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0) 배낭 하나 메고 또다시 동남아로
어제 오랜 버스여행의 피로도 풀 겸 오전에는 침대에서 뒹굴거렸다. 이곳 껀터의 주요 명소를 찾아보니 닌키에우 부두를 중심으로 하여 대부분이 그 근처에 몰려있다. 닌키에우 부두까지는 2킬로 남짓인데, 가는 도중에 박물관이 있어 걸어가며 들리면 될 것 같다.
여행을 떠나 온 이후 아직 빨래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아침을 먹으며 나가는 길에 호텔에 빨래를 맡기면 되냐고 물으니, 옆에 세탁소가 있으니 그리로 가라 한다. 숙소 앞은 폭 3미터 정도의 좁은 골목길인데, 오토바이들이 얼마나 많이, 그리고 빨리 달리는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숙소에서 골목길로 조금 들어가니 코인 론드리 같은 것이 보인다. 이런, 내가 직접 세탁을 해야 하나... 아침을 먹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돈이 간당간당한다. 13일 6백만 동(약 32만 원)을 환전했는데, 주머니를 확인하니 60만 동 정도가 남은 것 같다. 7일 동안 30만 원 조금 못 쓴 정도이다. 모레 베트남을 떠날 예정이니까 그때까지 버틸 것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다. 100만 동 정도를 더 환전하면 충분할 것 같은데, 남아도 돈을 처리하기가 귀찮다. 결국 50만 동을 충전하고, 트레블 월렛에 남아있는 30만 동을 합해 80만 동만 더 인출하기로 했다.
오후 1시가 넘어 숙소를 나왔다. 역시 덥다. 달랏보다 500킬로 남쪽인 데다 해발 몇 미터 되지 않는 평지이다 보니 열대의 나라의 더위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조금 걸었는데도 땀이 줄줄 흐른다.
여기도 공사를 한다고 인도를 다 파헤쳐놓았다. 차도 보행, 도로 건너기 정말 짜증 난다. 여긴 그래도 가끔씩은 신호등이 있어 다행이다. 달랏과 달리 여기 사람들은 그래도 신호는 잘 지키는 것 같다. 도로를 건너기가 한결 수월하다. 보행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동남아에서 "거리를 걷는 것은 개와 외국인뿐"이라고 하는데, 그 말이 실감된다.
길가에 주스 행상이 보인다. 파인애플 주스 큰 것을 하나 주문해 마시면서 걷는데, 전부 얼음이고 막상 주스의 양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남은 얼음을 그냥 버리기 아깝다. 근처의 가게에서 콜라 작은 병을 하나 사 컵에 따르니 컵이 가득 찬다.
얼음에 재운 콜라를 마시면서 먼저 찾은 곳은 껀터 군사박물관이다. 박물관 건물 양쪽에는 대형 대포, 탱크, 항공기 등을 비롯한 이동식 중무기가 전시되어 있었다. 생각 외로 베트남군 및 베트콩들도 상당히 중무장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설명서를 잘 읽어보니 모두 미군으로부터 노획한 것들이었다. 결국 그들은 미군으로부터 빼앗은 무기로 미군과 싸운 것이었다.
전시관으로 들어가니 먼저 등신대 크기의 인민군 상이 보이고 그 주위로 전시물이 보인다. 전시관에 관람객은 나 혼자뿐이다. 중앙전시관에서 연결된 전시실로 들어갔다. 이곳 껀터 지역은 베트남 전쟁에서의 미군과의 전쟁 외에도 대프랑스 독립전쟁, 그리고 그 이전의 내전 등 수많은 전쟁이 벌어졌던 듯하다. 그러나 전시관의 대부분은 미군과의 전쟁을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다.
첫 전시실에는 베트남 전쟁에서의 전쟁영웅들의 사진을 전시해두고 있다. 베트남 전쟁은 최전선에서만 전투가 벌어지는 일반 전쟁과 달리, 베트남 남부 전역 모든 곳에서 다발적으로 벌어졌다. 그래서 수많은 크고 작은 전투가 벌어졌으며, 그랬기에 전쟁 영웅도 그만큼 많을 것이다. 전쟁영웅 사진은 주요 군지휘관, 일반 전쟁영웅, 정치지도자의 세 그룹으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일반 전쟁영웅으로서 젊은 여자들이 많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대개 20대 정도의 세련된 얼굴을 한 여성들이었다.
전시관에 전등이 켜져있지 않아 관람하기가 불편하다. 몇 개 전시실을 관람하고 있자니, 박물관 직원인듯한 제복을 입은 여성이 들어와 조명을 켜준다. 아마 관람객이 없어 조명을 꺼두었던 것 같다. "ㅁ"자 형태의 3층으로 된 전시관 건물은 꽤 크다. 나 혼자만을 위해 전시관의 조명이 모두 켜진다.
전시물의 대부분은 사진이며, 그 외에 조금의 조형물도 있었다. 베트남 전쟁에서는 베트콩, 즉 남쪽의 베트남 공산당의 역할이 컸다. 특히 남쪽에서 이루어진 전투는 거의가 베트콩에 의해 치러진 것으로 알고 있다. 베트콩들은 월맹, 즉 북베트남으로부터 많은 장비와 무기를 지원받았다. 이들 물자들은 라오스와 캄보디아에 걸쳐있는 소위 "호찌민 루트"를 통해 공급되었다.
그런데 한 전시실에서 "해상 호찌민 루트"를 소개하고 있다. 베트남 동쪽바다(베트남에서는 이를 '동해'라 부른다)를 통해 북에서 남으로 내려온 후 메콩강을 거슬러 올라와 물자를 전달하였다는 것이다.
"아니, 바다는 미국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보통 유원지에서 볼 수 있는 놀이용 보트보다 조금 큰 정도의 배로 물자를 운송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작은 배였기 때문에 어선들과 구분이 되지 않았고, 미군의 단속도 사실상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실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고작해야 2~3명이 탈 수 있는 작은 배였다. 이런 배로 어선들과 섞여 물자를 운반한 것 같다.
2년 전에 호찌민시에 있는 전쟁박물관에 간 적이 있었다. 보통 전쟁박물관이라면 어느 나라나 국뽕적인 요소가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호찌민 전쟁박물관은 그렇지 않았다. 미국의 침략으로 인해 일어난 전쟁이 얼마나 정의롭지 못한 전쟁이었으며, 베트남 국민들은 전쟁 기간 중, 그리고 전쟁 후 얼마나 고통을 겼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에 비하면 껀터 군사박물관은 베트남 인민들의 위대한 항쟁을 강조하고 있어 국뽕적인 면을 숨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