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ㆍ라오스 나홀로 배낭여행(2024-01-03)

Ep 22 닌빈의 땀콕에서 즐기는 느긋한 하루

by 이재형

어제 아침 6시 반 차를 탄다고 밤에 일찍 잠이 깨는 바람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였다. 그 때문에 어제는 일찍 잠에 들었다. 요란한 빗소리에 잠을 깨보니 아침 9시가 다되었다. 비가 반갑다. 밖에 나가지 않고 방 안에서 뒹굴거릴 핑곗거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어제 이곳으로 오기로 정하긴 했지만, 와서 무엇을 할지는 전혀 생각해두지 않았다.


느지막이 아침 식사를 한 후 호수나 한 바퀴 산책할까 해서 나왔다. 가는 빗방울이 얼굴에 떨어진다. 방 안에서 뒹굴거리며 보내고 싶던 차에 잘 되었다. 다시 숙소로 들어왔다. 뜨끈뜨끈한 전기 매트 위에 누워있으니 기분이 최고다. 하루종일 비가 왔으면 좋겠는데, 아쉽게도 오전에만 비가 온단다.


배가 고픈데 나가기가 싫다. 어제저녁 사둔 파인애플로 점심을 때우기로 했다. 동남아에서는 모든 열대과일이 싸지만, 특히 파인애플이 가장 싼 것 같다. 어제 한 개 15.000동(약 800원)을 주고 사서 1/4을 먹고 나머지를 남겨놓았다. 우리나라에서 먹는 파인애플은 덜 익어서 그런지 좀 신맛이 나지만 여기 파인애플은 아주 달다. 파인애플을 먹을 때 제일 귀찮은 일이 파인애플을 깎는 일인데, 여기서는 그런 번거로움이 없다. 과일장사가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예쁘게 깎아서 팔기 때문에 그냥 먹기만 하면 된다.

숙소와 숙소 앞 동네

구글 지도에 이곳에서 1킬로 남짓 떨어진 곳에 버펄로 케이브라는 명소가 있다 하여 산책 삼아 가기로 했다. 땀콕 호수를 끼고 가는 길인데, 이 길은 작년에도 걸었다. 이 길을 따라 2킬로미터 정도 곧장 가면 사찰이 하나 나오는데, 사찰은 별로 볼 것도 없지만 길 양쪽 풍경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


길을 따라가다 보니 오른쪽으로 논 가운데로 난 길이 보인다. 바쁠 일이 없으니 그 길로 들어섰다. 500미터쯤 걸어 들어가니 10여 가구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의 집들은 모두 게스트 하우스와 식당 영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손님은 보이지 않는다. 마을의 모습이 마치 그림 속 풍경 같다. 아니, 그림도 이런 예쁜 마을을 그리지는 못하리라. 사람들이 도저히 찾아올 것 같지 않은 깊은 곳에 환상 같은 게스트 하우스들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을 나와 다시 큰길로 들어섰다. 얼마 가지 않아 구글 지도가 왼쪽길로 들어가라 한다. 들어가는 길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절로 감탄이 나온다. 가끔 그림들을 보면 몽환적인 느낌이 드는 상상화를 만난다. 이곳이 바로 그런 그림에서나 만날 수 있는 상상의 세상이다. 얼마 들어가지 않아 구글지도가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알려주는데, 구글 지도가 말하는 '버펄로 케이브'는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그깢 버펄로 케이브가 어디 있건 상관없다. 이곳을 찾아오면서 그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한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이곳도 가장 경치가 좋은 곳에 게스트 하우스가 자리 잡고 있다.

땀꼭 호수옆길 산책

다시 큰길로 나가 오던 길로 계속 걸었다. 땀콕에서 출발한 배들이 지나가는 수로와 만난다. 보트의 승객들은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뱃놀이를 즐긴다. 그 승객들은 아름다운 수로 속에서 스스로가 풍경이 된다. 땀콕의 절경을 즐기는 승객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가 풍경 속의 그림이 되는 것이다. 항무아 전망대에 가면 이곳 땀콕의 수로가 눈아래로 펼쳐진다. 그 위를 떠다니는 배와 승객들은 살아있는 풍경을 만드는 것이다.


계속 걸어 올라가면서 옆으로 빠지는 길이 있으면 빠짐없이 들어가 보았다. 어느 곳에나 숨겨진 비경이 있었고 , 또 그런 곳에는 어김없이 게스트 하우스가 들어서 있었다. 옆길이 보이는 곳마다 다 들어가 보았기 때문에 어디를 갔는지 다 기억을 할 수 없다. 이 글을 쓰면서 그저 생각나는 것은 모두 다 절경이었다란 것밖에 없다.

담꼭 주위의 절경과 곳곳에 숨어있는 홈스테이

거의 막다른 길이라는 생각이 들 때 제법 큰 탑이 보인다. 한자로 된 비문을 읽어 보니 죽은 사람을 기리는 탑인 것 같다. 조금 더 걸어 들어가니 넓은 부지에 크고 작은 탑들이 가득하다. 아마 공동묘지인 것 같다. 베트남은 공동묘지가 마을 가까운 곳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중남부 지역의 경우 묘지는 마치 사람들의 집처럼 생겼다. 돈 많은 사람은 큰 집을, 돈이 없는 사람은 작은 집을 묘지로 삼고 있다. 큰 묘지의 경우 집의 크기가 거의 40-50평 정도 되어 보이는 것도 있다. 그런데 여기는 집 대신에 탑으로 묘지를 대신하는 것 같다.


많이 걸었다. 돌아가기로 했다. 뉘엿뉘엿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다.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린다. 낮에는 아무 인적이 없던 길 따라 들어선 게스트 하우스와 레스토랑에 하나 둘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손님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숙소 근처까지 와 얼마나 걸었나 확인해 보았다. 2만 5천 보, 꽤 걸었다. 갑자기 고기가 먹고 싶다. 삼겹살이 먹고 싶다. 독한 술도 한 잔 하고 싶다. 숙소로 가서 가지고 다니던 옥수수 술을 꺼냈다. 식당마다 가웃 거렸지만 바비큐를 하는 집이 좀 채로 보이지 않는다. 하다못해 장작 통닭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결국 한 집에 들어가 돼지고기 꼬치를 주문했다. 45도 옥수수 술을 두어 잔 마시니 취기가 돈다.

절벽 아래 홈스테이
공동묘지
습지옆 묘지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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