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39 방비엥 거리 산책
라오스에서는 항상 닭 우는 소리에 잠이 깬다. 어제 차에서 그렇게 고생을 했으니 오늘은 느긋이 좀 쉬어야겠다. 아침 식사 후 빨래거리를 맡긴 후 침대에 누워 시간을 보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빨래 처리가 보통일이 아니다. 선진국에 가서 호텔에서 빨래 서비스를 이용하면 양말 몇 켤레에 속옷, 티셔츠 두어 벌이면 금방 몇만 원, 아니 십만 원이 훌쩍 넘는다.
동남아에서는 그런 점이 좋다. 보통 1킬로 그램에 3만 낍, 베트남은 3만 동을 받는다. 무게도 상당히 후해, 1킬로를 웬만큼 초과하더라도 1킬로 요금만 받는다. 좀 재촉하면 두세 시간 정도에 깨끗이 빨아 말려온다.
한낮에는 햇빛이 너무 강하고 덥다. 그래서 길에 걸어 다니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오후 2시 반쯤 숙소를 나왔다. 블루라군 등 명소는 작년에 웬만큼 다녀왔기 때문에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방비엥 시가지를 걷다가 뒤쪽에 있는 강으로 갔다. 이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액티비티를 즐기고 있다. 카약, 롱테일 보트 등을 타며 모험을 즐기면서 더위도 피하고 있다.
특별히 하고 싶은 것이 없기 때문에 이쪽저쪽 기웃거리며 거리 풍경을 즐긴다. 어느 대형 리조트 앞을 지나가는데, 버스가 서면서 우리나라 단체관광객들이 내린다. 오랜만에 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다. 여행을 떠나온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지만 그동안 우리나라 사람은 세 번 정도 보았을 뿐이다. 말을 나눈 적은 한 번밖에 없고.
코로나 이전에는 이곳이 한국 관광객들로 넘쳐났다고 한다. 그러다가 코로나로 한국인 여행은 거의 중단되어 일 년 전 이곳에 왔을 때도 한국인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데 오늘은 한국 단체관광객들이 상당히 눈에 뜨인다.
꽤 걸었다. 강변 식당 근처에 있는 시멘트 제방에 앉아 강의 풍경을 내려다본다. 이렇게 강을 오가는 배들을 보며 멍 때리고 앉아있으면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시원한 강바람에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싫다.
햇빛이 약해지자 강변 식당으로 사람들이 몰려나온다. 라오스는 어딜 가나 어두워지면서 거리가 활기를 띤다. 지금 묵고 있는 숙소는 야시장 한가운데 있다. 숙소로 돌아오니 상인들이 분주히 장사 준비를 하고 있다. 나뭇잎으로 싼 과자 같은 것이 보인다. 3개 1만 낍. 먹어 보니 코코넛을 넣은 풀빵으로 아주 맛있다. 더 먹고 싶었으나 맛있는 저녁을 먹기 위해 참았다.
야시장이 서기 시작하니까 사람들이 몰려나온다. 여기저기서 한국말이 들려온다. 관광객 중 2/3는 한국사람인 것 같다. 작년에 왔을 땐 손님은 거의 없고 상인들만 쓸쓸히 난장을 열어놓고 파리를 날리고 있어서 안쓰러웠는데, 이제 이렇게 관광객들이 북적대기 시작하니 보는 나도 마음이 가볍다.
숙소에서 잠시 쉬다가 완전히 어두워지자 식사를 하러 나왔다. 야시장이 시끌시끌하며, 사람들로 넘쳐난다. 거의가 한국사람이다. 단체여행 온 나이 든 사람들로부터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젊은이들까지 연령 계층도 다양하다.
숙소 바로 앞에 바비큐를 주메뉴로 하는 큰 노점이 있다. 어제 이곳에서 돼지고기 꼬치를 먹었다. 또 이 집에서 먹고 싶다. 그러나 참아야 한다. 여기서 바비큐를 먹으면 도저히 술의 유혹을 벗어날 수 없다. 요 며칠 계속 술을 마셨으니 오늘 하루만이라도 참아야 한다.
닭꼬치 3개, 대나무 발로 감싼 밥, 잘라둔 망고 한 사발을 사들고 숙소로 들어왔다. 거창한 저녁 식사였다. 술은 끝까지 참았다.
베트남에서 라오스로 넘어오면, 라오스가 베트남에 비해 현저하게 낙후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도로만 하더라도 베트남은 웬만한 도로는 포장이 잘 되어있는데 비해 라오스는 국가의 간선도로조차도 엉망이다. 이러한 인프라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 시스템도 많이 낙후되어 있는 것 같다.
베트남이나 라오스 모두 이제는 세계적으로 희귀해진 공산국가이다. 그러니 여행을 해보면 우리가 전통적으로 생각해 왔던 "공산주의"는 전혀 느낄 수 없다. 공산주의가 시장경제와 가장 차이를 보이는 것은 경제에 있어 국가의 기능, 그리고 사유재산의 인정 여부일 것이다. 그런데 베트남에서도 그런 느낌을 가졌지만 특히 라오스에서는 더욱더 과연 정부(국가)가 존재하는가 하는 회의가 든다. 국가가 해결해야 하는 기능들이 거의 방치되어 있는 느낌이 든다.
베트남도 그렇지만 라오스도 모든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 자기의 살 길을 찾아 각개약진하는 느낌이다. 거기에는 그 어떤 국가의 기능도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시장경제에서 조차 국가의 기능이 중요하다.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기본적 시스템이나 사회자본 부문과 관련하여 어차피 많은 부분이 공공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오스에는 "규제자"로서의 정부의 역할 외에 조정자 및 촉진자로서의 정부 역할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국가가 조금만 신경 쓴다면 개선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엿보이지만, 정부는 그런 것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2020년 현재 라오스의 1인당 GDP는 2,625불로서 캄보디아(1,521불)에 비해서는 50% 이상 높으나 베트남(3,521불)의 2/3, 태국(7,190불)의 1/3에 불과하다. 라오스는 인구나 지리적인 면에서 경제성장에 불리한 조건을 안고 있다. 첫 번째가 내륙국가로서 항구를 갖고 있지 못하다. 돌째로 넓은 국토에 비해 인구가 적다. 국토면적은 우리의 3배에 이르지만, 인구는 우리의 1/7에 불과하다, 이렇기 때문에 외국자본을 유인할 매력이 현저히 낮다.
아시다시피 중국 및 동남아 국가의 경제발전에 있어서 외국자본의 기여는 현저하다. 그들 외국자본은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호스트 국가의 기술발전에 기여한다. 그런데, 라오스는 적은 인구로 인해 국내시장을 노리는 외국지본의 흥미를 끌지 못하며, 항구를 갖지 못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과도한 물류비로 인해 제조기지로서의 매력도 크게 떨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태생적 불리함을 감안하더라도 니라를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는 적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데, 정부가 과연 그런 의지와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