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소한 행복~~

by 예쁜손

성탄절 날까지 아르바이트 근무하느라 정작 꿀 휴일은 오늘, 내일이다. 어제 근무한 시간이 반나절이 채 안되는데-이제 몸이 여기저기 아플 나이가 되어선지 -녹초가 되어서 집에 들어왔다.

불과 넉 달 전만 해도 백화점에서 하루 종일 서서 근무하곤 했는데... 그사이 내 체력이 더 약해진 건지 모르겠지만 오자마자 늦은 저녁을 먹고 바로 잠이 들어 오늘 느지막이 일어났다. 시계가 열 시를 가리킨다. 온몸이, 특히 어깨를 움직일 때마다 미간에 잔뜩 주름이 간다.

에고고 소리가 절로 나오는 나이이지만 모처럼 맛보는 여유가 좋아 한참을 이불속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거렸다.

크리스마스이브날엔 혼자라는 사실에 좀 청승을 떨었는데 오늘은 혼자라는 사실이 참 다행스럽다.

늦잠을 방해하는 사람도 없고... 친구들은 아직도 매 끼니를 가족들 식사 준비로 바쁜데, 나는 식구들 끼니 챙겨줄 걱정에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날 일도 없으니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 팔자가 상팔자 아닌가? 호호




더 버티고 자리에서 누워있고 싶었지만 꼬르륵 배에서 배꼽시계가 허기진 위장을 채울 것을 계속해서 규칙적으로 알려주는 통에 마지못해 천천히 일어났다.

토스트 한쪽, 사과 하나로 허기를 채우고 씻지도 않은 채 오매불망 커피 바라기인 나는 마스크에 모자까지 푹 눌러쓰고는 나의 단골 카페, 내 친구 명희 씨한테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다.

내가 요즘 아르바이트 시작한 이후, 또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면서부터는(그전에는 매일 커피를 마시면서 카페에서 글을 쓰곤 했다.) 마음은 매일 친구를 만나러 가고 싶지만 일 끝나고 어쩌다 보면 시간이 애매하거나 피곤해서 집으로 바로 가다 보니 일주일에 잘해야 두세 번밖에는 갈 수 없었다.

"명희 씨, 안녕? 잘 지냈어요? 크리스마스는 잘 보냈어요?"

언제 봐도 기분 좋은 다정한 친구이다.

'내가 사람 보는 안목이 좀 있지...'생각하곤 혼자 빙긋 웃었다.

서로 이런저런 안부를 묻자마자 커피가 고픈 나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그녀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사탕과 초콜릿을 잔뜩 챙겨준다. 그녀의 따뜻한 온기와 사랑이 느껴진다.


겉옷을 벗고 테이크 아웃한 커피를 탁자에 내려놓는다. 음 매일 마셔도 매일 그리운 커피다. '이 세상에 커피 없었으면 나는 무슨 낙으로 살았을까' 하는 싱거운 생각을 해봤다.

술, 담배도 못해, 운동도 싫어하고, 변변한 취미 생활도 없는 나의 유일한 기호품이자 사치품?? 어쨌든 귀차니스트인 내가 휴일 일 이외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대단히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나갔다 오는 것만 보아도 나의 커피에 대한 애정을 알 수 있다.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거의 매일 통화하는 유쾌한 미경 씨다. 주제는 그날그날 다르지만 신기하게도 매일 통화하는데도 이야깃거리가 자꾸 샘솟는다.

커피를 마시는 타이밍에 절묘하게 전화를 건 미경 씨와 나는 얼굴만 대면 안 했을 뿐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로 한참을 이야기 꽃을 피웠다.

헐~한 시간은 기본. 두 시간은 옵션. 이제 그녀가 커피를 사러 외출한다는 바람에 통화는 가까스로 종료되었고 다시 배꼽시계가 점심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휴일엔 아빠가 끓여 준다는 유명한 짜파00가 갑자기 먹고 싶었다. 난 비록 끓여 줄 남편은 없지만 왠지 내가 끓이면 더 맛있을 자신이 있었다.

다행히 집에 하나 남은 라면이 짜장 라면이었다. 2시간을 통화하는데 에너지를 쏟아냈으니 안 맛있을 수가 없었다. 꿀맛같이 게눈 감추듯 폭풍 흡입했다.

잘 먹고 나니 나른하니 기분 좋은 행복감이 찾아온다. 잘 사는 것-이런 단순하고 평범한 것에 있는 것 아닐까?

요즘 내 마음에 꽂힌 아티스트는 이적이다. 며칠째 이적의 음악만 낮이고 밤이고 주야장천 틀어놓고 듣는다. 멜로디도 좋지만 시적이고 뭔가 철학적인 그의 노래 가사가 좋다.

그의 음악을 튼다. 책상 쪽으로 다가가 책상 앞의 읽다만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집어 든다. 지난주 읽기 시작했는데 아직 반밖에 읽지 못했다. 인간의 지닌 불안을 사회적 지위와 연결하여 원인과 그 해법을 밝힌 책인데 흥미롭긴 한데 그렇다고 쉽게 빨리 넘어가는 책은 아니다. 오늘, 내일마저 읽어 보려 계획을 세웠다.

얼마 만에 맛보는 여유로운 빈둥거림인지... 육체적인 컨디션은 난조를 보였지만 마음만은 여유롭고 행복했다.


성탄절 전날 이른 아침, 갑자기 쓸쓸하고 외로운 생각에 눈물을 쏟고 그 감정을 고스란히 담은 글을 브런치 블로그에 올려놓았더니 한 친구는 커피와 케이크 쿠폰을 메시지와 함께 보내왔고 오후엔 가까운 지인 두 명이 서프라이즈 선물로 직접 한 크리스마스 요리와 케이크를 들고 우리 집으로 왔다.



지금 나의 수입은 직장 다닐 때 수입의 삼분의 일로 줄어들었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 몇 달은 아예 수입이 제로였는데 지금 다니는 아르바이트-이것도 다행이고 감사하다.


또래에 비해 흰 머리가 없어 젊어보이니 행복하고 주머니는 얇지만 아직 좋아하는 아메리카노는 마실 수 있으니 행복하고 남편은 없어도 인복은 많아 더 섬세하게 챙겨주는 친구들이 많아 행복하고, 스펙도 가진 것도 없어 N포 세대지만 두 달째 금연 중인 성실한 아들이 있어 행복하고, 이모라면 좋아 죽는 조카들 있으니 두말할 필요 없이 행복하고, 7년 만에 혼자 여행 갈 수 있게 된 집순이-나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행복하고,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된 여건과 이 상황 모두가 행복하고 또 행복하다...


날씨가 포근하다. 미세먼지는 나쁨을 가리키고 시야는 뿌옇지만 오늘 내 마음의 일기는 맑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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