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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나라 그 속에서 답을 찾다

로마에선 로마의 법을 따라라.

by 해보름

몸이 조금씩 회복되면서 아침에 집 근처로 산책을 다니기 시작했다. 둘만이 살 수 있는 집으로 이사를 온 지 얼마 안 돼서 임신이 되었었던 터라 그간 집 근처 동네 산책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다. 아침에 신랑이 출근하고 나면 혼자 가벼운 옷차림으로 동네를 걸었다. 이전 동네에서도 느꼈었지만 뉴질랜드에서는 동네산책을 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나름의 재미가 있다. 한국의 일률적인 아파트와는 달리 주택들이 비슷한 듯 다 다르게 지어져 있어 걸으면서 그 집들을 보는 것만으로 보는 재미가 있 때문이다.


내가 살던 동네의 집들 Photo from onroof.co.nz


'이 집은 데크가 넓구나, 이 집은 정원을 예쁘게 가꾸어 놓았네, 이 집은 다락방이 있구나.' 등등 밖에서도 어느 정도 집안이 보이기 때문에 그 집의 대략적인 구조나 몇 층집인지, 데크는 어떤지, 정원은 얼마나 정돈이 잘 되어있는지 등을 볼 수가 있다. 그렇게 지나다 정원을 가꾸고 있는 집주인들과 눈이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도 건넨다. 아침에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이웃들의 인사까지 받으면 참으로 마음이 따뜻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십 분 정도 걷다 보니 공원으로 통하는 내리막길이 나온다. 양쪽에 넓은 잔디들을 가로질러 내리막을 내려가니 'henderson creek'이라는 작은 개울가, 하천 같은 것을 끼고 커다랗게 공원이 있었다. '이런 공원이 바로 코앞에 있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니.. ' 사뭇, 뉴질랜드에 와서까지 뭐 때문에 이렇게 여유가 없이 살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70426_082839.jpg 우리 동네에서 공원으로 내려가는 길 입구


개울가를 끼고 큰 나무들로 수풀이 우거진 흙길을 따라 크게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나니 산의 둘레길을 걸은 것처럼 몸과 마음이 상쾌해졌다.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들,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나오신 분들, 자전거로 트랙을 도시는 분들 각기 햇살이 좋은 오전시간에 공원에서 여유롭게 운동을 하고 있었. 참으로 여유로운 뉴질랜드의 아침풍경이었다. 이들과도 역시 걸으며 눈이 마주치면 눈인사와 함께 인사를 건넨다. 렇게 가까운 곳에 너무나도 좋은 자연과 함께인 공원이 있다는 걸 알게 된 나는 일주일에 3,4번씩 주말이면 신랑과 함께 공원산책을 했다. 그러다 차츰 운동복을 입고 조깅도 하게 되었다.


20170426_083117.jpg 일주일에 3~4번씩 산책하던 Henderson Park의 숲길


언젠가 찾아본 뉴질랜드의 장점 중에 자연환경과 함께 도시 곳곳에서 휴식과 산책, 바비큐까지 즐길 수 있는 큰 공원이 많이 있다는 것이 꼽힌 걸 본 적이 있다. 실제 지내보니 그랬다. 내가 사는 오클랜드는 대도시임에도 어느 곳이든 10분이나 15분 이내에 잔디와 숲이 함께 있는 큰 공원들을 만날 수 있다. '이 또한 도시에 살면서 크나큰 혜택이 아닐까?', ' 나는 이 좋은 자연혜택이 있는 나라에서 그것들을 누리지 못하고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좀 더 뉴질랜드의 삶에 동화되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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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점점 오전시간에는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공원을 산책하는 것이 나의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자 힐링의 시간이 되어갔다. 그러면서 나는 '나를 아프게 한 뉴질랜드가 이렇게 나를 회복도 시키고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한쪽면만 존재하지 않고 양극이 존재하듯, 뉴질랜드의 '자연주의'라는 단점으로만 보였던 것이 이제는 그 큰 자연이 나를 그 큰 품 안에서 조금씩 회복시키고 있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라는 말이 왜 나온 것일까? 그것은 인간이 살면서 맞춰진 환경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자 답이라는 어찌 보면 가장 기본적인 자연의 원리여서 이지 않을까? 자연의 한 부분인 인간도 여기에 순응하고 그 이치에 맞게 살아야 아무 탈이 없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싶다.


이곳에 살수록 하나씩 부딪히는 것들이 '자연과 함께하고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사는 자연주의' 때문인 것이 많았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반대로 내가 얼마나 그동안 자연과 자연의 이치와 동떨어진 삶을 살아왔나라고도 볼 수 있었다.







실제로 뉴질랜드는 지구상에서 해가 가장 빨리 뜨는 나라이고, 일 년 중 새해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나라이다. 리고 아직도 여름의 긴 낮시간을 더 활용하고자 하는 '서머타임'이 존재하는 나라이다. 뉴질랜드는 모든 시간이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사람들이 맞추어져 많은 사람들이(어린아이들 포함) 해가 뜨는 이른 아침에 일어나고 저녁에는 해가 지는 시간이 되면 집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다 잠자리에 든다. 그렇기에 커피숍이나 식당, 가게들도 일찍 문을 열고 일찍 문을 닫는다. 주말에는 큰 쇼핑몰을 제외하고는 문을 열지 않는 가게들이 많다.


이민 초기에는 이런 것들이 참 불편했다. 한국의 늦은 밤문화, 잠들지 않는 밤문화를 겪은 나로서는 웬 시골인가 싶고, 왜 이렇게 다들 재미없이 사는 거야 싶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조금씩 이해가 되고 '이것이 자연의 섭리에 맞춰 사는 건강한 삶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아침 7시면 베이커리에서 빵 굽는 냄새가 길밖에까지 퍼지고, 그 옆 커피숍에서는 커피 내리는 은은한 커피냄새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머물게 하고, 공원에는 조깅하고 운동하며 이른 하루를 맞는, 오후 4시면 많은 회사들이 문을 닫고 5시면 집에 온 가족이 모여 저녁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8시가 되면 어린아이들은 잘 준비를 하며 잠자리에 드는.. 어느 동화에나 나올법한 삶들을 이들은 살고 있었다. 대자연 속에서 대자연의 이치에 맞게..


그러고 보면 이민이라는 것은 단순히 사는 곳과 언어만 다른 곳에 적응해서 사는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닌 그 나라의 문화와 삶의 방식까지 몸에 익혀 그들의 문화에 흡수되어 살아가야만 하는, 그래야만 탈이 나지 않는, 어쩌면 여태 살아온 삶의 방식과 패턴, 어쩌면 의식체계까지 모조리 바꾸어야만 하는 그런 어렵고도 힘든 과정이었다.



' 그래, 나는 그런 어려운 일은 해내고 있어. 그 과정에 있는 거야. 이 정도 힘듦은 당연한 거야. 잘하고 있어.'


이민 3년 차가 된 이제야 내가 온 이민이 무엇인지, 어떻게 새로운 나라에 적응해야 하는 건지 조금은 감을 잡은 것 같았고 그제야 제대로 된 시작을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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