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좀 많이 걸었던 때문인지, 10시경에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니 아침 8시이다. 일기예보로는 오늘 맑다고 했는데 여전히 흐린 날씨이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고, 안개도 옅은 편이다. 그러나 여전히 추워 따뜻한 이불속에서 나오기가 싫다.
이번 여행 준비를 하면서 값싸게 구입하여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는 물품이 두 개 있다.
첫 번째는 8천 원 주고 산 농사용 조끼이다. 해외여행은 국내여행에 비해 몸에 휴대해야 할 것이 많다. 여권부터 시작하여 지갑, 휴대폰, 지도 등등. 재킷을 입으면 주머니가 많아 그래도 괜찮지만, 티셔츠 차림이면 이런 잡다한 휴대품을 어떻게 지니고 있어야 할지 감당이 안된다. 그래서 생각이 미친 것이 농사용 조끼였다. 망사로 된 조끼인데 깊은 주머니가 모두 8개나 된다. 여권에다 국제운전면허증, 필기구, 휴대폰 2개, 이어폰, 충전기, 안경 2개, 복용약, 셀카봉, 일회용 휴지까지 말끔히 휴대할 수 있다.
숙소에서 본 타반마을
숙소인 드래건 하우스
타반 마을
타반 마을
타반 마을
다른 하나는 다이소에서 2천 원 주고 산 보조가방이다. 여행에서 숙소를 정해두고 주위를 돌아다닐 때 보조가방이 있으면 무척 편리하다. 그렇지만 지역 간 이동을 할 때는 보조가방 그 자체가 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번에 산 보조가방은 접으면 두부 반모 정도의 크기인데 펼치면 큰 수박도 넣을 수 있는 크기이다. 아주 유용하게 쓰고 있다.
오늘은 좀 먼 곳으로 간다. 11시쯤 되어 숙소를 나왔다. 산을 내려와 도로로 나오니 내가 묵고 있는 타반 마을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인지 몰랐다. 소수민족 처녀를 가이드로 트래킹을 하는 젊은 커플이 연신 감탄을 하며 셔터를 누른다. 그리고 갖은 포즈를 취하며 함께 사진을 찍는다. 나도 그 옆에서 마을의 전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첫 번째 목적지는 '흐몽 플라워 가든'이다. 안개와 비는 없지만 온도는 어제보다 더 낮아진 것 같다. 오토바이를 달리니 바람이 차갑다. 얼굴이 얼얼하여 가지고 온 94K 마스크를 쓰니 한결 낫다. 사파 시가지를 통과해야 한다. 승용차 두 대가 겨우 비켜 지나갈 좁은 길에 레미콘 트럭, 대형 덤프트럭까지 들어오니 길이 어떻게 될지는 말 안 해도 짐작하실 것이다. 사파 시가지를 빠져나와 포장도로를 달린다. 그러나 이것도 쉽지 않다. 곳곳에 비포장 도로, 훼손된 포장도로가 나오고, 또 중간중간에 도로공사 구간은 얼마나 많은지...
타반마을
첫 번째 목적지인 흐몽 플라워 가든은 도로 옆 오른쪽 산 위에 있는데, 아무도 찾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패스. 다음은 '사쿠라 차 농원'이다.
도로 옆 왼쪽으로 시멘트 포장이 된 좁은 길이 있어 그리로 내려간다. 도중에 마주 오는 승용차와 만나면 겨우 비켜 갈 수 있는 정도의 좁은 길이다. 이런 길을 300미터 정도 내려가야 한다. 농원 정문 앞에는 매표소가 있고, 천막을 친 가게가 서너 개 정도 있다. 주차장이 있긴 한 데 승용차를 5대 정도도 못 세울 것 같다. 그러니 정문 앞 상황이 어떨지는 짐작이 가실 것이다. 방문한 차와 오토바이가 몇 대 안 되는데도 온통 난장판이다. 입장료는 무려 15만 동(약 8천 원). 대신 15만 동을 내면 작은 차 박스를 한 개 준다. 소수민족 할머니가 진흙탕 길 한쪽에 판자를 몇 개 깔아 놓고는 오토바이 주차장이라며 주차하라 한다. 1만 동을 주고 주차하였다.
농원으로 들어가니 양쪽 산 면이 모두 녹차밭이다. 보성 녹차밭만큼 잘 정돈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잘 가꾼 녹차밭이다. 처음에는 그다지 넓어 보이지 않았지만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넓어진다. 녹차밭 곳곳에 붉은 꽃을 피운 나무들이 서있다. 무슨 나무인지 궁금해하며 들어가다가 둥치를 보니 벚나무다. 그렇다. 농원 이름 그대로 이곳에 있는 나무는 모두 벚나무며, 벚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그런데 느낌이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보는 벚꽃은 밝고 화려한데, 여기 벚꽃은 색이 바랜 느낌이 들며 좀 어둡고 처량한 느낌이 든다.
다음은 실버 폭포이다. 입장료 2만 동(약 1,100원). 좁은 계곡을 가운데 두고 위아래로 길게 늘인 오메가 글자처럼 생긴 탐방로가 만들어져 있다. 높이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아 올라갔는데 탐방로가 예상외로 길다. 그리고 폭포라는 것도 그다지 볼 것이 없다. 그저 경사가 조금 급한 계곡 정도이다. 실망을 하고 그만 내려오려다가, 탐방로를 조금만 더 올라가기로 했다. 그런데 탐방로를 오르니 이게 웬일? 저 산 위로 폭포가 뻗어져 있다. 몇백 미터는 되어 보이는 폭포가 몇 개의 단을 이루며 하얀 물줄기를 내려 붓고 있다. 폭은 그리 크지 않은 폭포였지만, 아주 긴 물줄기가 굽이굽이 내려오고 있다. 까딱 했으면 이 절경을 놓칠 뻔했다. 탐방로는 폭포 아래쪽까지만 간다.
실버폭포
다음은 트랑 톤 패스(Trang Ton Pass)이다. 이곳은 약 5킬로 구간의 도로로서 그 구간이 절경이라 한다. 트랑 톤 패스 구간을 향해 다시 달리니 도로 오른쪽은 산이고 왼쪽은 광활한 계곡이다. 도로는 끝도 없이 올라간다. 도로 왼쪽에는 곳곳에 전망대이다. 저마다 조그만 시설을 갖춰놓고 관람객에게 2만 동씩을 받고 전망을 보여준다. 두세 군데 전망대에 들렀다. 돈이 조금도 아깝지 않다. 어떤 곳에서는 계곡 저 멀리 다랭이 논과 마을 풍경이 보이고, 또 어떤 곳에서는 베트남에서 제일 높은 판시판 산(3,143미터)의 위용을 바라볼 수 있다.
드디어 도로 최정상에 오른 것 같다. 조금만 더 가면 트랑 톤 패스가 시작된다. 지금부터는 끊임없는 내리막길이다. 도로를 1킬로쯤 내려와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3시 반이다. 이젠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구글지도를 확인하니 숙소까지 30킬로, 한 시간 반이 걸린다고 나온다. 아쉽지만 돌아섰다. 도로 정상 부근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니, 트랑 톤 패스가 마치 속리산 말티고개 길처럼 굽이치며 끝도 없이 내려가고 있는 광경이 보인다. 높이는 말티고개의 10배는 될 것 같다. 더 이상 안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랑톤 패스 가는 길의 풍경들
숙소가 있는 타반 마을로 오니 어느덧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벌써 3번이나 들러 단골이 된 식당으로 갔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식당 등 가게로 들어갈 때가 제일 골치 아프다. 오토바이를 가게 앞에 주차해야 하는데, 대개 턱이 있는 곳이 많아 서툰 내가 주차를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만 어려워 보이면 '발렛 파킹'을 부탁한다. 이번에는 내가 한다고 하다가 뒤뚱하면서 넘어져 버렸다. 다행히 두꺼운 옷을 입고 오토바이 장갑을 끼고 있어 다친 곳은 없었다. 이젠 꼭 발렛 파킹을 하도록 해야겠다.
야채를 따로 듬뿍 주는 쌀국수가 일품이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추워서 온몸이 떨린다. 이곳에서는 제일 힘든 것이 몸 녹일 장소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식당이나 커피숍 등 아무 가게나 들어가서 언 몸을 녹일 수 있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난방이란 개념이 아예 없으므로 몸을 녹일 수 있는 곳은 이불속뿐이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이불속으로 들어오니 바로 여기가 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