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7 다시 반나 마을을 찾아서
선선한 강바람을 맞으며 페북도 하고, 유튜브도 보다 보니까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오후 3시, 뭘 할까? 그래 걷자. 어제 못 간 반나 빌리지 다시 가보자!!
어제 갔던 길을 다시 걸었다. 가기 전에 구글맵 위성사진을 통해 가는 길을 확실히 알았다. 가는 도중에는 데이터 통신이 단절되어 길을 확인할 수 없다. 오전에 빗방울이 조금 떨어진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황토 먼지가 훨씬 적어졌다. 어제 왔다가 돌아선 갈림길까지 왔다. 확신을 갖고 큰길로 계속 걸었다. 길 앞과 왼쪽으로 큰 산이 나오면서 경치가 점점 아름다워진다. 오른쪽으로 저 멀리 다랭이 논이 보이고, 산 사이에 완만한 경사의 넓은 터가 나온다. 저곳이 반나 빌리지라 짐작된다.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다.
한참을 더 가니 큰길 오른쪽으로 반나 빌리지로 들어가는 길이라 생각되는 곳이 나온다. 그런데 그 길을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도랑물이 막고 있다. 옆으로 돌아가는 좁은 길이 보여 들어갔더니 완전히 정글이다. 도저히 내가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다리를 걷고 물 흐르는 길을 건너갈까 생각했으나 건너간다고 해서 어떤 길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 더 이상 미련을 갖지 말고 돌아가자! 오는 도중 본 아름다운 풍경만으로도 여기까지 걸어온 충분한 보람이 있었다.
돌아 서려다가 큰길로 계속 가면 어디가 나올까 궁금해진다. 큰길을 따라 계속 갔다. 큰길은 지금 새로이 건설 중인 길인 것 같다. 길이 점점 반 진창길로 바뀐다. 그 길을 따라 한 참을 가니 오른쪽으로 아름다운 초지와 논들이 보인다. 높은 산들에 둘러싸여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마치 판타지 영화에 나올 것 같은 풍경이다. 반나 빌리지 같은데 집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10여 호 정도밖에 되지 않은 작은 마을이라 민가가 흩어져 있어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걷다 보면 문득 불안한 생각도 든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시골길을 혼자서 걷고 있다. 만약 사고가 나거나 혹은 무슨 불미스러운 일을 만나게 되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내가 이곳에 왔다는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5시가 넘었다. 숙소까진 5킬로가 넘는다. 서둘러야 한다. 빠른 걸음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숙소를 2킬로 정도 남겨두고 날은 완전히 깜깜해진다. 하늘엔 초승달이 보인다. 길은 완전 깜깜해져 발아래도 보이지 않는다. 길이 험하므로 그냥 걷다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 십상이다. 낭패다. 핸드폰 플래시 앱을 켰다. 아쉬운 대로 발아래는 보인다. 넘어지지 않으려 조심조심 걷다 보니 식은땀이 난다. 운 좋게 별다른 사고 없이 숙소에 도착하였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오늘 3만 보를 넘게 걸었다.
어제는 돼지 바비큐였지만, 오늘은 닭 바비큐로 저녁 식사를 하였다. 비어 라오가 너무 맛있다. 베트남 박하시장에서 산 옥수수 술도 처리하였다. 오늘은 그동안 짐이 되었던 두 가지를 모두 처리하여 속이 시원하다. 하나는 1킬로가 넘었던 말린 열대과일, 또 하나는 옥수수 술, 그동안 둘 다 상당히 짐이 되었는데, 이제 해방되었다. 이제 남은 짐은 하나다. 베트남 사파에서 산 도자기 술병에 든 술. 내일부터 빨리 이 술을 처치하도록 해야겠다.
세계에는 제조업 기반을 거의 갖추고 있지 못한 국가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나라일지라도 거의 빠짐없이 갖추고 있는 제조업이 있으니, 바로 술 제조업이다. 생산 시설을 쉽게 갖출 수 있고, 각 나라마다 독특한 술이 있으며, 수요가 보장되어 있고, 국고수입을 올리기 쉬운 사업이라 그런 것 같다.
동남아에서는 더운 날씨 탓으로 맥주 수요가 많다. 그래서 세계 각국의 맥주가 수입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국 메이커 제품도 있다. 태국은 싱하 맥주와 레오 맥주, 베트남은 하노이 맥주, 사이공 맥주, 사파 맥주, 호이반 맥주, 호찌민 맥주 등 종류도 적지 않다. 라오스에서는 비어 라오(Beer Lao)가 거의 국민 맥주로서 사랑을 받고 있다.
나는 이들 동남아 맥주 가운데 비어 리오를 좋아한다. 먼저 이름부터가 싱하 맥주, 하노이 맥주라 하는 것보다 "비어 라오" 얼마나 세련되었나. 그리고 운율도 괜찮다. 상표에서 오는 인상이 그만큼 강렬하다. 비어 라오가 정말 다른 동남아 맥주보다 더 맛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매일 땀을 많이 흘려 저녁마다 큰 병 한 병씩이다. 하루종일 땀을 흘린 후 샤워 후에 마시는 한 잔의 맥주는 정말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일상의 큰 행복이다.
베트남도 그렇지만 라오스도 맥주값이 무척 싸다. 가게에서 사면 큰 병은 2만 낍(1,300백 원), 작은 병은 1.5만 낍(천 원) 정도 받는 것 같다. 음식점에 가더라도 여기에 5,000낍(350원) 정도 더 얹어 받는 것 같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부담 없이 맥주를 즐길 수 있다. 나는 라오스에 여행 오면 언제나 비어 라오의 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