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드디어 우리 집이 생기다

280평?이라고??

by 해보름

1년 넘게 매주 집을 보러 다님에도 우리는 원하는 집을 사지 못하고 있었다. 가장 큰 요인은 급등한 집값과 타이트한 버짓이었다. 옥션과 오퍼를 넣으려면 아무래도 시세보다 단 10만 불이라도 더 갖고 있는 사람이 유리했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집이 새 집이 아니다 보니 우리는 들어가서 살 경우 최소한의 보수 비용이 드는 집을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 너무 오래된 집은 리스트에서 제외됐고, 어느 정도 리노가 되지 않은 집들도 제외됐다. 집을 사기에도 타이트한 버짓으로 리노를 하기 위한 여유비용까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동네였다. 아직은 아이가 없어 학군까지 따지는 건 아니었지만, 기본적으로 모터웨이랑 가깝고 한국마트와 쇼핑몰 등 편의시설과 너무 멀지 않으면서 안전한 곳이어야 했다. 뉴질랜드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비교적 총기사고라던지 유학생 혹은 이민자들을 상대로 한 범죄가 많이 나지 않는 곳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민자들이 많이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위험한 지역은 있었다. 그런 동네는 애초에 리스트에 넣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1년이 넘도록 여전히 집을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지쳐가던 어느 주말, 신랑이 마음에 드는 집이 있다며 꼭 한번 같이 보러 가자고 했다. 마음에 들었던 집들도 못 사게 되고 실패를 많이 하다 보니 이젠 마음에 드는 집을 보러 가는 것도 처음처럼 마냥 설레거나 기쁘지가 않았다. '또 안 되겠지, 우리 돈으로 오퍼는 넣을 수 있을까?' 등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그래서였을까, 다소 무덤덤하게 어느 동네인지 묻자 신랑은 동네는 물어보지 말고 그냥 집이 마음에 드니 집만이라도 보러 가자고 했다. 신랑이 이렇게까지 강하게 이야기한 적이 별로 없었던 터라 같이 가서 집만 보고 오자라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사실 그 집은 내가 맘에 들어하지 않는 약간 위험한 동네에 있었다.) 오픈 홈 시간에 맞춰 그 집에 들어섰다. 집 앞쪽 정원이 오르막길로 되어있는 지대가 조금 높은 집이었다.

앞에서 본 집 전경


게이트를 지나 살짝 오르막을 올라서니 '웬걸?' 뒤쪽에도 정원이 꽤나 크게 있었다.

'음, 나쁘지 않은데?'


신랑이 마음에 들어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집 앞 뒤로 공간이 크고 넓었다. 뒤쪽 정원과 주차공간, 바비큐를 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데크까지 우리가 원했던 것들이 다 있었다.


집 뒤쪽 정원과 바비큐 공간, 주차공간


' 밖은 괜찮네? 집 안을 봐야지.'


우리는 집 안으로 들어섰다. 방은 복도식이었고, 아담한 사이즈의 3 베드룸이었다. 화장실은 토일렛과 샤워실과 욕조가 있는 바쓰룸이 분리되어 있었다. 거실과 주방이 기존 우리의 버짓으로 보았던 집들 중에서 꽤 큰 편이어서 부동산 중개인에게 물어보니 전주인이 리노를 해놓아서 주방과 거실을 넓혔다고 했다.

거실 왼편
리노되어 넓혀진 거실 오른편 공간

'음, 나쁘지 않은데?'

거실은 주방으로 이어지는 오픈된 곳을 기준으로 양쪽에 걸쳐 있어서 두 군데를 나누어서 한쪽에선 티브이를 보고 한쪽에선 책을 보는 공간으로 활용해도 좋을 것 같았다. 주방 또한 리노가 되어있어서 밝고 깔끔했고, 다이닝룸 공간은 데크로 이어졌는데 이 또한 넓고 해도 잘 들어서 손님들이 오거나 해도 많이 북적이지 않고 좋을 것 같았다.

뒤쪽 정원이 보이는 깔끔하게 리노된 주방
데크 쪽으로 문이나 있는 해가 잘 드는 다이닝 공간


그리고 우리가 가장 마음에 든 것은 지대가 높다 보니 습하지 않고 해가 어느 쪽으로나 너무 잘 든다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가 렌트로 살고 있는 집은 바닥과 붙어있는 집이어서 비가 많이 오는 겨울철이면 습했고 그래서 더 추웠다. 그리고 도마뱀이나 다른 벌레들도 더 많이 들어왔다. 도마뱀은 하루 한 마리씩 꼬박꼬박 들어와서 매일같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동원해 도마뱀 잡아 밖으로 치우는 게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집을 사게 되면 조금이라도 땅이랑 떨어진 집이면 좋겠다 했는데 이 집은 꽤나 지대가 높고 아래쪽은 창고여서 2층이나 다름없는 높이의 집이었기에 비가 많이 오더라도 전혀 습하거나 할 것 같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이쯤 되면 머뭇거려서는 안 됐다. 하루 더 생각해 보거나 하면 이미 그 집은 우리 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가 1년 넘게 100군데가 넘는 집을 보며 얻은 교훈이었다. 우리는 부동산 중개인에게 이야기를 나누러 그에게 다가갔다. '역시나..' 신랑 나이또래로 보이는 남자 둘이 이미 중개인 주위에서 '주인이 얼마를 생각하고 있느냐.', '나는 이번주에 오퍼를 넣겠다.' 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이 이야기를 끝낼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그에게 조용히 다가가서 말했다.


" 우리 지금 이 집 오퍼 넣고 싶어."



훤칠한 큰 키에 슈트를 입은 40대 후반정도의 키위로 보이는 에이전트는 우리 이야기를 듣더니 자기가 오늘은 오후에 오픈하우스가 하나 더 잡혀 있으니 내일 오전에 자기 사무실로 올 수 있냐고 했다. 우리는 그러겠다고 했고 다음날인 일요일 아침 그의 사무실로 향했다.


그는 호의적인 인상으로 우리를 맞이하여 사무실 내 탁자로 안내했다. 그리고는 우리가 살집인지, 투자용인지, 아이는 있는지 등등 기본적인 정보들을 물었다. 우리는 주인은 얼마를 원하는지 물었다. 다행히 우리 버짓 내의 금액이었고, 집 평수에 비해 저렴했다. 그렇지만 더 딜을 하기 위해 이미 은행 모기지 담당자가 알려준 그 지역 평균 집값을 알려주었다.(그 가격은 주인이 원하는 가격보다 낮았다.) 그는 우리가 그렇게까지 집 시세를 알아본 것에 놀라는 눈치였다. 그 찰나 우리는 놓치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가격을 이야기했다. 그는 잠시 머뭇하더니 이 가격으로 주인에게 이야기해 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우리가 부른 가격은 나쁘지 않은, 아니 우리한테 유리한 딜이었다. 집주인이 이 정도까지는 받아야 한다는 금액보다 우리가 조금 더 적게 부른 것이었다. 그동안 왠지 모를 내공이 쌓인 걸까? 왠지 불안하거나 하지 않았다.


우리는 사무실에서 나와 근처 카페로 향했다. 언제 연락 올지 모르니 최대한 근처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음식을 주문하고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쯤, 신랑 전화가 울렸다. 부동산 에이전트였다. 빨리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몇 분 후 신랑이 통화를 끝냈다.


뭐야? 뭐래? 빨리 말해봐~!!"


나는 급하게 재촉했다. 그는 진정하려는 듯 뜸을 좀 들였다. 그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 주인이 오케이 했대. 우리가 제안한 금액으로 오케이 했대.!!"


"진짜? 정말이야?"

" 응, 이제 우리 집이야."



믿기지 않았다. 신랑을 바라봤다. 신랑 눈에 눈물이 고여있었다. 아니 울고 있었다.


신랑의 눈물은 처음이었다. 그렇지만 너무나 이해가 가는 눈물이었다. 그동안 1년이 넘는 아니 2년이 다되어가는 시간 동안 매주 집을 보러 다녔기에 그 절실함이 어땠는지, 신랑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건 같이 오롯이 그 시간을 함께한 나 밖에 없었다.


너무 마음에 들어 주말이고, 밤이고 몇 번이고 가봤던 집, 평일 오전시간이었던 옥션에 참가하느라 회사에 반차까지 내가며 변호사를 통해 서류까지 완벽히 준비 다해놨지만 막상 옥션 시작가가 우리 버짓보다 높아 입도 뻥긋 못해봤던 집, 너무 맘에 들어 꿈에까지 나왔던 집 등 그간 우리가 놓쳤던, 우리 집이 되지 않았던 집들에 보냈던 시간, 노력, 모두 우리 둘 만 아는 경험들이었다. 나보다 더 예민했던 신랑은 마음에 들었던 집이 안될 때마다 많이 힘들어했고, 의기소침해했었다. 그랬기에 그의 눈물은 지난날들을 보여주는 그의 힘들었던 마음이었으리라.


그에게로 다가가 살며시 안아줬다.


" 수고했어, 자기야. 그리고 축하해. 이제 우리 집 생겼어."



그는 울면서 나를 바라보며 웃어주었다. 그렇게 정녕 100군데가 넘는 집을 보고 몇 번의 실패를 겪고 나서야 드디어 우리는 집을 살 수 있었다. 그것도 929 평방미터(280평)나 되는 집을...





keyword
이전 15화100군데가 넘는 집을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