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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의심부터 가르쳤을까

프레임 리터러시 : 여덟 번째 이야기

“열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른다.”


이 말처럼 간단하면서도 무거운 속담이 또 있을까.

깊은 강물도 그 속을 가늠할 수 있는데, 하물며 사람의 마음은 너무 깊고 보이지 않아 알 수 없다니...

어릴 적, 아버지는 종종 이 말을 내게 들려주셨다.

“사람을 쉽게 믿지 마라.”

그 말이 왜 그렇게 반복되었는지, 나는 어른이 돼서야 알게 되었다.


요즘 세상은 그 깊이를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선한 행동을 해도, 믿고 도와줘도, 오히려 그 끝에 배신이나 범죄가 도사리고 있는 뉴스를 매일 접하게 된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본 영상이 마음을 덜컥 내려앉게 만들었다.

버스정류장에서 휠체어를 탄 할머니를 집까지 데려다준 젊은 청년이, 집에 들어선 순간 폭행을 당하고 장기밀매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누가 봐도 아름다운 선의의 장면이, 순식간에 악몽으로 바뀐 것이다.

이런 일들이 쌓이면 사람들은 점점 마음의 문을 닫게 된다.


“괜히 도와줬다가는 내가 다칠 수도 있어.”

이런 생각이 자기 방어처럼 자리 잡는다.

그 결과, 세상은 차가워지고, 서로를 향한 작은 친절조차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되어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신뢰를 포기할 수는 없다.


이 아이러니한 세상은 여전히 신뢰 위에 세워져 있다.

회사에서는 동료를 믿고 함께 일해야 하고, 사회는 시민 개개인의 책임감과 신뢰로 유지된다.

가족, 친구, 이웃… 모든 관계가 결국 믿음 위에 쌓인다.

알 수 없는 사람의 마음에 신뢰라니 세상은 어렵기만 하다.


영미권에도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다는 여러 말들이 있다

“Still waters run deep.”

잔잔한 물이 오히려 깊듯, 겉으로 평온해 보이는 사람도 속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또 성경 <예레미야서 17장 9절>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The heart is deceitful above all things.”

(사람의 마음은 무엇보다도 거짓되고 심히 부패되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내면은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어느새 나는 그 말들을 되새기며 우리 아이들에게도 조심스레 말하게 된다.

“사람을 무작정 믿어서는 안 돼. 너무 좋은 사람이더라도, 항상 한 번은 더 생각해야 해.”

그 말이 아이 마음에 그늘을 만들까 걱정되지만, 이 시대의 부모로서 아이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막이라고 믿는다. 아빠가 나를 향한 사랑과 보호의 본능으로 말했던 것처럼...


이처럼 신뢰를 가르치기 전에, 나는 아이에게 의심을 가르친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이 지금 이 시대 부모가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사랑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신뢰는 가르쳐야 할 미덕이지만, 의심은 가르쳐야 할 생존일까?

오늘도 나는, 그 둘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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