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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섬여행: 욕지도와 소매물도 D3

(2020.03.24) 거제 동백숲과 소매물도 등대섬 가는 길

by 이재형

어제저녁 다찌에서 먹은 음식이 너무 짜서, 밤에 몇 번이나 깨서 물을 마셨다. 자주 깨다 보니 잠을 아주 설쳤다.


오늘은 소매물도로 가는 날이다. 통영 항에서 오전 6시 50분에 소매물도로 출발하는 배가 있다. 너무 일러서, 다른 편을 찾아보니 거제 저구항에서 8시 반에 출발하는 배가 있다. 이곳 통영 호텔에서 저구항까지는 약 1시간 거리. 그래도 배에서 찬 새벽바람을 맞는 것보단 거제도로 이동해 8시 반에 출발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짐을 챙겨 거제로 이동했다. 거제도는 말이 섬이지 육지와 다름없으며, 넓이도 엄청 넓다. 거제 섬에 들어가서도 저구항까지 이동하는데 40분가량 걸렸다.


길 양쪽 벚꽃 가로수가 꽃을 활짝 피웠다. 마치 벚꽃 터널을 통과하는 기분이다. 거제도엔 유난히 벚꽃 가로수길이 많은 것 같다. 거제대교를 건넌 후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서 40분 정도 달리니 저구항이 나온다. 배 시간까지는 15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이상하다. 멀리서 보니 승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여객터미널에 도착하니 매표소가 잠겨있다. 코로나 19 때문에 8:30에 출발하는 배는 당분간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 미리 인터넷에 그 사실을 알려야지... 다음 배는 11시에 출발이다. 2시간 반을 어디선가 보내야 한다.


지도를 보니 근처에 거제 해금강이 있어 그리로 가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해금강엔 30년 전쯤인가 아이들이 어릴 때 한번 와 본 적이 있었다. 해금강 유람선 터미널로 가니, 거기도 폐쇄되어 있다. 유람선을 운행하지 않은 모양이다. 어쩔 수 없이 그 주위를 산책하였다. 유람선 매표소에서 선착장으로 가는 길이 나무 발판과 계단으로 잘 정비되어 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주위가 아주 넓은 동백나무 숲이다. 동백나무 숲을 계단길이 통과한다. 큰 동백나무들이 울창하게 서 있고, 꽃들이 화려하게 피어있다. 동백나무 한 두 그루 씩은 자주 보지만, 이렇게 울창한 숲을 이룬 것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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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동백숲

다시 저구항으로 돌아가려는데 차에 휘발유 경고등이 켜진다. 내비로 검색을 해 보니, 시골이라 주유소가 띄엄띄엄 표시되어 있다. 가장 가까운 주유소를 찾아가니 폐업, 두 번째 주유소도 폐업, 세 번 째도 또 폐업. 거의 15킬로나 달려 주유를 하고, 배 출발 시간에 겨우 맞추어 저구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구항에서 출발한 배는 매물도의 2개의 선착장을 거친 후 마지막으로 소매물도에 도착한다. 잠이 부족하여 선실 의자에 기대어 비몽사몽 하는 차에 소매물도에 도착했다.


소매물도는 아주 작은 섬이다. 면적이 2.5평방 킬로미터 정도이다. 배가 소매물도 선착장에 가까워지면서 섬을 바라보니 일반 민가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선착장 윗 편 마을의 집들은 매점이나 펜션 등의 업소가 대부분으로 2-30호쯤 되어 보인다. 선착장에서 내리면 바로 가파른 길이 시작된다. 오래전에 가본 울릉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매물도에는 관광객이 많이 찾지만, 지금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함께 배에서 내린 사람은 10명이 조금 넘는 정도였다. 소매물도의 가장 유명한 스폿은 등대섬이다. 소매물도의 모양은 옆으로 넓적한 가운데가 잘록한 타원형의 본섬이 있고, 본섬과 연이어 오른쪽에 작은 섬이 있는데, 여기에 등대가 있다. 본섬과 등대섬은 바닷 물길로 끊어졌다 연결되다 한다.


등대섬으로 가는 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선착장에서 바로 가파른 길을 올라 마을을 통해 본섬의 가운데 갈림길로 오르는 지름길이다. 다른 하나는 왼쪽으로 바다를 끼고 반 원 형으로 돌아 가 섬 가운데의 갈림길로 오르는 길이다. 이 갈림길에서 등대섬으로 가는 길은 단 하나의 길밖에 없다. 갈림길까지 지름길로는 600미터, 바다를 끼고 돌아가는 길은 1,800미터이다. 지름길은 너무 가팔라 보여서 편편해 보이는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아주 완만하고 걷기 좋은 길이다.


길 한 구비 한 구비를 돌 때마다 바다 풍경이 바뀐다. 여기는 육지에서 본다면 한려수도의 끝자락인 것 같다. 섬들이 띄엄띄엄 하나씩 보인다. 그리고 마치 넓적하고 길쭉한 바위를 바다에 꽂아 넣은 듯한 특이한 지형의 바위섬이 바다 이곳저곳에 보인다. 작은 것은 2-3개 많은 것은 5-6개로 이루어진 바위섬(아니 암초라 할까?)이다. 마치 넓적한 돌을 평평한 모래마당에 세워 꽂은 듯한 모습이다. 이런 바위섬을 시스택(sea stack)이라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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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섬 가는 길

그런데 길이 계속되면서 평탄한 길은 끝이 난다. 중간 이후로는 가파르기도 하고 험한 위험한 길이 계속된다. 중간에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고생을 하면서 아주 천천히 조심조심 걸어 갈림길까지 갔다. 비록 길은 험했지만 멀리 보이는 바다 풍경은 절경이었다. 그리고 산 쪽에는 동백꽃, 진달래, 산철쭉, 산벚꽃 등이 곳곳에 피어 있다.


쉬다 걷다를 계속하며, 바다 경치도 구경하면서 갈림길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여기는 해발 150미터쯤 된다. 높이는 얼마 되지 않지만, 여기까지 오는데 오르내림이 심하여 상당히 힘든다.


아래로 등대섬의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직접 가지 않고 여기서 등대섬을 내려다보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등대까지 가보기로 했다.


여기서 잠깐 신소리 하나..


칠흑같이 어두운 밤바다를 넬슨 제독의 영국 함대가 미끄러지듯 항해하고 있었다.

부하로부터 급히 정면에서 밝은 조명을 켠 정체불명의 선박이 다가오고 있다는 보고가 왔다.

제독은 조명을 향해 큰 소리로 경고하였다.


제독: “우리는 직진하는 중이다. 길을 비켜라!”

상대방: “우리는 비킬 수 없다. 당신들이 길을 비켜라!”

제독: “우리는 자부심 높은 바다의 전사들이다. 우린 결코 길을 비킬 수 없다.”

상대방: “우리도 마찬가지다. 후회 말고 그쪽이 비켜라!”

제독: “좋다. 우리는 직진한다. 알아서 판단하라! 여기는 자부심 높은 대영제국의 무적함대다!”

상대방: “좋을 대로 하라! 여기는 등대다!”


그렇다. 프라이드가 하늘을 찌르는 대영제국의 넬슨 제독도 등대 앞에서는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등대섬의 등대로 가려면 다시 해변까지 내려가 길이 드러난 바닷길을 건너야 한다. 집사람은 자신이 없다고 하여 혼자 위에서 기다리고, 나 혼자 갔다 오기로 했다. 그러나 해변까지 내려와 등대를 200미터쯤 앞두고 돌아가는 배 시간을 맞추려면 여기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심을 내어 등대까지 갔다간, 돌아가는 길에 좀 무리를 해야 하고, 그러다간 사고가 날지도 모른다.


갈림길에서 선착장으로 내려갈 때는 올 때와 달리 지름길로 내려갔다. 길은 매우 가팔랐는데, 계단이 잘 만들어져 있어 걷기에 위험하지는 않다. 나이가 들면서 내리막 길은 무릎에 부담이 와서 보통 고역이 아니다.


다시 거제 저구항에 도착하니 오후 4시가 조금 넘었다. 통영에 가서 해물을 사서 집으로 가기로 했다. 다시 통영중앙전통시장으로...


이 동네는 여전히 시끌벅적하다. 여긴 마스크를 쓴 사람도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시장은 손님들로 인해 많이 붐빈다. 살아있는 큰 문어 3마리, 멍게, 활어회, 갈치젓과 멸치젓, 밥반찬으로 구워 먹을 큰 삼치 대여섯 마리 해서 팔이 아프도록 장을 본 후 통영을 출발했다. 집에 도착하니 저녁 9시.


피곤하지만 재미있는 여행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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