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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후 6시간 만에 병원에서 쫓겨나다

아침 해 뜰 때까지만 있게 해 주세요.

by 해보름

출산 예정일 이틀 전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무언가 축축한 것이 흘러나왔다. 샤워 물기가 아니었다. 양수였다.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 신랑이 부리나케 병원에 전화했다. 의사는 우리의 예상과 달리 24시간 지켜보자고 했다. 24시간 내에 진통이 걸리지 않으면 다음날 와서 유도분만을 하자고 했다. 그렇게 집에서 잠이 들고일어난 아침, 이슬이 비쳤다. 다시 병원에 전화를 하니 의사는 바로 오라고 했다. 그렇게 예정일 하루 전 우리는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오전 10시가 조금 넘었다. 조금 있으니 나의 담당의사가 도착했다. 그녀는 뷰가 좋아는 방으로 예약을 해 두었다면서 방이 크고 뷰가 잘 보이는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곳에는 나의 분만을 도와줄 미드와이프도 와있었다. 보통 임신 후 미드와이프랑 예약을 하는 경우는 출산을 미드와이프 혼자 혹은 그의 어시스턴트와 같이 분만을 하지만 나의 경우(산부인과에 예약을 했기에) 내가 예약하고 진료를 보던 산부인과의 의사 중 한 분이 분만을 맡고 산부인과 소속 미드와이프가 같이 옆에서 출산과정을 도왔다. 캐서린이라는 이름의 미드와이프는 꽤 경력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우리가 첫 분만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도록 매 과정과정 친절하고 차분하게 설명을 해주었고, 출산이 임박했을 때에도 전혀 서두르거나 흥분하여 목소리톤을 높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내 옆에서 나를 북돋아 주었다.


가운으로 갈아입고 간단한 검사를 하고 분만실 침대에 누워 태동 검사기를 배에 채웠다. 그리고 11시 반즈음 유도분만을 위한 옥시토신 투여가 시작되었다. 유도분만에 대한 이야기, 경험담들은 주위에서 이미 들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아이가 나올 때가 되어 스스로 움직이며 진통이 시작되는 게 아니라, 약물을 통해 말 그대로 출산을 유도하므로 자연진통 걸리는 것보다 훨씬 더 아프다는 것이었다. 친한 친구는 배를 칼로 가르는 것 같은 고통이었다고 했다. 지금 약물이 투여되고 진통 걸리길 기다리는 나의 마음은 어느 정도의 긴장감은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했다. 분만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니 무서워하고 고통스러워하면 아이도 그 감정을 고스란히 느껴서 나오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니 최대한 긴장을 풀고 아이가 스스로 잘 나올 수 있게 정신과 육체를 릴랙스 하는 게 중요하다는 분만명상을 미리미리 해두었던 것이 도움이 된듯했다. 그저 아이가 편안하게 이 세상에 나오기를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4시가 되도록 배에 싸한 느낌은 있지만 아프거나 하는 진통은 전혀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미드와이프에게 이야기를 하니 의사가 와서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했다. 그로부터 한 시간 반이 지나도 아무 진통이 없자 그제야 의사는 한 번 내진을 해봐야 할 것 같은데 괜찮냐고 했다. 물론이지. 의사는 내진을 하더니 아이 뒤쪽에 있는 양수주머니 하나가 터져야 하는데 그게 터지지 않아 진통이 걸리지 않은 것 같다 하며 그 양수주머니를 이제 터치겠다고 했다. 그러면 금방 진통에 걸릴 것이라고.


무언가 느껴지진 않았지만 의사는 양수를 터쳤다고 했고, 나는 '이제야 시작이구나.' 싶어 마음을 단디 먹었다. 그러고 나서 정말 30분쯤 지났을까, 5분 간격으로 배 속에서 무언가가 휘몰아쳤다. '올게 왔구나.' 싶었다.


' 그래 이게 진통이구나. 우리 아이가 이제 나오려고 준비하고 있구나.'


정신을 단디 잡고 호흡에 집중했다. 그렇지만 이게 금새 5분에서 3분, 3분에서 1분.... 진통간격이 급속도로 짧아졌다. '아, 이래서 유도분만이구나.' 호흡을 가다듬을 틈도, 호흡에 집중할 정신도 없이 진통이 휘몰아쳤다. 진통이 오는 순간은 그리 길진 않았는데, 그 기간 동안 고통이 너무 심해 호흡이고 머고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입으로 숨을 참고, 온몸으로 고통을 견디며 그 고통이 지나가기만을 견디는 수밖에....

내가 힘들어하자, 신랑은 곧바로 에피듀럴(무통주사)을 맞을 것을 권했다. 그것도 맞는다고 해도 의사가 와서 주사 놓고, 약이 들어가고 하는 시간이 있으니 신랑은 조금이라도 빨리 내가 무통주사를 맞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나는 최대한 버티고 싶었다. 아이가 나오려 하는 이 진통을 내가 오롯이 느끼고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안달나하는 신랑 앞에서 나는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러다가는 고통 앞에 내 의식도 잃을 것만 같았다. 나는 에피듀럴을 요청했고 바로 마취과 의사가 왔다. 너무도 다행히 그분은 '에피듀럴의 신'이라 불리는 마취과의 대부 같은 분이셨다. 내 등을 새우등으로 만들어서 척추에 주사를 놓아주시고는, 다리를 톡톡 치며 감각이 느껴지냐고 물었다. 나는 다리에 감각이 느껴졌다. 마찬가지로 허벅지에도 감각이 느껴졌다. 그는 정말이지 '에피듀럴의 신'답게 배의 진통만을 느끼지 않도록 마취를 해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까, 나는 진통이 사라지며 스르르 잠이 들었고 눈이 떠졌을 때는 이미 한 시간이나 지나있었으며, 자궁문도 10센티나 열린 상태였다. 이제 분만이다.


바로 힘주기 연습에 들어갔다. 3인 일조다. 나의 오른쪽엔 미드와이프가, 나의 왼쪽엔 신랑이 각각 내 다리를 잡고 같이 힘을 주었고, 아래에선 의사 선생님이 아이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배에 통증이 느껴지진 않았지만 한 번씩 자궁이 수축할 때 배가 땅겨오는 느낌은 들었다. 그리고 다리에는 감각이 있어서 양쪽 다리를 들어 올리고 힘을 주는 것은 모두 가능했다. 내가 배에 수축이 온다고 하면 바로 미드와이프가 카운트를 시작했고 그 카운트 소리에 나는 온몸으로 힘을 주며 아이가 나올 수 있도록 배를 밀어냈다. 미드와이프와 신랑은 내 다리와 머리를 잡아주며 힘을 배로 모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렇게 한 시간쯤 힘을 줬을까?' 나는 점점 힘이 떨어지고 있었고, 아이는 내가 힘이 달리니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쉴 틈이 없었다.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얼른 아이가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했다. 마음과는 달리 1시간이 넘는 힘주기로 온몸이 덜덜 떨리며 더 이상 어떤 힘조차도 들어가지 않는 순간에 내 입에선 '더 이상 못하겠다'라는 말이 나왔다. 수술도 너무 무섭지만 그래도 수술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 나라는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단지 산모가 원한다고 제왕절개를 해주지 않는다. 다시 힘을 내야 했다. 그 순간 미드와이프는 '넌 엄마야. 못하는 건 없어. 할 수 있어. 해야 돼.' 라며 나에게 힘을 주었다. 의사도 이번이 마지막이니 다시 한번 힘을 주라고 했다. 안되면 도와줄 테니 있는 힘껏 다시 줘보라고 했다. 정말 온몸 세포하나하나에 남아있는 모든 에너지와 힘들을 그야말로 온 영혼으로 끌어모았다. 그러자 무언가 쑥 나오는 게 느껴졌고 의사는 조금의 조치를 취했다. 그러자 드디어 아이 머리가 나왔다. 그리고는 아이가 끼여있었는지 머리만 나와있다가 의사가 손을 넣어 아이 팔을 쑥 뽑아냈다. 그러고 나서는 정말로 아이가 다 나왔다. 아이가 나옴과 함께 내 몸에 남아있던 진액도 함께 다 빠져나온 것 같았다.


' 하................... '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아이는 씻지도 않고 바로 내 품에 안겨졌다. 온몸에 태지를 감고 눈도 제대로 못 뜬 모습이지만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10개월을 어떤 모습일지 상상만 해온 아가가 내 눈앞에 있는 그 느낌이란?

아이를 눈앞에 마주하자 안도감과 함께 곧바로 피로감이 몰려왔다. 지금 잠들면 하루 이틀 쭉 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현실은 아이한테 바로 젖을 물려야 했다. 그렇게 눈도 못 뜬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아이는 내 옆 아이 침대로 옮겨졌다.


수고했다며, 후처치를 끝낸 의사가 인사를 건네고 미드와이프도 역시 수고 많았고 축하한다며 아이에게 본인이 직접 떠준 배냇모자를 씌워주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분만실에는 신랑과 나, 아이 우리셋만 남았다. 얼마 후 간호사가 와서 내 팔에 꽂혀있던 링거바늘을 뽑았다. 수액이 남아있길래 다 맞아도 되지 않냐 하니 이제는 필요가 없다 한다. 그리고는 허기가 느껴져서 먹을 게 없냐고 묻자 토스트 한 조각과 코코아를 가져다주었다. 아, 말 만들었는데 막상 아이를 낳고서 이 음식들을 보니 왜 아이 낳고 미역국을 먹으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온 몸에 진액이 다 빠져 나간 이 시점에 드라이하게 말라있는 토스트 따위가 너무 먹고 싶지 않았다. 뜨끈한 미역국 한 사발을 후루룩 들이키고 싶었다. 그렇지만 초이스가 없었다. 그 토스트 한 조각을 입에 욱여넣고 코코아로 미역국을 대신했다.

출산 후 처음 먹은 토스트


그거라도 배에 들어가니 이제야 말로 정말 졸음이 쏟아졌다. '잠시 눈을 붙였을까?' 간호사가 나를 깨운다. 소변줄을 이따가 빼야 하니 얼른 소변을 봐야 한단다. 그리고 샤워를 하란다.

' 잉? 무슨 샤워, 졸려 죽겠는데...'


다시 눈을 감았다. 조금 있다 다시 온다. 소변보았냐고, 샤워하라고....

'아니, 샤워는 내가 알아서 하면 안 되나?' 하도 귀찮게 하니 얼른 하고 자자 싶었다. (지나고 나서 하는 이야기지만 이 샤워는 하는 게 아니었다. 이때 샤워하며 든 오한이 아이 낳고 몇 년간 나를 괴롭힐 줄 알았다면 더러운 아시아인 취급을 받더라도 샤워를 안 하겠다고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그러나 나는 자꾸 귀찮게 하는 간호사의 요구에 굴복하고 말았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후처치를 한 데다 소변줄까지 꽂아 아래쪽이 얼얼하고 걷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샤워실로 들어가 가운을 벗었다. 타일 바닥에서 온몸으로 한기가 올라왔다. 따뜻한 물을 틀로 샤워를 했음에도 몸을 말리고 옷을 입는 동안 또 한기가 온몸을 타고 올라왔다. 다시 가운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와서 누웠다. 이제 좀 잘까 싶은데 또 간호사가 들어온다. 그러더니 이번엔 내 캐리어 가방에 내 짐을 싼다. 왜 그러냐고 묻고 싶지만 너무 졸려 그냥 눈을 감았다. 그러고 또 한참있다 들어와서 나를 깨운다. 조금 있다가 3시에 나가야 한단다.


뭐라고?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반이다.

지금? 이 새벽에?


원래 아이를 낳고 6시간만 병원에 있을 수 있다고 한다. 6시간 후면 병원에서 나가야 한단다.

' 헐........'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은가, 나는 저녁 9시에 아이를 낳아 지금은 새벽인데...


나는 다시 물었다. 아니 부탁했다.


" 아침 해 뜰 때까지만 있으면 안 돼? 지금 새벽이잖아. 아침 해 뜨고 나갈게. 그때까지만 있게 해 줘."



그녀는 단호했다. 조금 있다가 올 테니 나갈 준비를 하란다. 신랑은 안 되는 걸 느꼈는지,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우리는 산후조리원에 예약을 해 두었다. 그렇지만 지금 이 상태로 나가는 건 아니었다. 3월이라 뉴질랜드는 초가을이었고, 새벽 공기는 쌀쌀했다. 그리고 우선 나는 소변줄을 차고 있지 않은가? 이 상태로 나가야 한다고?


정확히 3시가 되자 다시 그녀가 왔다. 우리 짐을 분만실 밖으로 뺐다. 신랑은 아이를 바구니에 넣고 한 손엔 짐을 들었다. 나는 한 손으로는 소변 주머니를 들고, 다른 한 손엔 짐을 들었다.


태어나서 6시간 만에 병원에서 나갈 준비를 마치고


그렇게 우리는 병원밖을 나왔다. 아이를 낳은 지 정확히 6시간 만인 새벽 3시에, 병원에서 쫓겨 나왔다. 태어난 지 6시간 밖에 되지 않은 핏덩이 아이와 함께...... 병원건물에서 나와 주차장까지 걸어가는데 바깥공기가 예상보다 찼다. 찬 바람을 쐬니 순간 울컥하고 무언가가 올라왔다. '도대체 왜, 아이를 낳았는데 하루도 못 있게 하고 아이 낳은 사람을 이 새벽에 그것도 갓난아이와 함께 내보내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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