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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조리원? 산후훈련원!

900불 내고 산후훈련원에 들어오다

by 해보름

아이를 임신했을 때, 우리는 산부인과와 함께 Birth care 에도 예약을 해두었다. Birth care는 전문 미드와이프와 간호사가 상주하고 소아과 전문의사가 방문하여 아이를 낳고 나서 집에 갈 때까지 아이를 케어하는 부분에 있어서 도움을 주는 곳이다. 임신 전에는 막연히 '한국의 산후조리원 같은 곳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그곳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주변 지인들은 그곳에 가는 것을 추천하지 않았다. 이유는 정확하게 몰랐지만 집에 가는 것이 더 낫다고들 이야기했다. 그래서 고민이 되긴 했지만, 우리는 첫아기라 경험도 없는 데다 그 당시 코로나로 외국인 전면 입국이 막힌 상황이어서 한국에서 산후조리를 위해 부모님이 오시는 것도 불가능했기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곳에 머무를 수 있는 기간은 3일이 최대였는데 우리는 우선 이틀만 예약을 다.(3일이 아닌 2일을 예약한 건 정말 현명한 선택이었다.)


아이 낳고 6시간 만에 병원에서 나와 차를 타고 10분 거리에 있는 birth care에 도착하니 새벽 4시가 다 되었다. 접수를 하고 기다리는데 우리가 예약한 1인실 방이 아침에 사람이 나가니 오전 10시까지는 우선 2인실을 써야 한다고 했다. 2인실은 산모와 아이만 있을 수 있으니, 그 말인즉슨, 신랑은 같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직 소변줄도 꽂고 있고 아이 낳고 눈도 못 붙이고 온지라 내가 온전히 아이까지 케어하는 게 힘들듯 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와 아이만 이미 다른 산모와 아이가 있는 2인실로 들어가고 신랑은 집으로 갔다.


'하..... 여기서부터 시작이었으리라.

이곳이 산후조리원이 아니라, 산후훈련원이었음을 알아차린 것이........'

우선 2인실에 도착해 아이는 아이침대에 누이고 나는 바로 옆 침대에 누웠다. 새벽바람을 쐬서인지 한기가 들고 슬한 느낌에 히터를 세게 틀고 몸을 뉘었다. 다행히 아이도 잠들어 있어 나도 눈을 붙였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누군가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 전담 미드와이프라고 소개를 한다.


' 아까 본 것 같은데 왜 굳이 날 또 깨우지?'


아침이 되어 근무조가 바뀐 듯했다. 그녀는 새벽에 보았던 친절해 보이는 미드와이프와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나를 깨우더니 아이를 깨워 기저귀를 교체하고 수유를 하라고 한다.

"지금? 아이 자는데?"


신생아는 3시간마다 수유를 해야 하므로 자더라도 깨워서 수유를 해야 한다고 한다. 천근만근인 몸을 침대에서 일으켰다. 소변줄과 아래쪽 후처치로 인해 몸을 일으키는 것이 불편했다. 침대에서 나와 곤히 자는 아이를 안고 다시 침대에 앉았다. 기저귀는 어찌 갈아야 한단 말인가?

도움의 눈길을 그녀에게 보내보지만 그녀의 표정은 단호하기 이를 때 없었다. 일체의 도움도 주지 않겠다는 듯한 태도로 (마치 가보지는 않았지만 티브이에서 본 훈련소의 조교와 같은 포스였다) 내 침대 발밑에 서서 나에게 명령 아닌 명령을 한다.

'흠.... 그래 해보자.'


만지면 부서질 것 같은 아이를 조심조심 아기침대에서 꺼내 배냇저고리를 벗기고 기저귀를 갈았다. 그때까지도 아이는 눈도 뜨지 못하고 잠들어 있다. 수유할 때는 그녀가 와서 아이 위치와 입모양을 잡아주어 아이가 잘 모유를 빨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리고는 옆에 서서 지켜본다. 이 포스는 뭐지? 옆에 서 있을 뿐, 도움을 구하거나 물어보기 힘든 포스다. 어찌어찌 첫 수유를 마치고 다시 몸을 뉘었다. 그러나 이미 원에서부터 잠을 못자고 밤을 새우고 아침이 찾아온 터라 멍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그 사이 아침시간이 되어 아침을 뭐 먹겠냐고 묻는다.


시리얼에 마실 것은 코코아로 줘.


산후조리원이라고 뭐가 다를까. 아침은 여전히 시리얼에 토스트, 요플레가 전부다. 참으로 국물이 당긴다. 평소에는 국 없이도 밥 잘 먹는데 아이 낳고는 왜 이리 국물이 당기는지 왜 예부터 어른들이 아이 낳고는 미역국을 먹으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아침 먹고 조금 있으니 신랑이 왔다. 가까운 지인분이 싸주신 음식 한 보따리와 함께. 드디어 미역국이다!! 보온병 한가득에 미역국을 싸주시고, 같이 곁들여 먹게 반찬도 싸주셨다. 이렇게 감사할 데가.. 드디어 미역국 한 그릇을 후루룩 마셨다. 그제야 몸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방도 1인실로 옮겼다. 1인실이지만 별반 다른 건 없었다. 침대 한 개와 아이침대가 한 개이고 보호자가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거 밖에는. 보호자는 바닥에 반접이식 매트를 깔고 자게 되어있는데 자리가 협소하다 보니 저녁에 잘 때만 가져다가 바닥에 깔고 자야 했다.


간 몇 년 전 조카가 태어났을 때 언니가 들어갔었던 한국의 뜨끈한 온돌바닥의 산후조리원이 생각났다. 뜨끈한 바닥에서 가족들이 모여 앉아 신생아실에서 모자동실시간에 오는 조카를 보기 위해 온 가족들이 들여다보고 했던 떠올랐다. 모자동실시간이 그리 오래되진 않았던 것 같다. 아이 젖 먹이고 조금 놀다 졸려하면 아이는 다시 신생아실로 돌려보내졌다. 한국의 산후조리원은 산모의 회복이 우선이었으니..

여기는 산모가 우선이 아니다. 아이 낳고부터는 24시간 아니 그때부터 그냥 엄마랑 아기는 함께이니 모자동실이라는 건 애초에 없는 말이다. 산모의 회복이 중점이 아니라 아이가 태어나서부터 얼마나 엄마랑 붙어있으며 애착관계를 잘 형성하며 엄마가 이제 부모로서 아이를 잘 케어하고 육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었다. (Birthcare provides 24-hour midwifery care. Our staff include midwives, nurses, house-keepers, administration staff, visiting physiotherapists, visiting paediatricians and lactation consultants who will work closely with your LMC to assist you with the transition into parenthood.- bithcare.co.nz 참조)


신랑이 오고 나서는 낮에 눈을 그나마 조금 붙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여지없이 3시간이 지나면 아이수유를 위해 깨야했다. 밤에도 여지없었다. 3시간마다 미드와이프가 순찰(?)을 돌았다. 그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와서 아이수유했는지를 확인했다. 미드와이프가 오면 다 잠에서 깨야하니 신랑이 아예 3시간 수유텀에 알람을 맞춰놓았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 시간에 일어나는 건 신랑뿐. 나랑 아이는 눈도 뜨지 못했다. 그러면 신랑은 곤히 잠자고 있는 나 아이를 깨우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다 미드와이프가 오면 조금만 있다가 와이프랑 아이를 깨우겠다며 그렇게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었다.


그렇게 아이 낳고 새벽에 산후조리원에 들어와 밤이고 낮이고 3시간마다 깨서 수유를 하다 보니 몸은 이미 본격육아를 시작하기도 전에 회복은커녕 녹초가 되어있었다. 이틀에 900불이나 주고 들어온 이곳은 애초 나의 목적인 산후조리가 아닌 앞으로 집에 가면 겪게 될 육아를 미리 온몸으로 가르쳐준 산후훈련원이었던 것이다.


그제야 이곳을 겪어본 사람들이 왜 그냥 집에 가는 게 낫다고 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이를 케어해 줄 사람이 없다 해도 그저 빨리 집에 가서 잠이라도 실컷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 사진 출처: birthcare.co.nz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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