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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유치원이 아이에게 가르쳐준 것

"말 못 하던 아이가 놀이를 이끌기까지"

by 해보름

“Can I be your friend today?”


요즘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면 가장 자주 듣는 말이다.

매일 같이 놀던 사이인데도, 이곳 아이들은 아침이 되면 꼭 이렇게 묻는다.
마치 오늘 하루를 다시 시작하는 의식처럼.

그 질문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나는, 아이보다 먼저 반응할 때가 많다.
“그럼, 같이 놀면 되지.”
그러다 아이를 힐끗 보면 표정은 시큰둥하다. 시크하게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어떤 날은 “Yes”, 또 어떤 날은 “No”가 튀어나온다. “No”가 나오는 날이면 나는 갑자기 말이 많아진다.


“루나야, 친구가 친구 하자고 했는데 싫다고 하면 어떡해. 친구 기분이 안 좋지 않을까? 같이 노는 게 어때?”

그동안 말을 건 친구는 우리 옆에 서서 아이의 반응을 조용히 기다린다.
“Yes”가 나오면 모두가 안심하지만, “No”가 계속될 땐 나 혼자 진땀을 뺀다.

그래도 대부분은 “Yes”.
그럴 땐 친구도 신나고, 나도 마음이 놓인다.
“그래, 얼른 가서 놀아.”
기쁜 마음으로 인사를 하고 돌아선다.


올해 초, 아이가 처음 뉴질랜드 유치원에 왔을 때가 떠올랐다.
등원 시 한국에서처럼 늘 선생님 손에 인계를 해주어야지만 유치원을 나올 수 있었다. 친구들과 같이 놀기는 하지만 그저 같은 공간에 있을 뿐이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친구가 생기면 나에게 다가와.
“엄마, 나 저 친구랑 놀고 싶다고 말해줘.”
하며 부끄러움에 뒤에 숨어 마음을 전하던 아이였다.


그렇게 시작한 이곳 생활도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간다.

요즘 아이는 친구들 속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 자기 자리를 확고히 만들어가고 있다.
친구에게 머리핀 같은 작은 선물을 받아오기도 하고, 자신이 아끼는 인형이나 머리끈을 건네주기도 한다.


어느 날 하원 시간, 선생님이 말을 건넸다.
“루나는 이제 친구들을 불러 모으고, 친구들과 잘 놀뿐 아니라 리드도 하고 있어요.”

순간 놀라서 되물었다. 정말요?


집에서 혼자 놀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거실 소파에 인형들을 줄지어 앉혀두고, 아이는 선생님이 된다.
“Hi guys. Today we’re gonna do…”
책을 읽어주고, 노래를 부르고, 율동을 하고, 춤을 춘다. 유치원에서 본 선생님의 모습을 그대로 흉내 내는 것이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땐 한국 어린이집 선생님을 흉내 내며, 한국 친구들 이름을 불렀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게 영어로 바뀌었다.
친구 이름도, 노래도, 책 읽는 소리도.


그 모습을 신기해 남편과 나는 힐끔힐끔 바라보곤 했다.

그런데 유치원에서도 똑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니.


선생님은 아이가 친구들을 앞에 앉혀두고 책을 읽어주고, 노래를 부르고, 한 명씩 이름을 부르며 “이제 너 차례야” 하고 말한다고 말하며, 덧붙였다.

“리더십이 있어요.”


며칠 뒤, 하원 후 놀이터에서 아이를 지켜보던 날이었다.
장난감 물총을 가져온 아이에게 친구들이 함께 하고 싶다고 하자, 아이는 흔쾌히 물총을 빌려줬다.
그런데 한 친구가 차례를 지키지 않고 계속 혼자 놀자, 아이가 다가가 말했다.


“너 많이 놀았어. 이제 다른 친구 차례야.”


그리고는 그 친구로부터 물총을 받아 다른 친구에게 건넸다.

그 장면을 본 남편과 나는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놀람, 감동,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처음 이곳에 와 말도 통하지 않은 채 친구들 뒤만 졸졸 따라다니던 아이.

그 아이가 이제는 영어로 자연스럽게 소통하며, 놀이를 중재하고 있었다.

지난 1년의 시간이 그 짧은 순간에 모두 담겨 있었다.


처음엔 한국과 달리 그룹 활동도 거의 없고, 프리 플레이가 중심인 이 환경이 그저 낯설기만 했다.
아이가 잘 뛰어놀고 좋아하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이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아이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다.


알파벳보다 먼저, 사람 속에서 관계를 배우고, 스스로 자리를 만들어가는 법을.

내년이면 학교에 가는 아이에게, 이곳은 이미 가장 중요한 준비를 시켜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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