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이를 유산하고 나는 운동에 집중했다. 내 건강과 체력이 최우선이었다. 하루 물 한잔도 못 넘길 정도의 3달여간의 지난 임신 경험이 내게 알려준 것은 '강.해.져.야 한.다' 였다. 내 몸에 또 다른 하나의 생명체가 들어와 그 생명체를 온전히 나의 에너지와 나의 힘으로 키워내려면 건강한 것, 그 이상으로 강해져야 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은 약이나 치료등 일반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외부의 도움을 받지 못하기에 오롯이 내가 축적한 내 안의 에너지와 영양분, 건강한 장기와 근육만이 아이를 건강하게 키워낼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온몸으로 겪은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매일 운동을 했다. 생애 처음으로 헬스장을 등록하여 주 3일 이상 근력운동을 했고, 매일같이 30분 이상씩 걷고 뛰었다. 그러면서 평소 신경성위염으로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입덧이 너무나 힘들었기에 철저히 식단조절도 했다. 채식까지는 아니지만 고기를 최대한 줄이고, 밀가루는 아예 먹지 않았다. 다행히 뉴질랜드에는 베지테리언, 글루텐을 먹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식단과 재료들이 잘 구비되어 있어, 카페를 가거나 마트에 가면 밀가루 없이 만들어진 빵이나, 과자, 피자, 파스타 등 많은 것들을 먹을 수 있어 생각만큼 힘들지 않았다.
그렇게 철저히 아이를 갖기 위해 내 몸에 집중하며 지내왔음에도 3년이 넘도록 소식은 없었다. 우리는 둘 다 임신을 하기에 나이가 있었던 터라 혹시나 하는 대비책으로 시험관시술 정부보조를 받을 수 있는지 알아봤고 자격이 되어서 예약도 해놓았다. 그러나 뉴질랜드 의료 시스템상 역시나 1년을 기다려야 했다. 3월에 예약을 해놓았고 4개월이 지난 7월 어느 금요일, 그날은 시험관 시술을 위한 검사가 예약되어 있었다. 우리는 예약 시간에 맞추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 나갈 채비 중이었다. 나는 준비를 하고 조용히 화장실로 향했다. 예정일이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느낌이 왠지 오늘 검사를 해보고 싶었다. 오늘 시험관 검사 전 왠지 이 검사를 먼저 해야 할 것 같았다. 이미 매번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기에 기대감은 전혀 없었다. 검사한 키트를 화장실에 두고 마저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 검사키트를 바라봤다. '이게 뭐지?' 그간 한 줄만 보아왔던 내 눈이 믿을 수 없다 하여 보고 또 보았다. 선명한 두 줄이었다.신랑 역시 믿을 수 없는 얼굴로 키트를 바라보고 또 바라봤다. 그러고는 감격에 소리를 지르며 나를 꼭 안아줬다.드디어, 우리에게 다시 아기 천사가 찾아왔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우리에게 다시 한번 아이를 허락해 주심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그렇게 우리는 전화로 검진센터에 임신사실을 알리고 검사를 취소했다. 그리고 산부인과를 알아봤다. 사실 우리는 저번 임신기간 동안 한국과는 너무 다른 뉴질랜드의 미드와이프 시스템을 겪고 나서 다시 임신이 되면 한국으로 가서 임신기간을 보내고 아이를 출산할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막상 현실은 쉽지 않았다. 임신 기간 중 가장 서포트를 받아야 하는 신랑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점뿐 아니라 양쪽에서 지내며 들어가는 이중의 생활비 또한 요인이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산부인과 전문의에게 임신 기간 중 케어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여기저기 알아본 결과, 산부인과 의사를 만날 수 있는 산부인과가 있었다. 이렇게 얘기를 들으면 '잉, 왜 산부인과가 뉴질랜드에 없어?'라고 의아해하실 것이다. 사실 산부인과는 있다. 그렇지만 임신 중 보통 아니 거의 대부분이 정부에서 보조를 해주는 미드와이프를 이용한다. 그래서 한국처럼 임신기간 내내 산부인과 전문의에게 케어를 받을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내 기준에서는 주위에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나 역시도 처음 임신했을 때 주위에서 미드와이프랑 예약 잡으라고만 들어서 당연히 이곳에선 임신하면 미드와이프를 봐야 하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산부인과에 예약하라고 알려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나라 사람인 키위들조차도, 뉴질랜드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며 20년 이상 사신 이민자분들도 모두 하나같이 미드와이프만 알려주었다. 그렇듯 임신하면 미드와이프를 만나는 것이 거의 유일한 선택지였다. 그 이유는 미드와이프는 나라에서 지원을 해주기에 임신 기간 중 미드와이프를 만나 진료받고 아이를 출산하는 과정까지 드는 비용이 모두 들지 않기 때문이다.(임신 기간 중 초음파 비용만 제외이다.)그렇다 보니 여기서 오래 지낸 한국 이민자분들도, 이 나라 키위들조차도 돈을 들이며 산부인과 의사를 만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임신 기간 중 문제가 생기면 미드와이프가 전문의를 만날 수 있게 의뢰서를 써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비정상적인 임신상황이라던지 출산의 경우에는 출산과정뿐 아니라 전반적인 의료지식을 갖춘 산부인과 전문의와 임신 기간 내내 케어를 받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랬다.) 실제 미드와이프와 임신기간을 보냈다가도 막상 출산일에 아이가 거꾸로 있어 나오기 힘든 상황이라든지 다른 상황들로 인해 제왕절개를 해야만 하는 경우가 생기면 그때는 병원에 상주하는 의사가 출산을 진행한다. 미드와이프는 정상적인 임신과 출산은 가능하지만 수술이 필요하거나 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에는 적합하지 않다. (kidspot.co.nz/prenancy/choosing your lmc, 자료 참조)
어쨌든 우리는 비용이 들더라도 임신기간 처음부터 출산 때까지 전문의로부터 케어를 받고 싶었기에 산부인과를 알아봤고 예약을 했다.
내가 다니던 AOC 산부인과 내부
우리가 알아본 산부인과는 산부인과 전문의가 7명이 계시는 오클랜드에서 가장 큰 2군데의 산부인과 중 한 곳이었다. 임신확인 후 예약을 하면 임신 10주 차부터 출산 후 21일까지 케어를 받을 수 있고, 여러 명의 전문의가 있어 24시간 비상으로 의사 선생님과 직접 전화통화를 할 수 있고, 내가 보던 의사 선생님이 안될 시에는 다른 전문의에게 예약을 하고 진료를 받고 출산을 할 수가 있었다. 총비용은 6500불 정도였다. 그 당시 환율로 한국돈으로 5백만 원 정도의 가격이었다. 한국은 산후조리원 비용 포함해서 드는 비용일 것이다. 물론 비싸다. 출산까지 공짜로 받을 수 있는 것에 비하면 당연히 비싸다. 그렇지만 아이를 다시는 잃고 싶지 않았고, 그만큼 임신 기간 중 제대로 된 전문의의 케어를 받고 싶었기에 한 생명과 맞바꾸는 돈이라 생각하면 절대 비싸다고 할 수 없었다.
우리는 이렇게 산부인과에 예약을 했고 10주 차에 첫 방문을 했다. 특별한 이상이 없을 경우 초기에는 4주에 한번, 중기에는 2주에 한번, 막달에는 매주 방문을 한다. 첫 방문에 가장 경력이 많고 평판도 좋으신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확실히 미드와이프 만날 때랑 달랐다. 몇 마디 안 했음에도 내 이전의 유산한 히스토리를 보시고 입덧이 심했음을 아시고는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저번처럼 심하게 입덧이 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입덧약을 미리 처방해 주시고, 혹여라도 저번처럼 수액을 맞아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병원에 오지 않고 바로 가까운 병원에 가서 맞을 수 있도록 의뢰서도 작성해 주셨다. 그러면서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라도 연락을 하고 이번에는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안심도 해주셨다. 임신과정과 입덧은 마음의 안정이 제일 크게 좌우한다고 했던가? 첫 방문에 나는 이미 이번 임신에는 혼자가 아니라 든든한 지원군이 있음에 마음이 너무나 놓였다. 그리고 처방해 주신 약도 입덧이 심해지기 전부터 복용을 해서 인지 아예 입덧이 없지는 않았지만 저번처럼 물도 못 넘길 정도가 아니었고, 울렁거림이 있지만 식사가 가능했다. 신기하고 이 정도임에 너무나 감사했다. 그리고 13주가 지나면서부터는 그마저 있던 입덧도 사라졌다. 이게 정상이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13주까지 하루하루 불안했던 마음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20주 차부터는 몸이 힘든 것 말고는 이것저것 너무 잘 먹었고, 심지어 평소에는 먹고 나면 배가 아파서 잘 먹지 못했던 아이스크림도 하루에 한 개씩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너무나 행복했다. 아이도 감사하게 너무 건강하게 잘 크고 있었다.
신랑이 셀프로 집에서 찍어준 만삭 사진
* 이번 글에서 미드와이프와 산부인과 전문의를 만난 경험은 저의 개인적인 경험하에 작성된것이며 일반적이지 않을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