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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달랏: 라비앙산과 란푸억 사원

(2024-11-16a) 배낭 하나 메고 또다시 동남아로

by 이재형

다음은 라비앙산이다. 오토바이로 가는데 길이 무척 어렵다. 가다가 보면 골목과 같은 아주 좁은 비포장길이 나오기도 하고, 산길과 같은 아주 좁은 길도 나온다. 이런 길이 연속되다가 보니 나중에 돌아올 때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된다. 아주 험한 비포장길을 오토바이로 가다 보면 잘못하면 넘어진다. 아주 고전을 하면서 라비앙산에 도착했다.


라비앙산은 호아손 국립공원에서 20킬로 정도 떨어져 있는 달랏의 주산으로서, 이곳 정상에 오르면 달랏 일대가 발아래 보인다고 한다. 랑비앙산은 옹산(翁山)과 바산(婆山)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이 산에는 베트남판 “로미오와 줄리엣”의 전설이 숨어있다.


흐비앙이라는 소녀가 산에서 늑대를 만나 위기에 빠졌을 대 끄랑이라는 총각이 나타나 그녀를 구해주었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부족이 다른 두 사람은 결혼이 불가능하였다. 그래서 두 사람은 함께 산속으로 사랑의 도피행을 하여 함께 살았다. 흐비앙이 병이 나자 끄랑은 약을 구하기 위해 마을로 숨어들었다고 죽임을 당한다. 그 소식을 들은 흐비앙도 남편의 뒤를 따랐다. 이들의 죽음을 계기로 사람들은 후회하여 부족 간 화합하고 서로 결혼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끄랑과 흐비앙을 마을을 지키는 두 봉우리에 묻었는데, 끄랑을 묻은 산을 옹산(翁山), 흐비앙을 묻은 산을 바산(婆山)으로 불렀으며, 두 산을 합하여 끄랑과 흐비앙의 이름을 따서 “랑비앙” 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두 젊은 부부가 묻힌 산을 “할아버지 산”(옹산)과 “할머니 산”이라 이름 붙인 것이 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든다. 낭랑산(郞娘)으로 했으면 아주 어룰렸을텐데...


오토바이에 완전히 익숙해지는 느낌이다. 작년에 비해 훨씬 유연해진 것 같다. 라비앙산 매표소에 도착했다. 직원이 전망대까지 걸어 갈지 아니면 지프를 타고 갈지 물어본다. 걸어가면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물어보니 6킬로라 한다. 도저히 걸어서 올라갈 거리가 아니다. 정상까지 지프차 왕복 가격은 1인당 12만 동, 6명이 차야 출발한다고 한다. 전주에서 왔다는 젊은 부부가 대기하고 있고, 조금 있다가 제주도에서 왔다는 초로의 부부가 합류한다. 그런데 기다려도 나머지 한 사람이 차지 않는다. 할 수 없어 내가 20만 동을 내기로 하고, 각 부부가 2만 동씩을 내어 5명이서 가기로 했다.


전망대가 있는 정상에 올라왔다. 고도계를 확인하니 1950미터라 한다. 한라산 높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높다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곳에는 전망대와 함께 작은 공원이 마련되어 있다. 공원은 상당히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지만, 내 취향은 아니다. 어린이나 중고등학교 여자아이들에게 딱 어울릴 듯하다. 공원보다는 산 아래에 펼쳐져 있는 풍경이 훨씬 좋다. 숲과 함께 농토도 많이 보이는데, 예상외로 비닐하우스가 많이 보인다. 베트남에서 비닐하우스 농법을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두 개가 아니라 수십 개가 밀집해 있는 곳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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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린푸억 사원(靈福寺)이다. 이곳은 색유리와 타일 조각으로 만들어진 특이한 사원이다. 이 사원은 49미터의 용 조각이 있는데, 이는 모두 유리병으로 만들어졌다. 이 사원은 1952년에 완성되어 100년도 안 되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독특한 디자인으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또 사원 옆에는 약 40미터의 높이의 7층 탑이 있는데, 이는 베트남에서 가장 높은 종탑이라고 한다. 그리고 종탑의 가운데에는 베트남에서 가장 무거운 종이 놓여 있다.


주건물과 부속탑은 내부 계단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건물 모습도 특이하다. 둥글 둥굴 한 모습이 어딘가 스페인의 유명 건축가 가우디의 작품과 닮은 듯한 느낌도 든다. 주법당에는 사천왕과 비슷해 보이는 상이 있으며, 부속탑의 복도에는 황금빛의 보살상이 줄지어 서있다. 또 건물 뒤편에는 삼장법사 일행의 조각도 보인다. 특정 종교의 사원이라기보다는 기복적 목적의 사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약간 신비로운 느낌이 도는 건물로서, 한 번 구경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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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곧 저물 것 같아 숙소로 돌어간다. 오토바이 운전에 자신이 붙으니 기분이 업된다. 그러자 마음 한 구석에서 이번에도 다시 한번 라오스의 타켁 루프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유혹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이 유혹에 넘어가면 안 된다. 그런데 이성적으로는 그러면서도 아무래도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저녁 식사를 위해 숙소 근처의 작은 밥집으로 갔다. 내가 자리에 앉자 주인여자가 초등학교 2~3학년쯤 되어 보이는 꼬맹이 아들의 등을 자꾸 떠민다. 그러자 아이가 내게 와서는 "치킨?"이라고 묻는다. 이 집엔 메뉴라고는 닭고기 볶은밥밖에 없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주인여자는 대견한 듯한 표정을 짓는다. 아들을 학교에 보냈더니 엄마도 모르는 영어로 외국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 아주 뿌듯한 모양이다. 큰 구운 닭다리 한 개를 얹은 볶은밥이 나왔다. 식사를 끝내고 계산을 하겠다는 신호를 보내자, 다시 아이가 엄마 대신에 와서는 "피프티(사우전드)"라고 한다. 엄마는 더욱 뿌듯해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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