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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Mar 12. 2024

베트남ㆍ라오스 나홀로 배낭여행(2024-01-14)

Ep 38 지옥 같은 여행 끝에 계획에 없던 방비엥으로

어제 술을 좀 마신 때문인지 일찍 잠이 깼다. 갑자기 밖에서 비가 퍼붓듯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렇게 세찬 비가 오면 배를 타고 나가지 못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비는 곧 그쳤다. 아직까지 어디로 갈지 정하지 못했다. 다음 목적지는 타케크로, 비엔티안에서 4시 방향에 위치하고 있다. 농키아우로 간다면 비엔티안 언저리서 1박을 하고 갈 수 있지만, 무앙쿠아를 거쳐 간다면 2~3박을 해야 한다. 결심이 섰다. 농키아우로 가자. 

오전 9시 반 농키아우로 가는 2척의 보트가 함께 출발했다. 각 보트에는 각각 20명 정도의 승객이 승선하였다. 오늘은 어제보다도 강물이 더 줄었다. 올 때는 강을 거슬러 오므로 1시간 반이 걸렸지만, 갈 때는 물결의 흐름을 따라 내려가므로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출발한 지 10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배가 어디에 부딪힌 듯 심하게 흔들린다. 강물이 줄어들어 배 바닥이 땅에 닿는 것이다. 

배가 강바닥에 얹혀 움직이지 않는다. 선장의 말에 따라 승객들은 모두 배에서 내렸다. 그리고 승객들이 배 양쪽에서 배를 밀고 내려가게 되었다. 성가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함께 탄 서양 젊은이들은 아주 신이 났다. 소리를 지르며 배 양쪽에서 물보라를 튀기며 배를 밀고 내려간다. 얼마 전에 본 캐나다 드라마 <바이킹>이 생각난다. 200미터 정도 그렇게 배를 밀고 가다가 다시 배를 탔다. 


다시 얼마만큼 가다가 선장이 이번엔 배를 강변 자갈밭에 대더니 또 내리라 한다. 승객들이 모두 내린 후 선장과 서양 젊은이 둘 해서 셋이서 배를 밀고 가고 나머지 승객들은 자갈밭을 걸어서 내려갔다. 맨발로 내렸더니 발도 아프고 걷기도 힘들다. 어릴 때 강에서 멱감던 일이 생각난다. 300미터 정도 그렇게 걸은 후 다시 배를 탔다. 얼마 안 가 다시 내리라 한다. 이번에는 500미터 이상 걸었지만 다행히 신발을 신고 내려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이젠 강폭도 넓어지고 물 깊이도 어느 정도 되는 것 같다. 보트는 속력을 내며 시원하게 달리고, 강변 양쪽과 그리고 앞쪽 저 멀리 절경이 펼쳐진다. 정신없이 경치를 감상하노라니 저 멀리 농키아우의 다리가 보이고, 다리 아래를 통과하자 곧 농키아우 선착장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리니 터미널로 가는 툭툭이 기다리고 있어 탔다. 그런데 툭툭의 승하차는 선입후출법(先入後出法)이라, 내가 제일 먼저 탔기에 제일 나중에 내렸다. 그 때문에 루앙프라방행 차표 사는 줄 맨 끝에 설 수밖에 없었다. 

제일 마지막으로 차표를 사서 차를 타려고 했다. 차는 밴인데, 차에 오르려고 해도 빈자리가 없다. 운전수가 작은 방석을 하나 가져오더니, 고정의자와  승하차문 옆의 보조의자 사이에 방석을 깔더니 거기에 앉으란다. 미치겠다. 왼쪽 자리엔 덩치 큰 남자가 아들을 데리고 앉아있다. 차가 출발하자 남자는 졸기 시작하며 내게 기댄다. 등받이도 없는 보조의자에 앉은 나는 이 남자에게 밀려 오른쪽으로 몸이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오른쪽에는 여자가 앉아 나보고 밀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옆자리의 덩치 큰 남자가 계속 졸면서 나를 밀어붙이니 나도 여자 쪽으로 밀리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태로 악몽 같은 3시간을 달려 루앙프라방에 도착했다.


루앙프라방 터미널에서 타켁으로 바로 가는 차가 없어 일단 비엔티안으로 가는 차표를 끊었다. 슬리핑 버스인 줄 알았는데 또 밴이다. 오후 4시 차인데, 비엔티안까지 8시간이 걸리니까 밤 12시쯤이면 도착할 것이다. 직원에게 버스 승강장을 물으니 야외에 있는 대합석에 앉아있으면 알려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출발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소식이 없다. 혹시 해서 승강장을 돌아보니 이미 뒤쪽에 차가 들어와 있고 사람들이 타고 있다. 얼른 허둥지둥 달려갔다.


차 안을 보니 이미 빈자리가 하나도 없다. 황당해서  차밖에 서 있으니 운전사가 나와 또 작은 보조의자를 밀어 넣더니 거기에 앉으라 한다. 딱 봉고만 한 차인데 운전사 포함 20명이 탔다. 내 자리는 또 등받이도 없는 보조의자이다. 이걸 타고 8시간을 달려야 한다. 화가 치밀었지만 말도 통하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다. 기차를 탈 걸 그랬다.

차가 출발했다. 이번엔 루앙프라방에 올 때보다 사정이 더 나빠졌다. 오른쪽 자리에 아주 뚱뚱한 라오스 여자가 앉았다. 이 여자의 몸통이 내가 앉은 보조의자를 반쯤 침범했다. 왼쪽으로는 덩치 큰 서양 젊은이 둘이 앉아 더 이상 밀고 들어갈 수가 없다. 여자에게 밀려 의자 모서리에 앉을 수밖에 없는데, 그곳엔 철제 고정장치가 달려있어 엉덩이를 찌른다. 의자 등받이가 없으니 몸의 균형을 잡기가 힘들다. 최악이다. 정말 지옥 같은 여행이다.


이런 상태로 몇 시간을 달리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차가 출발한 지 6시간이 다 되어간다. 곧 방비엥에 도착한다. 도저히 이 상태로 2시간이나 더 차를 타고 비엔티안까지 갈 수 없다. 그리고 비엔티엔에 도착한들 바로 타켁으로 갈 수는 없고 터미널 부근에서 숙소를 잡아 잘 수밖에 없다. 그럴 바엔 방비엥에서 내리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비엥에 내리니 밤 10시가 조금 지났다. 숙소부터 구하여야 한다. 이왕 여기 내린 김에 한 이틀 정도 있다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야시장 쪽으로 오니 제법 규모가 큰 홈스테이가 보인다. 숙박료를 물으니 일박에 25만 낍 이라 한다. 2박에 40만 낍으로 깎았다. 


야시장이 파장을 맞이하고 있다. 숙소 바로 앞에 큰 바비큐 노점이 있다. 꼬치를 몇 개 사서 비어 라오와 함께 저녁을 대신했다. 샤워를 하고 나니 좀 살만하다. 정말 지옥 같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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