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 리터러시: 스물 여섯번째 이야기
한강 작가의 <눈물상자>를 읽고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물을 자주 흘린다는 이유로 “눈물단지”라 불리며 놀림을 받던 아이. 그 아이에게 눈물은 늘 부끄러운 것이었고, 숨기고 싶은 감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양한 눈물을 수집하는 ‘눈물 상인’ 아저씨가 나타나고 그는 아이에게 특히 순수한 눈물을 요구했다.
눈물이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한 사람의 마음이 가장 처음 열릴 때 흘러나오는 어떤 본질 같은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둘은 결국 평생 울어본 적 없는 한 할아버지를 찾아간다.
할아버지는 살아온 시간 속에서 쌓인 슬픔과 상실, 공허를
단 한 번이라도 눈물로 흘리고 싶어 했다.
아저씨는 자신의 눈물상자에서 눈물의 절반을 건넸고,
할아버지는 그것을 마신 후 처음으로 울음을 터뜨린다.
흐느낌에서 시작해, 웃음과 울음이 함께 흔들리고,
마지막엔 춤추듯 몸이 움직일 정도로 감정이 폭발한다.
그리고 울음이 멎었을 때, 할아버지의 얼굴은 전과 전혀 달라져 있다.
오래 눌러두었던 감정이 씻겨 나가고,
그의 눈빛엔 새로 깨어난 생기가 떠올랐다.
아이도 할아버지의 피리 소리를 듣는 순간
생애 첫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은 슬픔이 아니라, 처음으로 마음이 열리는 소리였다.
슬프지도 않지만, 이유 없이 따뜻한 그런 눈물.
김창열 작가의 물방울 앞에 서면 이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의 물방울은 조용하게 시작되지만,
곧 마음의 깊은 곳에 파문을 남긴다.
전쟁과 분단의 시간을 지나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축복이면서 형벌이었던 사람.
그는 평생 “왜 나는 살아남았는가”라는 질문의 가장자리를 붙잡고 살았다.
답을 찾지 못한 채, 물방울을 그렸다.
그의 물방울은 눈물처럼 보이지만
눈물보다 훨씬 무겁다.
삶의 비명, 침묵, 회한, 기억이
투명한 껍질 안에 고여 있다.
수십 년 동안 반복된 그 한 개의 물방울은
그의 일기이자 고백이었고,
어쩌면 스스로를 붙잡기 위한 마지막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방울 하나에 담긴 것들.
슬픔, 책임, 죄책감, 그리고 생존자의 윤리.
그것들은 동시에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상처를 어떻게 견디며 살아가는가.”
“기억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김창열의 물방울은 상처에서 태어났지만
그 상처를 넘어서려는 한 인간의 의지가 담겨 있다.
지워지지 않는 밤과 잃어버린 이름들.
그 모든 것을 투명하게 견디며
그는 물방울로 자신의 생을 기록했다.
그의 작품 앞에서 우리는 알게 된다.
투명함이 때로는 가장 무거운 색이라는 것을.
숨길 수 없는 것들이, 오히려 투명함 속에서 드러난다는 것을.
그의 물방울을 오래 바라보고 나면
한 사람의 눈물 속에
그가 끝내 말하지 못한 모든 생이 담겨 있다는 사실에 닿게 된다.
그는 살아남았고,
평생 빚을 짊어졌으며,
그 빚을 예술로 갚아낸 사람이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나는 조용히 전하고 싶다.
이제는 마음껏 울어도 되는 시간이라고.
당신 덕분에, 우리는 눈물의 의미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