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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메콩 델타의 중심도시 껀터로

(2024-11-19) 배낭 하나 메고 또다시 동남아로

by 이재형

숙소 사장은 오늘 오전 6시에 이곳으로 차가 온다고 했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짐을 꾸렸다. 5시가 조금 넘어 숙소 앞 간이식당에 가니 막 문을 열고 있었다. 손바닥만 한 가게지만 주인아주머니는 향을 피우는 등 가게 오픈 준비에 분주하였다. 아마 장사가 잘 되기를 비는 의식 같았다. 얼큰한 돼지 국물의 쌀국수를 한 그릇 먹으니 속이 풀린다.


6시가 좀 넘어 차가 왔다. 20인승 밴이다. 이걸 타고 어떻게 12시간이나 이동하나, 고생 꽤나 하겠다고 각오하고 있는데, 알고 보니 픽업 차량이다. 밴은 여러 사람을 더 픽업한 후 버스 터미널로 데려다주었다. 터미널 매표소에서 예약표를 찍은 사진을 보여주니 승차권을 발급해 준다. 달랏에서 껀터까지 딱 500킬로, 중간 휴게시간을 포함하면 12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버스 터미널이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다. 건설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베트남의 많은 도시에서 버스 터미널이 제대로 설치되지 못하였고, 있다고 하더라도 시설이 형편없었다. 터미널 안쪽에는 여러 대의 버스가 홈에 정차되어 있다. 모두 주황색의 깔끔한 버스이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베트남의 시외버스들은 대부분 낡고 볼품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깨끗하고 산뜻하다. 베트남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해 가는 것 같다. 이런 기세라면 태국을 따라잡을 날도 멀지 않을 것 같다. 저개발 국가들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면서도 기쁜 마음이 든다.


베트남의 시외버스는 거의가 슬리핑버스이다. 모두 1, 2층 두 층으로 되어있다. 베트남 슬리핑 버스는 대개 3가지 유형인 것 같다.

첫 번째는 표준형으로서, 3열로 눕는 의자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좌석은 완전히 개방되어 있다.

두 번째는 프리미엄 버스로서, 좌석배치는 표준형과 동일하지만, 각 좌석은 커튼으로 격리되어 어느 정도 프라이버시가 보장된다. 각 좌석 앞에는 모니터가 있어 동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즐길 수도 있다.

세 번째는 호화 캐빈형 버스로서, 두 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좌석의 폭이 넉넉하게 여유 있다. 각 좌석은 캐빈으로 완전히 격리되어 있다. 또한 좌석에는 전동안마기 기능까지 갖추어져 있다.

요금은 고급일수록 비싸다. 지금 내가 타고 가는 버스는 두 번째 프리미엄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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껀터행 슬리핑 버스와 내부

슬리핑 버스는 신발을 벗고 탄다. 버스에 오르면 비닐봉지를 나누어 주는데, 거기에 신발을 넣어 각자 간수한다. 보통 좌석의 발 쪽에 신발봉투를 둘 공간이 있다. 그러면 중간에 휴게소에 들르거나 하면 다시 신발을 신고 벗고 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을까? 그런 걱정 조금도 필요 없다. 버스는 항상 슬리퍼 상자를 싣고 다닌다. 휴게소에 도착하면 운전 보조원이 버스 문을 열고 문 옆에 슬리퍼 박스를 갖다 놓는다. 승객들은 그 속에 든 슬리퍼를 신고 휴게소에 가면 된다.


출발한 지 3시간이 지나 첫 번째 휴게소에 도착하였다. 버스에서 내리니 이전에 비해 슬리퍼가 좋아졌다. 이전엔 검은 고무로 만든 조악한 것이어서 신고 걸어 다니기가 불편했는데, 지금은 제법 괜찮은 슬리퍼이다. 그리고 이전엔 버스가 슬리퍼를 싣고 다녔는데, 지금은 아예 휴게소에서 정차장마다 슬리퍼 박스를 미리 갖다 놓았다. 이런 것만 해도 큰 발전이다.


휴게소도 깨끗하고 좋았다. 규모는 우리나라 휴게소에 비해 작았지만 운영 시스템은 우리와 비슷한 것 같다. 화장실도 넓고 깨끗했다. 몇 년 사이에 엄청 많이 바뀐 것 같다. 약간의 군것질거리를 샀다. 난 슬리핑버스 여행을 좋아한다. 자리만 편하다면 10시간, 20시간 여행도 괜찮다.


다시 버스는 달린다. 차창으로 보이는 건물들도 확실히 이전보다 나아진 것 같다. 첫 휴게소를 지난 지 2시간쯤 지난 12시경에 또 휴게소에 들른다. 이 휴게소도 괜찮다. 그런데 휴게소에 설 때마다 어느 몇 분 정도 정차하는지 알려주지 않아 식사를 하기 어렵다.

휴게소 버스 옆에 놓인 슬리퍼 상자
휴게소 풍경
버스를 기다리는 슬리퍼 박스

버스는 다시 달린다. 버스는 어느새 호찌민시로 들어왔다. 휴게소를 들린 후 4시간이 지났지만 대도시 안이라 들릴 휴게소가 없다. 호찌민시에 들어온 지 1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빠져나가질 못했다. 거의 5시가 되어 버스는 호찌민시를 겨우 빠져나왔고, 주유소에 들른 덕택에 화장실에 갈 수가 있었다.


버스를 탄지 10시간이 지났지만 자리가 크게 배기거나 하질 않는다. 우리나라 고속버스는 앉아서 가기 때문에 두 시간만 지나면 엉덩이가 아프다. 그렇지만 이곳 슬리핑버스는 좌석은 우리보다 못하지만, 누워서 가기 때문에 체중이 고루 퍼지기 때문에 엉덩이가 아프거나 하진 않는다.


호찌민시를 지나면서부터는 산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아주 평평한 넓은 지역이 끝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아마 건물이 없었다면 지평선이 보일 정도일 것이다. 메콩강 하류 유역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몇 시간을 더 달려 껀터시에 도착하였다. 시간을 보니 오후 7시 반, 총 12시간 반 동안 달려온 셈이다.

휴게소 화장실
슬리핑 버스 내부

껀터시는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메콩 델타의 중심도시로서 인구면이나 경제면에서 베트남에서 하노이, 호찌민, 하이퐁 다음으로 네 번째 도시이다. 인구는 160만 명으로 110만의 다낭에 비해 훨씬 많다.


오늘 숙소는 일부러 예약을 하지 않았다. 껀터의 중심지는 닌끼에우 부두인데, 앱을 통해 숙소를 예약하면 중심지와 떨어져서 불편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버스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닌끼에우 부두 부근으로 왔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여긴 숙박을 할 장소가 아니다. 이 일대가 완전 유흥가로서 바를 비롯한 각종 유흥업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가 귀를 찌른다.


좀 외곽으로 나가 숙소를 잡아야겠다. 유흥가를 빠져나오니 숙박업소가 잘 보이지 않는다. 걷고 또 걸어 겨우 적당한 숙소를 하나 발견하였다. 이곳에선 3일을 묵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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