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23) 욕지도 출렁다리와 옛 마을 산책
통영에서 욕지도로 가는 여객항은 3곳이다. 통영항, 삼덕항, 중화항이 그곳인데, 각 항마다 하루에 여러 편씩 배편이 있다. 세 항구 모두 합하면 거의 20편에 가까운 것 같다.
전국해운조합에서 운영하는 여객선 공동 티켓 예매 인터넷 사이트로 <가보고 싶은 섬>이라는 사이트가 있다. 들어가서 예약을 하려 했더니 너무 불편해 현장에서 티켓팅 하기로 했다. 시간을 보니 중화항에서 출발하는 9시 20분발 배가 시간상 적당한 것 같았다. 반드시 출항 1시간 전에 항구에 도착해야 한다고 한다. 이것저것 준비를 하자면 아침 6시 반에는 일어나야 할 것 같다.
나한텐 완전 꼭두새벽이다. 요즘 거의 매일 10시가 지나서야 일어나는데, 보통 일이 아니다. 새벽 골프 간다는 기분으로 6시 반 알람을 해두고 잤다. 덕분에 아침 시간에 맞춰 일어나 중화항으로 갈 수 있었다. 이런! 당분간 운항 중단이란다. 예약 사이트에 아무런 알림도 없었는데.. 어쩔 수 없이 삼덕항으로 달려갔다. 겨우 바로 출발하는 배를 탈 수 있었다.
좀 일이 꼬이긴 했지만 일단 출항하니 기분은 좋다. 배는 푸른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이 나아간다. 섬과 섬이 배를 스치듯 지나간다. 문득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국어 교과서에 실린 <통영호 갑판에서>란 글이 생각난다. 한려수도를 운행하는 <통영호>란 배를 타고 가면서 삼촌이 조카에게 편지 형식으로 보낸 기행문이다. 배에 부딪혀 부서지는 검푸른 파도를 보니, 그 글 속에 나오는 "무우청처럼 푸른 물결"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출항 후 한 시간이 가까워 오자 욕지도가 먼 눈으로 들어온다. 생각보다 큰 섬이다. 면적 약 13 평방 칼로, 인구 약 2,400명. 이 근처에서는 한산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항구를 중심으로 바닷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마을들이 보인다. 하선 후 식당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주인 할머니에게 욕지도에서 좋은 곳이 어디냐고 물어보었다.
"여기는 볼 끼이 하나도 없어예"
차를 가지고 오지 않아 이동이 불편하다. 섬을 일주하는데 자동차로도 거진 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도저히 걸어서 일주할 수 있는 거리는 아니다. 그러면 어떠랴. 걷다가 피곤하면 그만두면 되지. 천천히 걸었다. 섬 일주 도로는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 있으나 인도가 제대로 없다. 차가 제법 다녀 걷기가 쉽지 않다. 도로 옆 가로수는 동백나무이다. 동백꽃이 활짝 피었다. 따뜻한 남쪽이라 벚꽃도 한창이다. 며칠만 지나면 만개할 것 같다.
덥지만 꽃구경을 하면서 피곤한 줄 모르고 걸었다. <출렁다리>가 보인다. 요즘 많은 지자체들이 고장의 명소를 만든다고 어거지로 이런저런 구조물을 만든다고 야단이다. 이곳도 그런 것 중의 하나로 생각된다. 그렇지만 다리가 놓인 장소가 기가 막히다.
욕지도는 섬의 북쪽과 남쪽의 지형이 완전히 다르다. 북쪽, 즉 육지를 바라보는 쪽은 완만하여 바닷가에는 이곳저곳 마을들이 산재해 있다. 반면 먼바다를 바라보는 남쪽은 깎아지른 절벽이다. 푸른 바다 위에 병풍처럼 펼쳐진 단애는 절경의 풍경을 만든다. 출렁다리는 넓은 계곡 위에 놓여져 섬 양쪽의 풍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위치해있다.
출렁다리를 건너 산으로 올라가면 섬 남쪽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가 나온다. 섬 남쪽은 망망대해로 연결된다. 섬과 섬이 중첩되어 있는 북쪽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아득한 망망대해에 조그만 섬들이 멀리 점점이 떠 있다.
바닷가 마을 쪽으로 내려왔다. 폐가가 된 빈 집이 많이 보인다. 폐교가 된 학교도 보인다. 교실이 10개는 넘어 보이는 꽤 큰 학교이다. 슬슬 피곤해진다. 버스 정류장이 보여, 앉아서 기다리니 곧 버스가 온다. 운임은 천 원, 승객은 우리 부부뿐이다. 욕지도 순환도로를 일주하는 이 섬 유일의 버스다. 2시간에 한 번씩 섬을 일주한다고 한다, 곧 승객 몇 사람이 탄다. 운전기사와 승객들이 마치 친한 친구같이 대화를 나눈다.
항구에 오니 곧 통영으로 출발하는 배가 있어 승선했다. 다시 삼덕항에 하선했다. 배낭이 훨씬 가벼워진 느낌이다. 일단 호텔로 와서 좀 쉬기로 했다. 호텔에 도착해서 배낭을 정리하니, 이런! 태블릿 PC가 보이지 않는다. 배에 두고 내린 것이다. 그 때문에 배낭이 가벼웠던 것이다. 여객선사에 급히 전화해보니 습득물이 없다고 한다. 골치 아프게 되었다. 비싸진 않지만 개인 정보가 많이 들어있다. 록을 걸어두어 큰 문제는 없겠지만 그래도 찜찜하다.
집사람이 다시 배로 가보자고 한다. 항구에 가서 20분쯤 기다리니까 배가 들어온다. 급히 배 안으로 뛰어들어가 앉았던 자리에 가 보았으나 보이지 않는다. 옆에 있는 몇몇 직원에게 물어보았으나 모두들 모른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그냥 나오려는데, 집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큰 배 아곳저곳 1층에서 3층까지 모두 찾았는데 없다. 당황하여 배 밖으로 나와 보았으나 밖에도 없다. 곧 배는 다른 곳으로 정박하러 이동할 텐데 큰일이다. 다시 텅 빈 배 안으로 뛰어들어 가려는데, 저 안쪽에서 집사람이 붉은 케이스의 태블릿 PC를 자랑스럽게 높이 지켜 들고 나온다.
오늘 저녁은 벼르고 벼르던 <다찌>로 한다. 집사람이 <벅수>란 다찌집으로 가자고 한다. <알쓸신잡>이라는 TV 프로그램에 나왔던 집이라 한다. 나도 그 프로그램은 지나치면서 본 적 있다. 이 집은 이틀 전인가 이사했다면서 가게 안이 어수선하다. 방송을 타서 그런지 장사가 잘되어 넓은 곳으로 이전한 듯하다.
아주 새로운 현대식 건물이며 인테리어도 세련되었다. 다찌집보다는 스테이크 하우스가 어울릴 듯한 건물이다. 1, 2 층을 모두 사용하는데 1층만 해도 테이블이 10개는 넘어 보인다. 이래선 좀 곤란하다. 다찌집은 주인이 해물 중심의 그때그때의 제철 재료를 준비하여 최소한의 조리로 재료 맛을 살린 안주를 손님에게 내놓는 집이다 그럼으로써 주인과 손님 간의 커뮤니케이션도 생기는 거다. 그런데 가게가 커지면 음식이 표준화, 획일화되어 버린다.
나오는 안주들을 먹어보니 좀 실망이다. 주로 퓨전요리 비슷한 것이 많다. 나라면 이 집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진 못할 것 같다. 다 먹고 돌아오니 너무 짜다. 오늘 밤엔 물을 켜서 편히 자진 못할 것 같다.