 집을 올려놓으면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그 사이트를 통해 직접 원하는 가격대, 원하는 위치, 맘에 드는 집들을 고른 다음 주말에 오픈 홈 시간에 맞춰 그 집을 가서 보는 방식이다. 오픈 홈은 토요일, 일요일 이틀 동안 진행되며 보통 아침부터 오후까지 중에 30분에서 1시간 정도씩 진행한다. 그래서 내가 보고 싶은 집이 여러 개가 있으면 시간대를 잘 맞추면 하루에 5~6군데 혹은 많게는 7~8개까지 집을 볼 수 있고, 시간대가 겹쳐서 보지 못하는 집은 다음날이나 그다음 주에 가서 보면 된다. 그리고 말 그대로 오픈 홈이기 때문에 내가 굳이 지금 집을 사고 싶지 않더라도 관심 있는 누구든지 그 집을 가서 볼 수 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집을 살생각이 있으면 원하는 지역에 오픈 홈을 하는 집에 가서 볼 것을 권한다.


우리도 집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을 이민 초기에 지인으로부터 뉴질랜드에서 집을 사려면 적어도 100군데의 집을 봐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에는 '엥? 무슨 100군데나 봐야 하지? 그냥 몇 군데 보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우리가 집을 사기 위해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하니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우선 뉴질랜드는 거의 주택인지라 한국의 아파트와는 달리 모든 집의 구조가 다 다르다. 집 내부 구조뿐 아니라 정원, 개라지, 창고 등 외부 구조와 환경도 다 다르고 집이 지어진 년도, 방식, 자재 그 모든 것이 집집마다 다르기 때문에 원하는 집이 나올 때까지 최대한 많이 돌아다니고 봐야 했다.





우리는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하고부터는 정말이지 주말에 집 보러 다니는 것을 쉰 적이 없었다. 매주 평일에 내가 사이트를 통해 마음에 드는 집들을 골라놓고 리스트를 뽑아놓고 주말엔 신랑이랑 매주집을 보러 다녔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원하는 집은 바로 매매에 들어가거나 옥션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집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 주도 빼지 않고 집을 보러 다녔다. 그렇게 몇 달을 보러 다니니 이제는 대략 집을 겉에서만 봐도 '이 집은 어떻게 생겼겠구나'라는 감도 생겼다. 그리고 그 사이 옥션에도 참여했다.


옥션은 말 그대로 경매를 말한다. 뉴질랜드에서는 집을 사려면 주인에게 오퍼를 넣던지 아니면 옥션을 통해 살 수 있는데 이 방식은 주인이 결정한다. 옥션을 통해서 집을 파는 경우 주인은 생각한 금액보다 경쟁을 통해 더 높은 가격으로 팔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대신 팔리지 않을 경우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한다. 직접 오퍼를 통해 집을 파는 경우는 집을 사고자 하는 사람이 대략 그 집 주변의 시세를 알아보거나 부동산 업자에게 주인이 어느 정도 원하는지 물어본 후 주인이 어느 정도 수락할 것 같은 금액으로 오퍼를 넣는 것이다. 이것은 옥션과는 달리 여러 명이 오퍼를 넣더라도 상대가 얼마에 넣었는지는 주인밖에는 알 수가 없다. 그 오퍼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금액을 제시한 사람에게 집주인은 집을 파는 것이다. 아니면 또 한 가지 방법은 주인이 직접 원하는 가격을 제시하는 경우이다. 그리고 그 가격을 지불하겠다는 사람이 나오면 거래가 성사되는 것이다. 이렇게 집을 사는 방법도 제각각이어서 집을 보는 것만큼이나 원하는 집이 경매로 나오는지 오퍼방식으로 나오는지에 따라 준비해야 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그리고 경매든 오퍼든 집을 사려면 일단 그 집에 대한 서류들도 다 찾아서 문제가 없는지를 찾아봐야 하고, 변호사를 선임해서 변호사와 함께 그 작업들을 같이 진행해야 했다. (뉴질랜드는 집 매매 시 변호사를 반드시 통해서 살 수 있다. 이는 변호사 공증을 통해 부동산 사기도 막아준다.) 그리고 그 원하는 집의 밸류를 은행에게 이야기한 후 그 집 시세로 얼마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는지 또한 상담받아야 했다. 관심이 있는 집이 있을 경우 이러한 모든 과정들을 거쳐야 하기에 섣불이 참여하기에는 시간과 돈과 에너지 모두 낭비되는 일이었기에 우리는 우리가 살 수 있는 예산의 집인지 정말 괜찮은 집인지를 여러 번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만 했다.


우리는 그 사이 옥션에도 참여하고 오퍼도 넣어봤지만 잘 되지 않았다. 우리가 정말 마음에 들었던 집들은 옥션에서 집값이 시세보다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쭉쭉 올라가서 입도 뻥끗해보지도 못하고 끝난 경우도 있었고, 오퍼도 넣었지만 주인이 그보다 더 높은 가격을 넣은 사람에게 팔아서 안 된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이웃과 집 주변 환경까지 살펴야 해 밤낮으로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며 집을 보다 보니 정말 우리 집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생각과는 다르게 계속해서 실패를 맛보니 우리는 점점 지쳐갔다. 그리고 우리의 조건으로 평균가격대의 집은 살 수 있을 거라 했던 초반의 생각이 막상 부동산 거래에 뛰어들다 보니 우리가 원하는 집들을 평균가격대로 살 수 있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이겨 내 집으로 만들려면 그 시세보다 못해도 10만 불에서 20만 불 이상은 여유 있게 갖고 있어야지만 승산이 있었다.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 유리한 게임이었다. 타이트한 버짓으로 집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멋모른 오산이었다.


그 사이 우리가 집을 보러 다닌 지 1년이 지나고 있었고, 그간 어림잡아도 100채는 훌쩍 넘는 집들을 보았다. 그럼에도 우리가 마음에 드는 집을 사지 못하게 되자, 우리는 우리 집을 살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점점 희미해져 갔다.




* Image by ourhomeandgarden.co.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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